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그 어떤 똑똑한 생각보다 훨씬 위로가 될 때

이춘아 2020. 9. 5. 05:57

박보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바다출판사, 2019.

‘그 어떤 똑똑한 생각보다 훨씬 위로가 될 때’


윤석남 작가의 (2008)는 혼자서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와 유기견들을 조각한 작품이다. 작가는 5년 동안 손수 나무를 하나 하나 깎고, 다듬고, 채색해서 이 작품을 완성했다. 

놀랍게도 1,000개가 넘는 개체가 각기 다른 표정과 자세를 가지고 있다. 한 마리씩 나무를 자르고 칠하기를 반복하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다듬으며, 작가가 유기견 조각들과 함께 보낸 오랜 시간이 이들의 각기 다른 모습에서 나타난다. 

누군가는 모진 마음으로 내다 버린 유기견들을 윤석남은 한 마리 한 마리 쓰다듬고 이름을 불러주는 마음으로 그려낸다. 작가가 눈에 담은 유기견들은 더 이상 그냥 버려진 개가 아니다. 사랑과 관심을 받는 의미 있는 생명이다. 

나무가 가진 투박하고 따뜻한 질감이 버려지고 밀려난 작은 생명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 어린 마음과 어우러져, 모든 개들이 다정한 에너지로 살아 있다. 유기견 1,025마리 하나하나가 윤석남 작가의 애정과 교감을 눈에 담은 채 평화로운 숲을 이룬다. 

늦은 나이에 화가로 데뷔한 윤석남은 6남매를 홀로 키운 자신의 어머니와 여성, 그리고 자연에 대한 작업을 해왔다. 유기견 조각에서도 여성과 생명에 대한 작가의 일관된 애정과 관심이 드러난다.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희생하며 살아온 여성들과 버림받은 동물들에 대한 그녀의 작업은, 억업받는 약자의 편에 서고 모든 생명의 가치를 똑같이 보듬는 생태여성주의 관점으로 읽을 수 있다. 

공장에 맡겨 더 빠르고 더 매끈하게 뽑아내지 않고, 손으로 긴 시간 동안 하나씩 나무를 깎아 1,000마리가 넘는 유기견을 조각하는 것은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늙은 나이에 혼자서 1,025마리의 유기견을 돌보는 것도 상식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식용 슈퍼돼지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상품 가치가 없어서 버려진 고양이랑 가족으로 사는 것 역시 순진하고 미련한 짓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게 실용과 이성의 관점으로 볼 때, 그저 불필요한 감상주의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고 동물과 인간 모두를 외롭게 만든 것은, 바로 자연을 문명의 대척점에 놓고 생명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으로 여겼던 인간 중심의 이성주의, 실용주의가 아니었던가. 

인간을 포함한 다른 생명을 수단이 아닌 교감의 대상으로 경험하고 같이 어울려 사는 것은 그 어떤 똑똑한 생각보다 훨씬 위로가 된다. 분명히 우리가 이 지구에서 지속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 줄 유일한 방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