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영혼의 진료실을 떠나보내며

이춘아 2024. 7. 12. 20:33

알베르토 망겔, [서재를 떠나며](이종인 옮김), 더난출판사, 2018.


알베르토 망겔: 1948년생. 2018년 구텐베르크 상 수상자이자 현재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작가이자 번역가, 편집자, 국제펜클럽 회원이며, 구겐하임 펠로십과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책의 수호자’ ‘우리 시대의 몽테뉴’ ‘도서관의 돈 후안’ 등으로 불리며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의 독서가이자 장서가로 평가받고 있다. 1948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으나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이스라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십대 후반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고, 시력을 잃어가던 그에게 4년 동안 책을 일어주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13~15쪽)
나의 마지막 개인 도서관은 프랑스에 있었다. 그 집은 루아르강 계곡에 위치한 오래된 석조 사제관이었는데 인근 동네는 민가가 열 채 정도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나의 파트너와 내가 그 집을 선택한 이유는 그 집 옆에 몇 세기 전에 일부 허물어진 헛간이 있었는데 내 장서를 다 수용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내 책들은 3만 5천여 권으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책들이 제자리를 잡으면 나도 따라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마차가 다니는 정원 입구의 무거운 참나무 문을 처음 열어본 순간 이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치형의 석문 너머로 두 그루의 오래된 회화나무가 저 멀리 멀어진 회색 담장까지 뻗어 있는 부드러운 잔디밭에 그늘을 드리운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과거 농민 전쟁 때 그 집의 땅 밑에 아치형 천장의 지하 통로가 굴착되어 현재 저 먼 곳에 있는 허물어진 탑과 연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러 해 동안 나의 파트너는 정원을 손질하고, 장미나무를 심고, 채소밭을 돌보고, 나무를 가꾸었다. 예전 주인들은 나무들을 학대하여 속이 텅 빈 나무에다 쓰레기를 집어 넣었고 나무의 우듬지가 거의 메말라 죽어가는데도 그대로 방치했다. 우리는 정원을 산책할 때마다 우리가 이곳의 소유주가 아니라 수호자라는 이야기를 했다. 왜냐하면 정원은 고대인들이 신성시했던 어떤 정령이 깃들인 독립적인 장소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플리니우스는 정원의 신성함을 이렇게 설명했다. 태고의 한때 나무들은 신들의 사원이었고 신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9세기경에 심겨진 정원 뒷마당의 과일나무들은 지금은 방치된 공동묘지까지 가지들을 뻗고 있다. 어쩌면 이곳에서도 고대의 신들은 자신의 집에 온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담을 두른 정원은 아주 조용한 곳이었다. 매일 아침 여섯 시면 나는 잠이 덜 깬 채로 계단을 내려와 서까래가 보이는 어두운 주방에서 차 한 잔을 준비한 후, 우리 집 개와 함께 정원의 돌 벤치에 앉아 새벽의 희붐한 빛이 뒷마당 벽을 따라 기어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와 함께 헛간에 붙어 있는 탑으로 가서 글을 읽었다. 오로지 새들의 노래만이 그 침묵을 깨뜨렸다. 황혼이 되면 자그마한 박쥐들이 원을 그리며 날아왔고, 새벽이면 교회 종탑의 올빼미들이 먹잇감을 찾아내고 공중에서 급강하하며 내려왔다. 그것들은 원숭이올빼미였으나 새해 전날에는 커다란 흰올빼미가 단테의 [신곡]에서 영혼들의 배를 연옥의 강기슭까지 인도하는 천사처럼 어둠 속을 유유히 날아갔다.

(18~20쪽)
종종 나의 서재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고 또 나의 자아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자아는 오랜 세월 꾸준히 변모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과 나의 관계는 언제나 기이한 것이었다. 나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한다. 나는 한 사회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정체성의 상징인 양 우뚝 서 있는 공공 도서관들 -당당하든 초라하든, 위협적이든 친숙하든 상관없이-을 좋아한다. 나는 무한히 뻗어 있는 책들의 대열을 사랑한다. 나는 수직으로 쓰여 있는 책 제목들을 읽어내려고 애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영어와 이탈리아어는 책 제목이 위에서 아래로 쓰여 있고, 반대로 독일어와 스페인어는 아래에서 위로 쓰여 있다. 나는 나지막하게 웅얼대는 소리, 명상적인 침묵, 은은한 불빛을 던지는 램프, 여러 세대에 걸쳐 독자들의 팔꿈치로 반들반들해진 책상, 먼지와 종이와 가죽의 냄새, 혹은 가벼운 신형 데스크톱과 캐러멜 냄새가 나는 청소 용구 등을 좋아한다. 나는 접수대의 모든 것을 바라보는 눈과 사서들의 예언자 같은 배려를 좋아한다. 나는 도서관을 방문할 때면 그 어떤 도서관이 되었든 내가 결코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마법을 통해 나 자신이 순수하게 언어적인 차원으로 환원되는 것을 느낀다. 나의 진정하고 온전한 이야기가 서가 어디엔가 있어서,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그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 시간과 행운뿐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나의 이야기는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애매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그 이유 중 일부는 내가 직선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옆으로 벗어난다. 객관적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산뜻한 논리적 징검다리를 건너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나는 최초 의도가 아무리 강력한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중간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어떤 인용구에 감탄하느라 혹은 어떤 일화에 귀 기울이느라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나는 원래의 목적과 무관한 질문에 정신이 팔려버린 나머지 관련된 다른 아이디어의 흐름에 휩쓸린다. 나는 종종 어떤 것을 말하기 시작하다가 결국에는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23~25쪽)
나의 아주 어릴 적 기억 하나는 (당시 나는 두세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누워 있는 요람 바로 위에 위치한 서가에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광경이다. 내가 잠들 무렵이면 유모는 그 서가에서 이야기를 골랐다. 그건 나의 첫 번째 개인도서관이었다. 내가 일이 년 뒤 직접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그 서가는 안전한 방바닥으로 옮겨져 나의 개인적 영역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 만들어낸 규칙에 따라 그 책들을 배열하고 재배열했던 것을 기억한다. [골든 북스] 시리즈는 반드시 한데 모아놓아야 했고, 두툼한 동화집은 자그마한 베아트릭스 포터의 책들을 건드리면 인 되고, 동물인형들은 책들과 함께 서가에 있으면 안 된다는 식이었다. 이런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라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미신과 책 분류 기술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 첫 번째 도서관은 텔아비브의 어떤 집에 있었고, 두 번째 도서관은 나의 소년기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덩치를 키워갔다. 아르헨티나로 귀국하기 전 아버지는 비서에게 우리의 새 서재를 충분히 채울 정도로 책들을 사들이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헌책방을 돌면서 수레 여러 대 분량의 책들을 주문했다. 그러나 막상 서가에 꽂으려 하니 상당수 책들이 서가와 크기가 맞지 않았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그 책들의 상단이나 하단을 절단해 크기를 축소한 다음 암녹색 가죽으로 다시 재본하도록 시켰다. 그 암녹색은 서가의 짙은 오크 색과 어우러져 서재가 마치 숲속인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나는 아버지 서재에서 책들을 가져와 내 침실의 삼면을 차지한 서가를 채웠다. 페이지의 일부가 잘려나간 그 책들을 읽기 위해선 사라진 내용을 스스로 상상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 덕분에 나는 추후 ‘잘려나간 조각들’로 구성된 윌리엄 버로스의 장편소설을 읽을 때 충분한 사전 훈련이 되어 있었다. 그다음에는 고교 시절 내내 구축한 십 대 후반 시절의 서재가 생겨났다. 이 도서관은 오늘날까지도 내게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는 거의 모든 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관대한 선생님들, 열정적인 책 판매상들, 책을 선물하는 게 친밀함과 신뢰감의 최고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그 도서관을 채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의 유령이 서가들 사이에 어른거렸고, 그들이 선물한 책들은 아직도 그들의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이자크 디네센의 [고딕풍의 이야기들]이나 블라스 테 오테로의 초기 시들을 펴들면, 내가 그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누가 내게 그 책을 큰 소리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건 내가 서재에 앉아 있으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