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숲밭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이춘아
2020. 10. 10. 15:12
300년의 시간을 마주하며 당대의 시들이 살아 움직이는 곳. 소대헌 호연재 고택 입구에 있는 호연재의 시들이 몇 편 있다. 시를 옮겨 적어본다. 소리 내어 낭독해보시라.
김호연재(1681~1722):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자, 안동 김씨로 고성 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넷째 딸이다. 19세에 동춘당 송준길의 증손인 소대헌 송요화(1682~1764)와 결혼하여 28세에 아들 송익흠(보은현감, 호 오숙재)을 낳고, 딸을 낳았으며, 4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호연재는 출가한 이래 지금의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소대헌 고가에서 살아 이 지역과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생활하는 틈틈이 한시를 지어 194편의 작품이 전해져오고 있다.
야음: 밤에 읊다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서러워라 한 해는 또 저물거늘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취작: 술에 취하여 짓노라
취하고 나니 천지가 넓고
마음을 여니 만사가 편안하도다
초연히 자리 위에 누웠으니
즐거움에 잠시 세상의 정 잊노라
감춘: 봄을 느끼도다
달이 희니 일천 산이 고요하고
꽃이 피니 일만 나무 향기롭도다
봄 근심이 희미하여 취코자 하니
어느 곳이 이 나의 시골이뇨
자상: 스스로 슬퍼하노라
아까워라, 이 내 마음이여
탕탕한 군자의 마음이로다
표리에 하나도 감추는 게 없으니
명월이 흉금에 비추었도다
맑고 맑아 흐르는 물 같고
좋고 좋아서 흰구름 같도다
화려한 것을 좋아 아니하고
뜻이 구름과 물 곁에 있도다
세속 무리들과 더불어 합하지 않으니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그르다 하도다
스스로 규방 여인의 몸인 줄 설워하니
창천은 가히 알지 못하리로다
어찌하리오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다만 능히 각각 뜻을 지킬 뿐이로다
선기일감회득고언기가: 아버지 기일에 감회하여 고언 체를 얻어 집에 부치노라
망망히 고국이 멀었고
하늘이 높고 흰 구름이 나는도다
이 아우 멀리 우귀하니
한번 가메 소식이 드물도다
외딴 마을 긴 여름날에
적막히 사립을 닫았도다
머리 돌려 고향을 생각하니
아버지 기일 이 가운데 지나시는도다
여생이 설운 줄 점점 깨달으니
추모하는 정을 견디기 어렵도다
일 천 회포 애원히 맺혔고
만리 수한이 깊었도다
슬픈 바람이 불기를 절절히 하니
나로 하여금 더욱 마음 상하게 하는도다
형에게 부치는 글을 지으려니
한 줄 눈물에 또 한 줄이로다
고홍: 외로운 기러기라
어느 곳 외로운 기러기 내 문을 지나는고
두어 소리 처절하여 무리를 떠남을 원망하는도다
차가운 창에 홀로 자며 집을 생각하는 사람이
깊은 밤에 잠이 없어 혼이 끊어지려 하는도다
자회: 스스로 뉘우치다
맑은 밤이 초초히 오경에 사무치니
반생에 끼친 허물 눈 속에 밝았도다
성쇠는 힘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선악은 성실함에 좌우되는도다
말씀은 기쁨만 갖추면 스스로 취하는 것이오
덕은 괴로움을 못 참으면 뉘우침이 나는도다
이제 늙어 이에 이르렀으나 행한 것이 없으니
어느 낯으로 다른 때에 부형께 뵈오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