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한국의 독자들에게

이춘아 2020. 11. 28. 07:29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의 미래](최요한 옮김), 남해의봄날, 2018

‘한국의 독자들에게’

세계는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감소만으로도 무서운 일인데, 거기에 불안정한 금융, 위협받는 민주주의, 핵전쟁의 공포까지 겹치니 혼란스럽고 당황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도시 경제로 급하게 달려간 한국인들은 어쩌면 라다크인들과 비슷한 피해를 입은 것 같습니다. 나는 라다크인들이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책에서 우울한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더욱 희망적인 전망도 제시했습니다. 절망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환경 사이의 더 건강한 관계를 재건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이 책에서는 그런 방법을 더 자세히 소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현재 내가 몸 담고 있는 로컬퓨처(Local Futures)에서는 최근에 새로운 경제 운동이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무척이나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그런 소식에 어둡습니다. 풀뿌리 차원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에너지 집약적인 성장을 계속 촉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학계뿐 아니라 환경과 사회 활동가들까지 경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에 미디어가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허울뿐인’ 녹색 정책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이나 경제 불안을 줄이는 정도로는 재난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 집약적인 생산, 소비지상주의, 장거리 과잉 무역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신재생 에너지 정책에 반대해야 하고, 대신에 ‘지역화(localization)’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지역화는 에너지 소비를 빠르게 줄이고,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자리는 늘리는 진정한 분권화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화의 넓고 깊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풀뿌리 공동체와 지자체가 협력하면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는지를 깨달으면 정말로 희망이 생깁니다. 기업화에 저항하고 로컬을 부활시키는 양갈래 해법이 세상에 더 많아져야 합니다. 세금과 보조금, 규제의 대항에 맞서고 있는 수많은 상향식 구상들이 경제 체제 안에 조금씩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더 많은 사례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알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를테면 ‘GDP가 성장한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자원과 사회가 자유 무역에 치르는 비용이 크다’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힘겨운 진실을 회피하려고 합니다. 생활과 생계의 근간이라고 배운 경제 체제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의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케이블 뉴스, 고정관념을 퍼뜨리는 소셜 미디어, 사람들을 양극화시켜 세계 담론을 집어삼키는 대립적인 흑백논리에 머문 주류 채널의 정보를 넘어서, 실제로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봐야 합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어디를 가든지 아름답고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자연에 기반한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는 이 사람들은 세계화의 혼돈에서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가치를 회복하려고 노력하며, 인간애를 기반으로 사회를 재편하고자 혁신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동식물과 교감하면서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기쁨을 깊이 누립니다. 로컬 푸드 프로젝트, 로컬 비즈니스 연맹, 로컬 금융 기회, 공동체 기반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 등은 여러가지 방법 중 일부 사례에 불과합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튼튼한 지역화 공동체와 국제적인 조직에 기반하여 ‘행복의 경제학’을 위한 운동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사회와 생태계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반드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 온전한 경제를 회복하려면 전 세계의 로컬 경제가 튼튼해져야만 합니다. 지난 40년 동안 나는 1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일하면서 여러 대륙의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하고 수많은 구상들을 진행해 왔습니다. 바로 그 새로운 경제를 위한 글로벌 운동의 선봉에 대한민국이 있어서 기쁩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큰 그림 행동주의’에 동참하기를 , 그래서 한국에서 새로운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2018년 가을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