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이슬람의 검은 매혹, 유럽을 적시다’
이춘아
2020. 11. 21. 07:05
‘이슬람의 검은 매혹, 유럽을 적시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아라비카가 원산지입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예멘을 정복하게 되어 그곳에 커피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예멘은 에티오피아보다 커피 생산에 더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었어요. 그래서 에티오피아에 자생하던 커피를 예멘에서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커피는 이제 오스만튀르크 제국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16세기 초가 되면서 이미 아라비아에서는 커피 음용이 유용하냐 아니면 해로우냐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보아 16세기 초에는 아라비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이미 마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만튀르크는 시리아와 예멘을 점령한 후 1517년에는 카이로까지 점령했습니다. 메카와 메디아 역시 오스만튀르크의 손에 넘어갔지요. 그러면서 거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16세기 내내 100여 년 동안 커피를 마신 유일한 제국이자 커피문화를 보존하는 주역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럽의 식물학자나 의사들이 오스만제국을 방문했을 때 제국 전체에 커피문화가 퍼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럼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는 어떻게 커피가 확산되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아랍의 문헌들을 근거로 다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요. 커피의 첫 소비자는 아랍의 고급문화를 향유한 수피파 승려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수피파는 어떤 집단이었기에 커피의 첫 소비자가 되었을까요?
수피파는 이슬람의 한 분파로서, 명상을 종교적 수행의 중요한 방법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커피를 마셔 본 한 지도자가 커피가 졸음을 쫓아 주어 명상과 기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공동체의 수도승들에게 커피를 마시도록 했답니다. 그들은 큰 찰흙으로 만든 항아리에다가 커피를 담아 놓고 한 사람씩 돌려가면서 마셨답니다. 커피를 마지막 사람까지 다 마시고 나면 그들이 드리는 기도의 하나가 끝났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커피를 마시는 것이 수도의 한 과정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수피파는 명상과 기도를 드리는 종교적 수행 이외의 생활에서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직업을 가졌고 가정생활에도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수피파 공동체에서 이렇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자, 커피는 사원의 벽을 쉽게 넘어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코란에는 음주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슬림들은 뭔가 마실 거리가 필요했죠. 그리고 이슬람 신자들은 성지순례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 종교 자도자들 사이에 퍼져 있던 커피문화를 접하게 되었고, 또 성지순례를 마친 사람들이 시골로 다시 내려가니까, 커피문화도 자연스럽게 오스만제국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믿을 만한 연대기 기자인 아사리 자지라 라는 사람은 1587년에 “이미 수백 년 동안 커피를 즐겼다”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6세기에는 커피가 사원 주변을 넘어서 이슬람 지역에 널리 음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서 이제 오스만튀르크에서 커피를 볶거나 분쇄하거나 내리는 기구들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터키식 분쇄기는 갈아 보면 가루처럼 아주 곱게 커피가 갈립니다.
오스만튀르크 제국에서 일반인들이 처음부터 커피를 자유롭게 마실 수는 없었습니다. 터키에서도 커피 마시기라는 새로운 음용 관습을 처음에는 궁정이나 고위직 사람들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상당히 고급스러운 이브릭이 발전하게 되었죠. 접견실로 커피를 나르던 이브릭은 장식이 대단히 아름다웠고, 또 커피 잔도 중국에서 들여온 고급 잔을 쓰게 되었습니다. 궁정 사람들은 예절을 중요시하잖아요? 그래서 커피 마시는 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초기의 커피 마시기는 이렇게 상당히 까다롭고 엄격한 규칙과 절차에 따라서 마셨는데요. 그러나 먹고 마시는 일이라는 것이 금지한다고 해서 금지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커피는 시중으로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커피를 끓여서 사람들한테 팔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날 커피하우스라고 부르는 시설이 생기게 된 것이지요.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커피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커피하우스는 국가권력의 개입 없이 시민들이 만들어서 수세기 동안 지금까지 지탱해 왔고, 약간의 공공성을 띤 제도로 자리를 잡아 왔으며, 인류 역사에서 유래가 드문 시설입니다.
이런 커피하우스가 어느 지역에서 생겼을까요? 말할 필요도 없이 오스만튀르크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생겼습니다. 1530년에서 1532년 사이에, 알레포와 다마스쿠스라는 곳에 인류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됩니다. 1554년에는 이스탄불에도 커피하우스가 자리를 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