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예술의 존재 방식

이춘아 2021. 2. 14. 04:03

이지영, [BTS 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파레시아, 2018


방탄과 아미가 야기한 사회문화적 변화가 어떤 정치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지, 방탄의 예술이 어떤 변화의 힘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지를 간략히 살펴보자.

‘방탄현상’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방탄과 아미가 이루어낸 사회 문화적 변화다. 이 변화는 방탄이 탁월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음악과 퍼포먼스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제시한 데서 출발한다. 방탄의 메시지에 촉발된 팬들의 반응은 예상 경로를 벗어나 사회의 기존 위계질서를 침식, 해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팬들이 방탄을 지지하는 방식은 온라인상의 강력한 연대라는 집단적 실천으로 진행되었고, 이는 오프라인 현실 공간에 침투하여 기존 위계질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모바일 네트워크는 온라인의 연대와 실천이 오프라인 현실을 변화시키며, 온라인의 위력이 현실 공간으로 섞이는 혼종적 공간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변화는 무엇보다도 미디어 권력과 인종적, 언어적 권력 관계에 대한 침식으로 나타난다. 팬들의 연대가 직접적으로 정치적 변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야기한 사회문화적 변화에서 리좀적 혁명으로서의 정치적 함의를 발견할 수 있다.

둘째, 방탄과 아미가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예술형식의 변화다. 방탄의 뮤직비디오 및 관련 영상들은 단순히 노래의 홍보 매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래가 지닌 메시지와 의미를 다양하게 확장한다. 몇 년에 걸쳐 공개되고 있는 그들의 뮤직 비디오들과 관련 영상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각기 별개로 분리해서 이해할 경우에는 이해가 쉽지 않다. 온라인 공간에 펼쳐져 있는 그들의 영상들은 그러한 관련성으로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관객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영상들을 관련 지으며 새로운 동영상을 생산하고 자신들의 해석을 그 영상들 사이에 추가한다. 이렇게 끝없이 생산되는 방탄과 팬들의 생산물은 미리 정해질 수 없는 네트워크를 이루며 의미를 확장하고 변형한다.

나는 이러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새로운 영상들의 배치를 ‘네트워크 이미지’라고 부르고자 한다. 방탄과 팬들은 새로운 예술형식인 네트워크 이미지를 함께 생산하여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의 역할이라 할 수 있는 ‘공유가치’를 제시한다. 이전처럼 예술가가 생산한 작품을 수용자가 단순히 받아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예술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끝없이 가로질러지면서 네트워크와 작품의 경계가 유동적으로 변하는 예술 생산의 형식 속에서 예술가와 수용자가 함께 생산하고 실현해나가는 것이 바로 공유가치이다.

예술가가 아닌 우리는 이 세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단편적으로 느끼고는 있지만, 파편적으로 드러나는 그 모습들과 여전히 너무나 굳건히도 변화를 거부하는 땅 위의 현실들 때문에 그 전모를 제대로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은 논리적 언어와 체계로 포착되지 않은 그 세계의 변화들은 저 깊은 곳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해내는 예술가들에 의해 포착되곤 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창조해낸 새로움은 그 변화의 흐름과 관련되어 있었다. 탁월한 작품은 그저 처음 보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저에 꿈틀대는 변화의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감각적으로 제시해주는 것이다. 예술이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존속하며, 돈이 되지 않는 것은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현재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예술은 구원의 빛을 던져준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변화는 언제나 현실이라는 강한 저항에 부딪쳐왔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운 시간들을 비가시적인 변화의 시간 속에서 견뎌내야만 했다. 이 시간 동안 지진계만이 감지할 수 있을 저 깊은 곳에서는 세상의 변화를 생성시킬 수밖에 없는 갈등과 모순들이 에너지로 응축되어오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의 변화가 실상은 사람들이 확인하기 한참 전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에너지들이 꿈틀거리며 지하에서 굉음을 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그 굉음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응축된 에너지를 포착하여 감각적인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술의 존재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