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카프카의 소속과 의미망

이춘아 2021. 4. 17. 08:26


김용만, [세계문학관 기행], 서정시학, 2010.

어둠이 깔려서야 프라하에 도착하여 볼타바 강가에 있는 호텔에 들었다. 이튿날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고 곧장 버스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려 흐릿챠니 언덕에 올랐다. 평평한 정상에 성이 나타난다. A.D.870년 보헤미아 독립국의 보리보주 왕자가 세운 중세풍의 육중한 프라하 성이다. 그 성은 궁궐, 교회, 미술관, 박물관, 광장 등이 어우러진 고풍스런 문화공간으로, 카프카가 자주 산책했고 그의 소설 [성]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하다.

프라하성에는 아침부터 각국의 관광객이 번다하다. 정상에 세워져 프라하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왕궁은 모두 개방돼 있고, 그 안에는 대통령 집무실도 있다. 궁정 앞 광장을 에두른 르네상스식, 바로크식 등 고풍스런 건물들이 역사의 하중을 드러낸다. 왕궁 정문 양편에 세워진 제우스와 티탄의 두 석상의 모습이 아주 역동적이다.

드디어 카프카 기념관에 도착했다. 기념관도 역시 카프카답다. 마당 복판에는 파란색의 조형물로 된 두 남자의 벌거벗은 입상이 서 있고, 그들은 마주보고 서서 성기로 오줌(물)을 뿜어대고 있다. 기념관 입구 쪽 마당에는 카프카의 이니셜인 육중한 K자가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갔다. 꽤 너른 공간에 현대적인 시설로 꾸며진 전시관 입구에는 카프카의 입상이 서있고 그 옆에 설치된 판매대에서 노파가 책과 잉크, 볼펜, 사진, 엽서, 열쇠고리 등 문화상품을 팔고 있다. 전시실 내부를 차례로 관람했다. 카프카의 저서, 가족사진, 육필원고, 일상용품 등이 진열되어 있는데, 허공에 걸려 있는 여인들의 유리판 속 얼굴이 인상적이다. 처음 약혼한 펠리체 바우어와 카프카의 숱한 연서를 받은 밀레네 등 카프카와 인연이 얽힌여인들로 그 중에서도 도라 디아만트의 얼굴이 가장 육감적이다. 20대인 디아만트는 카프카와 처음 동거한 여성이며 카프카가 이 세상과 마지막으로 작별한 카를링 요양소에까지 동행한 연인이다.

카프카에게 있어 문학은 그가 살아가는 존재의 당위였다. 독신과 채식을 고집한 카프카는 허위가 진실이 되어버린 현실세계와 맞서기를 서슴지 않았는데,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문학이란 주먹으로 뒤통수를 때려서 각성시켜주는 것이며 우리 내면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썼다.

소년시절부터 스피노자, 헤겔, 니체 같은 철학자에 빠졌던 카프카는 원죄와도 같은 상처를 지닌 채 이방인으로 태어난 셈이다. 프라하의 도심과 유대인의 강제 거주 지역인 게토와의 중간 지점에서 태어난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정통적인 동방 유대인이 아닌 유럽화한 서방 유대인이었으며, 유대교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도도 아니었다. 프라하에서 태어났지만 체코인이 아니고, 독일어를 사용했지만 독일인도 아니고, 관청에 다녔지만 진정한 관리도 아니었다. 그는 관료의식이 없었다. 프라하 노동자 재해보험국 법규과에 근무하면서도 밤에는 새벽 두세시가 넘도록 소설이라고 하는 반역행위에 몰두했던 것이다.

카프카는 그의 작품 주인공들처럼 중간적 위치에 머물렀고, 이 경계지대에서 그는 평범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인과율이 어긋난 모순된 세계를 본 것이다.

전쟁과 인간성 파괴의 먹구름이 드리우던 20세기 초의 위기감과 요세프1세의 해방령(유대인 거주 자유)에도 불구하고 아직 잔존하는 유대인에 대한 관습적인 배타가, 민감한 카프카의 체질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머지않아 닥쳐올 홀로고스트 참상의 사회적 기류가 체감되었을 테고, 그 막연한 불안감이 그의 출생지역이 상징하는 바와 같은 중간적 입장이란 심리 상태로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카프카는 그 중간지점을 평생 벗어난 적이 없는데, 그 경계적 입장이 적극적인 삶의 형태로 작용하여 소속이란 주체항에도 영향을 끼친 게아닌가 싶다.

“고독한 내면세계와 공동사회 사이의 이 경계지대에서, 나는 거의 밖으로 넘어선 적이 없다.
나는 내면세계보다는 이 경계지대에 보다 더 오래 정착해 있었다.”

카프카의 문학은 실존주의가 형성되는 시기와도 맞물린다.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인간의 존엄성은 여지없이 추락하고 일반 대중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했으며 획일적인 규격품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었다.

자연히 어디에든 소속될 수밖에 없었다. 소속되지 않으면 존재하는게 아니었다. 카프카는 유고 [아포리즘]에서 이렇게 썼다.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과 동시에 “거기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요컨대 인간존재는 세계 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세계에 ‘소속’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세계의 법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법은 법률규범을 의미한다기보다 관습적으로 통용되는 약속이나 체계를 의미하며 신이나 종교적 율법, 관료주의나 경제 이데올로기 등으로 확대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방대한 경제구조는 공동사회의 기능적인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인간만을 선호한다. 자기 자신의 개성과 본질은 용인될 수 없다. 개별성은 악의 개념이다.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잠자는 자신의 본질을 인식했다가 추악한 딱정벌레가 되고 말았으며, [투쟁의 기록]에서는 인간을 “은박지 종이로 만들어진 인형들”로 묘사했고, 미완성 작품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에서 주인공 라반은 자신을 주체적인 ‘나’가 아닌 획일적이고 기능화된 세인이라고 불렀다. 세인으로서의 인간은 사랑이니 영혼세계니 하는 중심 가치가 거부된다. 개인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거니와 카프카는 그것들을 딱정벌레처럼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사물로 형상화한다.

카프카 작품의 특색은 작품마다의 형식이나 인물이 작품의 문맥에 따라서 기능이 다양하게 변화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 “형식이나 인물을 일률적으로 동일 선상에 놓고 규격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결론적으로 카프카 작품의 신비성과 난해성은 낯설게하기 식의 표현법과 같은데, 그 낯설음은 카프카의 반역정신에서 싹이 텄다고 볼 수 있다. 카프카의 작품들에 그려져 있는 것은 일상의 이치나 습관이 거의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