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이렇게 살고 싶겠네요

이춘아 2021. 1. 23. 06:43

조엘 셀러틴, [돼지다운 돼지], (CR번역연구소 옮김), 홍성사, 2020.


어떻게 하면 돼지의 돼지다움에 경의를 표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돼지의 영광, 그 독특성을 존중하는 농장의 식품체계를 만들 수 있는가? 돼지의 독특함, 그 특별한 속성은 무엇인가? 돼지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무엇보다 돼지는 동물이다. 동물은 식물과 달리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태어났다.

밀집사육 시설을 갖추고 좁은 철창에 암퇘지를 가둬 키우는 현대 양돈산업장에 그 동물들이 있다. 그곳에서는 동물들이란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가정 하에 운영한다. 태어나 단 한번도 몸을 돌릴 수 없을 만큼 비좁은 철창에 가둬 놓고 사육하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간주한다. 산업형 양계장의 산란용 달은 또 어떤가? 가로 약 60센티미터 세로 약 40센티미터 크기의 닭장 안에 닭 일곱 마리를 몰아넣은 장면을 상상해 보라. 한 마리당 복사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을 차지하는 셈이다. 날개를 뻗을 수도 없고, 일곱 마리가 동시에 움직일 공간이 없어 번갈아 가면서 움직여야 한다.

돼지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두 번째 사실, 돼지는 코끝에 아주 멋진 쟁기를 달고 있다. 쟁기 덕분에 돼지는 참으로 특별한 존재가 된다. 이 말은 돼지의 영광, 그 독특한 특성이 뭔가를 사방으로 옮기고 갈아엎으며 토양을 뒤섞어 놓는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 농장은 돼지를 이용해 퇴비를 만든다. 소에게 건초를 먹이는 겨울이면 축사 바닥에 나뭇조각, 지푸라기, 땅콩 껍데기 등 각종 탄소성분 물질을 깔아 두는데, 이 바닥 깔짚이 일종의 탄소질 기저귀 역할을 하면서 소 엉덩이에서 떨어지는 영양분을 매일 20킬로그램 이상씩 흡수한다.

갈수록 점점 두터워지는 깔짚에 옥수수를 뿌리고, 건초 먹이통도 깔짚 높이만큼 위로 올려 평평하게 맞춰 준다. 소가 밟아 산소가 다 빠져나간 깔짚은 무산소 상태가 되면서, 발효하기 시작한다. 봄이 되어 소들이 신선한 풀을 뜯으러 다시 밖으로 나가고 나면, 우리는 겨우내 건초 먹일 때 사용하던 축사에 돼지를 풀어 주는데, 돼지들은 탄소질 기저귀, 즉 깔짚에 파묻힌 발효 옥수수를 찾아낸다. 돼지들이 깔짚 여기저기를 갈아엎고 공기가 통하면서 깔짚은 무산소성 물질에서 유산소성 퇴비로 바뀐다. 우리는 깔짚에 공기를 통하게 하고 갈아엎는 이 돼지들을 ‘통기 돼지’라고 부른다.

이는 사용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기계 대신에 활용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동물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경제성이 높을 뿐 아니라, 돼지의 돼지다움에 충분히 경의를 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돼지에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돼지에겐 낙원이 따로 없다. 깔짚을 찢고 뜯고 파고들어 그 안에 묻힌 발효 간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돼지가 좋아하는 가장 돼지다운 일이다.

이쯤 되면 돼지는 단순히 안심이나 갈비 고기가 아니다. 함께 땅을 치유하는 동료 사역자이다. 한 팀에 속한 동역자! 우리가 돼지의 영광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영적 울림을 경험하는 순간,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돼지는 더 이상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동일한 비전을 공유하고 농장의 필요에 본능적으로 참여하는 동료 일꾼이다. 그들은 수천 년간 이어 온 돼지의 영광으로부터 춤사위를 이끌어 내는 정교한 안무의 일부이다. 이것이 바로 태곳적부터 전해 오는 돼지 설화의 기본 뼈대이다.

우리 농장에서는 돼지들이 퇴비 만드는 작업을 끝내면 그 계절 대부분은 밖으로 끌고 나가 목초지에 풀어놓거나 잘 익은 도토리가 그득한 숲속 계곡에 풀어놓는다. 전기울타리로 통제해 가며 며칠 간격으로 방목지를 옮겨 주기 때문에 돼지들은 신선한 흙과 싱싱한 야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잊지 말자. 돼지는 잡식동물이라 좋아하는 먹거리가 다양하다. 닭만큼이나 벌레와 지렁이까지 좋아한다.

우리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돼지를 방목하면서 원하는 모든 먹이와, 돼지가 더럽힐 수 없는 특수 물통에 담은 깨끗한 물을 주고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나 이동식 차양막 장치를 설치한 곳에서 쉴 수 있도록 해 준다. 돼지들은 뿌리를 찢고 다양한 식물을 맛보며 알풍뎅이 등 각종 단백질 거리를 찾아 먹는다. 내가 들어 본 말 중 가장 깊은 뜻을 담은 말은 아마도 우리 농장에 왔던 한 요리사의 입에서 나온 것 같다. 우리 농장을 보고 싶다길래 함께 둘러보는 중에 돼지 무리가 있는 그곳에 이르자 그는 살아 있는 돼지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돼지들의 익살스럽고도 자연스러운 행동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몇 분 정도 지켜보더니 그는 짤막히 말했다. “내가 돼지라면 이렇게 살고 싶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