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둥구나무"
2020. 5.3(일)
목성균, [누비처네], 2010, 연암서가
“둥구나무”
대개 동네마다 앞 들판에 둥구나무 한 그루쯤은 서 있다. 그 둥구나무 한 그루로 해서 동네의 모습이 달라 보인다. 둥구나무 뒤로 저만큼 바라보이는 동네는 유서가 깊어 보이고 알뜰한 삶의 규모가 느껴진다. 반대로 둥구나무가 서 있음직한 자리가 비어 있는 동네는 고달픈 삶을 아무렇게나 부려 놓고 마지못해 살아온 것처럼 딱해 보인다. 나무 한 그루가 동네의 면모를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둥구나무는 동네 앞의 허전함을 비보하기 위한 풍수 목적으로 심어진 것이지만, 나무의 용도는 다목적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꿋꿋한 삶의 의지를 고양시켜 줄 뿐 아니라, 정서를 함양해 주기고 하고, 영농 지휘본부인 농막 구실도 해준다.
사는 게 섭섭할 때 추수가 끝난 빈 들 복판에 이파리를 다 지우고 서 있는 둥구나무의 의연함을 바라보면 한결 마음이 편해 진다. 농부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대에 차지 않는 수확을 한 농부가 빈 들녁에 섭섭한 마음으로 서 있을 때 둥구나무는 농부에게 이렇게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줄 것이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것을 잃은 남녀가 노을진 둥구나무 아래 서서 황폐한 목화밭과 장원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이다. 소설의 주제를 요약한 한마디겠지만, 그 말은 영화의 주인공이 하는 말이 아니라 대인의 풍모로 서 있는 노거수가 하는 말같이 느껴졌다. 동서고금을 막록하고 둥구나무는 능히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이 든다. 옛사람들이 마을을 열면서 마을 앞에다 나무 한 그루를 심어서 오늘에 이르러 둥구나무가 된 것은 그런 안목에 연유한 것이리라.
어찌 그리 큰 시악씨더뇨
말만한 시악씨더뇨
바람에 옷 불어 맨몸 우렁차구나
바람에 옷 부풀어 인조 속치마 아득하구나
봄에 나물만 먹고 자랐는데
저렇게 잉어같이 가물치같이
향단이같이
춘향이같이 눈부시구나.
- 고은의 [그네] 중에서
둥구나무에는 오월 단오에 그네를 매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은 말만한 처녀들이 꽃처럼 울긋불긋 그네를 뛰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 때문에 동네 총각들은 밤을 지세우며 그넷줄을 드렸고, 처녀들이 춘향이처럼 창공을 차고 오르는 것은 그 총각들의 눈길 때문이었다. 둥구나무는 동네 젊은이들에게 그같이 낭만을 불붙여 주기도 했다.
둥구나무는 일동의 구심목이었다. 변변치 못한 토지를 집약적으로 경작하며 삶을 포기하지 않고 면면이 이어온 동네를 보라. 정월달에 온 동네가 정갈하게 긴장하고 나무에 일년의 운수대풍을 빌면서 살아왔다. 둥구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소망의 고비를 매고 살아온 서낭나무이기도 하다.
동네 사람들은 둥구나무에 녹음이 차오르고 여름 철새들이 깃들여 노래하는 걸 바라보며 보릿고개의 시름을 참아냈고, 여름 소나기를 피해 나무 아래 서서 무성한 이파리에 떨어지는 빗소리의 청량감에 고달픈 삼복더위를 잊었다.
둥구나무는 여름날 깊은 그늘을 드리워서 뙤약볕을 막아 주었다. 동네 노인들은 하루 종일 나무 아래 모여 앉아 들판을 내다보면서 젊은이들이 농사짓는 것을 독려하였고, 젊은 농부들은 일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둥구나무 아래로 물으러 왔다. 농사철이면 둥구나무 아래가 동네의 영농 지휘본부쯤 되는 것이었다.
둥구나무는 몇백 년의 연륜을 지니고 있다. 그 나무들은 동네의 역사다. 우리는 그 나무를 존중해서 노거수로 지정하여 보호 관리하고 있다. 그것은 후손 된 도리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말처럼 나무를 심는 일은 항상 늦지 않았다. 우리가 백성에 불과하더라도 푸른 숲의 한 그루 나무가 되든지 홀로 의연한 노거수가 되든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기념식수 한 그루쯤은 하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