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인체, 우주에서 가장 경이로운 공동체
이춘아
2021. 1. 10. 07:08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저녁에 집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작고 어두운 형체가 날쌔게 도로로 뛰어나온다. 아르마딜로나 주머니쥐일 것이다. 그 생각이 들기도 전에 내 발이 본능적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다. 곧 자동차가 옆으로 미끄러질 거라는 예감에 대책 없이 아찔해진다. 수막현상으로 미끄러져 뒷바퀴가 오른쪽으로 홱 돈다. 내 두 손이 운전대를 더 꽉 쥔다. 잽싸게 팔목을 몇 번 놀린 덕분에 자동차는 미끄럼을 멈추고 마침내 균형을 되찾는다. 운전대를 움켜쥘 필요가 없어진 나는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심호흡을 하며 속도를 늦춘다.
상황이 종결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3초쯤이다. 빗길을 건너는 동물 때문에 위험하게 미끄러지는 자동차를 가까스로 정지시켰다. 여기까지는 내 몸 밖에서 벌어진 사건이며 단순한 사실이다. 집에까지 운전하는 동안 나는 몸속에서 벌어진 몇 가지 사건을 되집어 본다. 온몸에 퍼진 아드레날린 때문에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다.
그 위기의 순간에 영향을 받지 않은 내 신체 부위는 거의 없다. 뇌는 반사 반응을 동원해 발에게 브레이크 페달을 밟도록 지시했다. 동시에 시상하부에서 주문한 여러 화학 물질이 내가 빛의 속도로 대응하도록 준비시켰다.
시력도 강화되었다. 동공이 확대되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빛이 더 많이 들어와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심장이 더 빨리 뛰고 더 세게 수축함과 동시에 혈관 근육의 이완으로 혈관이 넓어져 혈류가 증가했다. 다른 근육들도 경계 상태에 돌입했다. 혈액 구성도 달라져 근육에 추가분을 비상 공급하고자 혈당이 치솟았고, 상처 복구에 대비해 응고인자가 증가했다. 허파의 기관지도 확 넓어져 산소 공급이 더 신속해졌다.
피부 혈관은 수축해 혈색이 백지장처럼 하애졌다. 혈류의 감량은 자칫 부상을 입었을 경우 표피에서 일어나는 출혈 위험을 낮추는 한편, 근육으로 보낼 혈액을 더 확충했다. 혹시 침입할지 모르는 세균에 맞서는 방어 반응으로 피부의 전기 저항도 변했다. 땀샘이 활성화되어 운전대를 쥔 손바닥의 마찰을 높여 주었다.
한편 당장 꼭 필요하지 않은 기능은 둔화되었다. 소화는 거의 멈추었다. 소화 기능과 신장의 여과 기능을 맡은 혈액이 더 급하게 필요한 쪽으로 재배치된 덕이다.
나는 두려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며 조심성이 더 많아졌고, 덕분에 이후 더 달려야 하는 약 30킬로미터를 가는 동안 운전에 더 집중했다. 몸속에서 이미 전면전이 벌어져 “공격 아니면 도피”라는 전형적인 갈림길에 대비한 결과였다. 수십 조에 달하는 세포의 각기 다른 반응을 총괄한 숙련된 책임자는 누구일까? 아드레날린이라는 단 하나의 화학 물질이다.
우리는 매일 아드레날린의 작용을 경험한다. 우레 소리에 깜짝 놀라거나 충격적인 소식을 듣거나 위험한 동네를 운전하여 지나거나 비틀비틀 넘어질 뻔할 때 등이 좋은 예다. 아드레날린의 반응은 워낙 순식간에 자연스럽게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가 멈추어 모든 개입 요소를 되집어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아드레날린은 내 몸속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세포의 협력 반응을 이끌어 내는 수많은 호르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몸이 전체를 위해 어떻게 수많은 세포를 연합시키는지를 의학계에서는 “생체 항상성”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의사이자 작가인 월터 캐논 박사가 [인체의 지혜]라는 고전에 이 용어를 도입했고, 아울러 “공격 아니면 도피 반응”이라는 표현도 만들어 냈다. 그가 보기에 몸이란 의식적으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상태를 추구하는 하나의 공동체다. 몸은 각종 체액과 염분의 불균형을 바로잡고, 자연 치유를 동원하고, 필요에 따라 자원을 배치한다. 이 모든 활동의 목표는 건강한 “내부 환경”을 유지하는 데 있다.
몸이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추구하다 보니 심장 박동률, 체액 조절, 발한 등의 이 모든 작용은 매초 단위로 조정된다. 호르몬 같은 화학 물질인 각종 프로스타글란딘이 몸의 세포를 푹 적시는데, 그중 어떤 것은 혈압을 낮추고 어떤 것은 협압을 높인다. 어떤 것은 염증을 유발하고 어떤 것은 염증을 억제한다. 이들 체액은 전달자처럼 세포에서 세포로 이동하며 몸의 조직을 거의 모두 순환한다. 그리하여 별개의 세포들과 기관들을 연결시켜 일제히 협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