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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다 어디갔나

이춘아 2019. 8. 5. 18:36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 6 (2011년 10월7일자)

 

남자들은 다 어디 갔나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대덕문화원이 진행하고 있는 ‘내 삶이 음악이 되다’ 프로그램 참관을 갔었다. 함께 보고 있던 남자분이 말했다. 남자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그러고보니 노래 부르고 있는 20여명 참여자들이 모두 할머니들이다.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다보면 만나는 사람들은 대체로 여자들이다. 참여자들 뿐 아니라 진행자들도 대부분 여성들일 때가 많다. 문화영역만큼은 여성왕국이다.

 

20년 전 여성들의 문화활동 현황을 조사하기 위해 각종 문화시설을 다닐 때만 해도 여성들이 사회와 만나는 통로의 하나로서 문화프로그램을 유심히 보았다. 여기저기서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여성들이 그나마 온전히 자신을 돌아보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했다. 그래서 여성회관 같은 독립된 여성전용 문화공간이 더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짓는 여성회관 건물은 여성문화회관이라는 이름으로 완공되곤 하였다.

 

얼마 전 서구 도마동 여성회관에 갈 일이 있었는데 여성회관 명칭이 평생교육문화센터로 바뀌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로비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남자들이 많았다. 이름을 바꾸게 되면서 남성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화시설로 불리고 있는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문예회관 문화의집 문화원 등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 뿐 아니라 평생학습센터 등의 참여자들 대다수가 여성들이다.

 

그렇다면 은퇴하여 쏟아져 나오고 있는 남성들은 다 어디에서 놀고 있는 것일까? 남성들의 문화적 욕구는 없는 것일까? 문화원에서 근무할 때 가끔 노래교실 등에 참여하고 싶다고 오시긴 하였는데 몇 번 참여하고는 그만두시곤 했다. 여성들 틈새에서 견뎌내질 못한 것이다.

 

분위기도 그러했지만, 공적 영역에서 일 중심으로 살아왔던 남성들은 사적 영역으로 보이는 곳에서는 거의 생존능력이 없다. 은퇴 후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동안 눌러왔던 문화적 욕구 등을 풀어낼 수 있는 소통공간이 분명 있어야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창출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활동을 단순히 여자들이 하는 여가정도라고 보고 접근자체를 스스로 차단해버린 것이다.

 

이제 남은 시간 때우며 즐기기 위한 것으로 문화프로그램을 보던 시기는 지나갔다. 통계상의 평균 수명이 현실이 되고 있는 마당에 체면 차리며 뒷짐 지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 나의 삶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할머니들은 몽골몽골 올라오고 있는 삶의 희열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