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중국, 상하이 '지펑서원'

이춘아 2020. 12. 20. 07:38

김언호, [세계서점기행], 한길사, 2016

지펑서원(季風書園)

오늘의 지펑서원을 만든 창립자 예보페이를 우선 언급해야겠다.  화둥사범대학에서 공부한 옌보페이는 문화대혁명 이후의 대학 본과 첫 졸업생이다. 서점 일에 뛰어들기 전 10여 년간 상하이사회과학원에서 중국 근대사상사를 연구했다.
옌보페이에게 서점이란 미국의 과학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에 나오는 ‘기지’ 같은 것이다.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밝혀주는 ‘희망의 등대’ 같은 것이다.

“서점이란 한 시대의 사유와 사상이 표현되는 공간이고, 책의 선택과 진열이 그 행위다. 서점이란 시대정신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다.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다.”

지펑서원은 문을 열면서부터 ‘독립된 문화적 입장, 자유로운 사상의 표현’을 서점의 철학으로 삼았다. 스스로의 길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한 서점의 사회적 명성은 ‘책의 선택과 진열’로 결정된다. 옌보페이는 “책의 선택과 진열이 지펑서원의 가장 중요한 전략”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나는 서점의 핵심 업무는 구매와 진열까지 포함하여 책 선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책을 사들이고 어떻게 진열하느냐가 서점의 문화적 가치를 표현한다. 지펑서원이 막 문 열었을 때, 나는 책 선정하는 일에 정력을 쏟았다. 선정된 책을 집중해서 전시하고 반복해서 추천했다.”

지펑서원은 세계의 고전과 오늘의 중국인과 중국 사회가 요구하는 문제작들을 비치한다. 열린 문제의식을 담론하는 이론과 지성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존 롤스, 발터 베냐민과 자크 라캉, 세계은행의 보고서와 전위예술이 지펑서원의 주제적 책들에 속한다.
지펑서원은 매주 [지펑수쉰]을 발행해 온라인으로 독자들에게 보낸다. 직원 5,6명과 함께 옌보페이가 주편하는 북리뷰로, 2015년 7월 초 현재 406호까지 발행했다. 매주 20여 권의 책을 추천한다. 406호가 ‘중점 추천’한 예젠후이의 [포피아: 라틴아메리카 해방신학 연구의 초보]에 대해 옌보페이는 쓰고 있다.

“1968년 세계를 휩쓴 혁명적 물결 가운데 우리가 아는 것은 ‘프랑스의 5월 혁명’, 미국의 반전운동과 신좌파 운동, 체코의 ‘프라하의 봄’, 중국의 홍위병과 문화대혁명이다. 이런것들 못지않게 당대를 휩쓴 ‘해방신학’에 대해서 우리는 알지 못한다. 계시록처럼, 신의 살림을 해방의 경험으로 표현한 라틴아메리카의 좌익혁명은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우리에게 알려졌다. 이 책은 중국연구자로서 처음으로 써낸 해방신학연구서다.

해방신학은 매우 특수한 혁명운동이다. 천주교 신부들이 1968년에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쟁에 뛰어들었다. 군부독재에 맞서 해방신학은, 기독교의 핵심은 ‘전지전능’이 아니라 ‘전선’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는 고난의 세계를 변화시킬 책임이 있으며, 이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1968년부터 78년까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성직자 850명이 가난한 자들을 위한 투쟁에서 목숨을 잃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에서 해방신학은 마르크스보다 더 중요하다. 기독교는 가장 영광된 역사를 만들었다’고 했다. [토피아]는 인민이 일어나 저항해야 유토피아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저자의 이러한 태도와 생각을 지지한다.”

지펑서원은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서점을 열었다. 가장 물질적이고 대중적인 공간을 따라 지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을 존재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펑서원과 상하이지하철공사의 10년 임대차 계약이 2008년에 만료되었다. 지하철공사는 임대료 인상을 통보해왔고 지하철 1호선 산시난루 본점은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이 소식은 문화계 인사들과 독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청년들이 ‘지펑보위’를 위해 연좌농성을 계획했다. 인터넷에는 연좌농성 참여를 독려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지펑에서 새로운 지식을 세례받은 모든 사람
지펑에서 알게 되어 의기투합한 모든 사람
지펑에서 감동의 새 책을 발견한 모든 사람
우리들은 엄숙하고 친근하며 온화한 지펑을 좋아한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펑에 나붙는 목록과 독품을 좋아한다.
우리는 지펑의 통통 소리나는 나무바닥, 어둑한 카페, 값싼 커피
때때로 울리는 휴대전화 신호음을 좋아한다.
먼 길을 떠나와서도 지펑이 생각난다.
지펑은 1호선의 심장이다.
과로한 직장인의 마음의 안식처다. 지펑이 문 닫으면 상하이는 삼류도시가 된다.
이제는 지행합일의 정신으로 일어나
자신의 생활환경을 지켜내자.”

2013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이하여 ‘새로운 지펑’이 지하철 10호선 상하이도서관역에서 문을 열었다. 언론들은 ‘지펑서원의 존속’을 크게 보도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영서점의 앞날’이 그리 밝지 않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지펑서원은 5만여 권의 책을 비치하고 있다. 하루에 평균 300권 정도씩 판매된다. 카페공간이 약간 도움을 준다. 서점이 빌려 쓰는 공간이 국가기관인 상하이도서관의 것이기 때문에 임대료는 그렇게 비싸지 않다.

‘지펑 같은 서점은 정부가 좋아하지 않지요. 우리의 고유한 성격을 지키기 위해,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지펑서원은 우리들 정신의 화원이다.” 1972년생인 한 독자는 그의 생각을 사이트에 올렸다. “10대의 소년이 지펑서원에 드나들면서 청년이 되었다. 항해에 지친 배를 품어주듯 지펑은 내 영혼의 항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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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세계서점기행]이 출간된 후, 2018년 1월 지펑서원은 문을 닫았다. 국민일보에 의하면,

계풍서원季風書園이마지막으로 자리잡은 상하이도서관은 지난달 초 계풍서원에 임대계약 연장 불가를 통보했다. 국가소유 자산운영 방침이 강화됐다는 이유였다. 상하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임대장소를 알아봤지만 결국 새 장소를 찾는 데 실패했다. 임대업자들은 임대를 주겠다고 하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정부에서 경고장이 날아왔다며 손을 내저었다.
단골손님이었다가 2012년 서점을 인수해 운영해 온 유미아오씨는 “계풍서원이 사라진 근본적인 이유는 임대료도, 장소의 문제도 아니다. 다양한 문화를 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아사히에 토로했다. 헌법학자이자 인권변호사인 장쉐종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계풍서원의 폐점은 중국 정부가 강화하고 있는 사상 통제의 연장선상에 있다”면서 “정부는 더 이상의 자유로운 사회적, 문화적 행사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903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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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세계서점기행]에 소개된 서점은 다음과 같다.

영국, 런던 ‘돈트 북스 Daunt Books’
영국, 안위크  ‘바터 북스 Barter Books’
프랑스, 파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Shakespeare & Company’
벨기에, 브뤼셀  ‘쿡 앤 북 Cook & Book’
영국, 웨일스  ‘헤이온와이  Hay-on-Wye’
노르웨이, 오슬로  ‘트론스모 Tronsmo’
미국, 펜실베니아  ‘미드타운 스콜라 Midtown Scholar’
미국, 매사추세츠  ‘북밀 Bookmill’
미국, 뉴욕  ‘스트랜드  Strand’
미국, 뉴욕  ‘맥널리 잭슨 McNally Jackson’
중국, 베이징  ‘완성서원’
중국, 베이징  ‘싼롄타오펀서점’
중국, 베이징 ‘당샹공간’
중국, 상하이  ‘중수거’
중국, 난징  ‘셴펑서점’
타이완, 타이베이  ‘주샹쥐’
일본, 도쿄  ‘크레용하우스’
일본, 도쿄  ‘기타자와서점’
부산, 부전동  ‘영광도서’
부산, 보수동  ‘보수동 책방골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