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날마다 좋은 날'
이춘아
2020. 8. 8. 07:15
2006년 8월 19일 여름안거 해제
법정, [일기일회], 문학의 숲, 2009
지난 여름, 제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즐거웠던 시간을 꼽으라면, 아침저녁으로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묵묵히 앉아 있던 그 시간입니다. 책 읽고 밖에 나가서 일하는 시간은 부수적인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묵묵히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조용히 앉아 있을 때가 가장 기쁜 시간입니다. 이것을 선열위식이라고 하는데, 선의 기쁨으로 밥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불자들은 그런 수행을 꼭 안거 기간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불교 수행자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런 자기 충전을 통해 이 험난한 세상을 무난히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자기 충전의 시간이 없다면 늘 중생 놀음, 여기에 팔리고 저기에 휩쓸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기 충전의 시간은 곧 자기 중심의 시간입니다. 순수한 자기 존재의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을 될 수 있으면 많이 가져야 합니다.
신문에서는 몇억이 있어야 노후 대책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안심하고 죽을 수 있다는 말들을 합니다. 이런 숫자에 속지 마십시오. 순간에 사는 사람에게는 노후 대책이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삶은 숫자 놀음이 아닙니다. 자기 중심이 없고 자기 탐구가 없는 사람들은 늘 그런 것들에 정신을 빼앗긴 채 살고 있습니다. 그 순간을 살 줄 안다면 많은 돈이 없어도 노후를 제대로 보낼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해결될 것이라는 망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럴 돈 많은 사람들은 죽지 않아야 하는데, 이들도 어김없이 죽습니다.
행복의 문제는 소유와 밀착되지 않습니다. 네팔 히말라야 산동네에 가 보면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난하게 삽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눈빛을 보면 그렇게 맑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적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친절하고 활기차고 건강하고 밝게 삽니다. 네팔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으로 걱정해야 할 일은 경제 수치가 아니라 점점 전락해 가는 인간성입니다.
황폐화된 인간은 많이 가질수록 더 해롭습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인과 환경에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모자라고 아쉬운 부분을 채우려고만 할 게 아니라 즐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조촐하고 사소한 것으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안빈낙도 정신이 있지 않습니까? 넉넉하지 못한 생활환경에서도 찌들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기는 인생과, 이것이 우리 선인들이 지닌 처세훈입니다.
노후에 대한 불안을 미리 가불해서 쓰지 마십시오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을 맑은 정신을 지니고 관조하면서 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혜롭고 조촐한 노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일야현자경]에서 이렇게 법문합니다.
“어느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겠는가. 진실로 그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를 바로 알아차린 사람은 낮과 밤에 한결같이 정진하나니 이런 사람이 하룻밤의 현자이다. 또한 고요함에 이른 사람이다.”
또 같은 경전에서 부처님은 말합니다.
“과거를 따르지 말고 미래를 기대하지 말라. 한번 지나가 버린 것은 이미 버려진 것,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행하라. 누가 내일의 죽음을 알 수 있으랴. 지나가 버린 것을 슬퍼하지 않고 오지 않은 것을 동경하지 않으며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을 때 그의 안색은 생기에 빛난다. 분수 바깥 것을 탐내어 구하고 지나간 과거사를 슬퍼할 때 어리석은 사람은 그 때문에 꺾인 갈대처럼 시든다.”
날마다 좋은 날 이루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