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참깨 세 근

이춘아 2024. 8. 16. 21:53

김호석, [모든 벽은 문이다], 도서출판 선, 2016. 


(56~ 58쪽)

나는 초상화 작업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작업을 한다.  나는 지조와 절개를 지킨 의인, 외길로 뜻을 이룬 사람으로 존경하는 마음과 미술사적 도전 등이 아니면 붓을 들지 않는다. 

먼저 진영 작업은 무엇보다 대상자에 대한 접근이 자유로워야 한다. 대상에 대한 관찰의 힘도 중요하지만 특징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대상자만의 특정 요소를 포착하는 것은 화가의 몫이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삶에 투철하고 자신만만함이 없으면 모든 것을 개방하지 않는다. 화가는 인물의 겉모습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정신과 섬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간파하고자 한다.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 과거의 사진만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되면 한계가 명확하다.  다음으로 진영 대상자에 대한 존경심이 발생해야 그림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초상화는 대상 인물이 돌아가신 뒤 진영각에 모실 목적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화가 자신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완성한 그림만이 다른 예배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업 내내 표현 대상자에 대한 공부는 물론 그분의 분신이 되고자 스스로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진영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작업은 마음이 맑고 청수한 상태에서 진행하되 혹 의심이 들거나 흔들림이 있으면 즉시 중단한다. 대상자의 정신적 깊이까지 들여다보기 위해서 작업자는 자신을 검증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작업 내내 일어나는 날카로운 긴장감은 피할 수 없는 화가의 숙명이다. 

이상과 같은 점에 의해 그림을 요청 받을 때는 반드시 모델을 서 줄 것을 주문함은 물론,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도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말을 한다. 진영 작업은 그려 나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곧 그림이다. 과정에 충실하지 않은 그림은 아무리 결과가 성공적이라 해도 화가는 늘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관응 스님  진영 작업을 할 때는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거짓말처럼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순조롭게 풀렸다.  나는 관응 스님 그림을 그리면서 정성과 진심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미술사학자와 미술평론가로부터 나의 그림 중 최고의 득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작품을 보내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사람들이 좋은 작품을 통해 그분을 기리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아라 판단해 사욕을 버리기로 했다.  그러나 그림을 보여 준 뒤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진영을 부탁한 측에서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몇 가지 부족하다는 점을 참고해 다시 그려 달라는 전갈이 온 것이다. 나는 나를 위해 남겨 주신 것이라 생각하고 기분 좋게 재작업을 하였다. 작업은 1주일 만에 완성되었다. 주문자는 새로 그린 작품에 만족해했다. 1년여간 지난한 흔적이 배어 있는 작품이 작가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은, 불합격의 수치가 아니라 작가를 생각한 또 다른 배려 방식이었음을 고맙게 생각한다. 

처음 그렸던 그림은 대상에 대한 긴장이 살아 있는 법이다. 이 긴장감은 일체의 헛치레가 빠진 작가의 생생한 혼의 결정체이다. 그림은 기교나 기법 그리고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뜻을 전달할 때에 힘이 있다. 집에 보관된 관응 스님 진영은 내가 다른 스님의 진영을 부탁받을 때 어떻게 작업에 임해야 하는가의 기준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관응 스님은 여전히 내 그림 속에 살아계신다. 

(65~ 67쪽) 관응 스님께서 물으셨다. 

“김 화백,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고 왜 그리나요? 그림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까?” 나는 이 원초적인 질문에 당황했다. 스님의 질문은 예술 창작의 기본원리부터 시작되었고, 나는 이에 솔직하게 답했다.  “저는 조선의 된장 냄새를 그리고자 합니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모습과 이 땅에서의 삶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정신을 그리고 싶습니다. 불의와 억압 그리고 압제를 뚫고 일어서는 사람들을 존중합니다. 내 주변 현실에서 만나는, 일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대중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땅의 모습을 내가 추구해야 할 예술세계의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화가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에서였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홤이 없습니다.” 나는 [김호석도록](1994) 말미에 수록한 작가 노트에 있는 내용으로 스님의 질문에 성심껏 답했다. 나의 말이 끝나자 스님께서는 ’수초‘라는 호를 지어 주시고는 “처음의 뜻을 지켜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나는 그 말씀을 귀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스님은 덧붙여 말씀하셨다. 

“아, 그러고 보니 ‘수초’라는 법명을 쓴 이가 있었습니다. 중국 스님인데 ‘부처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마삼근’이라 답을 했던 분이지요.” 나는 성철 스님의 화두도 ‘마삼근’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마삼근을 두고 스님과 나 사이에는 오랫동안 정적이 흘렀다. 오랜 침묵을 깨고 나는 스님께 여쭈었다.  “왜 부처가 참깨 세 근입니까?”

순간 스님은 화들짝 놀라며 되물으셨다.  “왜 마삼근을 참깨 세 근으로 보십니까?”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말씀드렸다. 
“저는 ‘마'라는 글자 뜻이 삼베 재료인 ’삼‘과 ’참깨‘ 그리고 ’마마자국‘ 등으로 배웠습니다. 불법과 연관지어 볼 때 삼베가 아닌 참깨로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말린 삼 5근으로 1필을 짜는데 3근이라면 13자 정도만을 짜는 양입니다. 길이로 봐서 별 효용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참깨는 ’홉‘ ’되‘로 계량하지만 중국에서는 ’근‘ 단위로도 판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근이 500그램인가? 참깨 1개를 심으면 하나의 대에서 200여 개 이상의 수확이 나오고, 참깨를 털 때 얼마나 좋으면 ’깨 쏟아지듯‘이란 표현을 했을까요? 참깨 농사를 지어보니 살이 통통한 하얀 깨가 툭툭 터지며 수북이 쌓이는 모습은 환희에 가까웠습니다. 참깨를 볶아 기름을 짜면 혀를 부드럽게 하여 마음을 좋게 만들기도 하지만 푸성귀 등 채소를 무칠 때 사용하면 천연 구충제 역할을 하기도 해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공부하고 알아 가면 갈수록 생각이 생성되고 증식되어 깨달아가는 환희심이 참깨 농사나 참기름 같은 맛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참기름 맛에 현혹되면 본래의 음식 맛을 잃어 버리기 쉬우니 절제하는 게 필요하다. 참깨가 자라고 증식되며 수확하는 과정이 자신의 생각을 넓혀가고 확장해 가는 자기 수행의 과정과 닮아 있다, 뭐 이런 의미로 말씀하신 게 아닐까요?”

스님은 내 말이 끝나자 웃으시며 몇십 년간 가르치고 배우며 살았는데 ’마삼근‘을 ’참깨 세 근‘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며 빙그레 웃으시며 참 별나다 하셨다. 그 웃음은 마치 이가 나지 않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미소같이 아름다웠다.

영화음악을 만드는 작곡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다큐를 보고있는데, 알렉상드르가 만든 음악을 듣고있던 로만폴란스키 감독의 얼굴에 흡족한 웃음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웃음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