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출산의 기적과 경이
이춘아
2021. 1. 10. 10:00
폴 브랜드 & 필립 얀시, [몸이라는 선물], 두란노, 2020.
마침내 때가 차매 아이가 태어난다. 탯줄은 파동을 멈추고 점차 말라붙는다. 독립생활의 드라마가 시작되면서 즉시 아기의 세포들이 힘을 합해 새로운 환경에 협력하고 대응한다. 얼굴은 강렬한 불빛과 건조한 공기를 꺼려 주춤하고, 근육은 씰룩씰룩 어색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유연하게 풀린다. 이제 산소가 태반이 아닌 허파를 통해 공급되므로 난생 처음 허파에 공기가 밀려든다. 기관지의 작은 갈래들과 횡격막 근육 등 호흡의 모든 구성 요소가 동시에 작동을 시작해야 한다.
아기는 독립하여 자유로워졌으나 아직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다행히 엄마의 몸은 이 새로운 역할에 대비해 열한 살 무렵부터 준비를 해 왔다. 여성에게만 존재하는 한 특정 호르몬이 사춘기 때부터 조금씩 분비된다. 지금도 모든 소녀의 몸속에는 수백만의 세포가 잠복해 있어, 체내에 분비되는 모든 호르몬의 분자 구조를 검사한다. 우리가 이메일 우편함을 살피면서 그중 시급히 조치할 일을 가려내는 것과 비슷하다. 몸의 세포 가운데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화학 물질을 무시한다. 유방세포만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증식하고 확장되어 좌우 대칭의 성숙한 유방을 이루며, 그때부터는 임신을 해서 활동에 나서야 할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아기는 경험이 없다. 유방을 본 적도 없고 사실은 아직 눈조차 뜨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런데도 엄마 젖에 닿는 순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본능적으로 안다. 아기는 유연한 살갗 부위 위로 입을 오므리고 인후 근육을 수축시켜 힘껏 빠는데, 이때 성대문을 닫아 성대문이 액체에 잠기지 않게 한다. 영양학자들은 각종 비타민, 영양소, 항체, 소식세포 등을 완비한 모유라는 신기한 액체를 연구하며 감탄한다. 어쨌거나 아기는 언제 어떻게 빨아야 할 지를 알 뿐이다.
곧 아기가 자라 가면서 몸에서 불가사의한 협응이 전개된다. 각종 호르몬이 발육을 조절하는 대로 신체 부위에 따라 본래 크기보다 두 배, 세 배, 심지어 수백 배까지 더 커진다. 모든 신체 부위는 그것을 떠받치는 조직들에 비례해 자라며, 이에 맞추어 성장 단계마다 혈관도 더 길어진다. 요컨대 수많은 지체가 일사불란하게 협력한다.
기적과 경이 같은 단어를 빼놓고는 출산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 현상은 아주 예삿일로 벌어져 현재 지구상에 살아 있는 증거만도 70억이다. 세포들로 뭉친 그 덩어리에서공동체의 희열이 기원한다. 아기의 일생에는 자신의 첫 옹알이에 환호하는 엄마를 보는 기쁨, 자신의 독특한 재능과 은사를 발견하는 일, 타인과 함께 나누는 데서 오는 충족감 등이 뒤따른다. 아이는 많은 세포의 산물이지만 하나의 유기체다 약 40조 개의 모든 세포가 아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