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몸의 요구
이춘아
2021. 7. 24. 07:50
때로는 ‘본능적인 느낌’이 정확한 정보일 수 있다. 그러한 본능적 반응을 느끼는 신체부위, 즉 태양신경총(명치) 역시 또 다른 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곳은 우리가 안전한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를 알게 해주는 직관의 중심처이기도 하다.
우리는 몸의 요구에 순응하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단순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곤하면 쉬어라.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가라. 이 책을 읽는 도중 울고 싶어지면 마음껏 울어라. 어떤 부분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면 더 열심히 읽어라. 그 부분의 내용이 당신을 힘들게 하는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당신에게서 일어나는 반응을 상세하게 기록해두라.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호흡이 어떻게 변하는지 주목해보라. 호흡이 달라지는가? 심장 박동은 어떤가? 자궁이나 월경주기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엣 기억이나 몸의 느낌이 떠오르지는 않는가?
여성은 매순간 닥쳐오는 몸의 느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치유를 위해 여성은 몸으로 들어가 다시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몸이 지닌 내면의 지혜를 믿어야 한다.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대한 이유를 찾을 것도 없다. 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왜 갑자기 울고 싶은지 이유를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한 느낌을 마음껏 경험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유를 알게 된다. 치유는 몸과 머리에서 일어나는 유기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기분이 언짢거나 짜증스럽다면 그러한 느낌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면 된다. 그러한 느낌을 마음껏 발산하라. 그렇게 하고 나서 몇 시간, 혹은 며칠 뒤에 그때의 기분을 돌이켜보라. 몸이 아프다면 최근에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그러면 그러한 징후의 원인이 되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손과 얼굴이 마비되는 기분을 느꼈다. 조만간 편두통이 닥칠 것이라는 징조였다. 나는 열 두 살 때 전형적인 편두통을 앓았다. 그 후 대학교 2학년 때까지는 매달 한두 번씩 겪는 행사였지만, 거의 20년 동안은 전혀 증세가 없었다. 성인이 되면서 나는 편두통을 잊기 위해 수업과 과외활동에 몰두했다. 스트레스가 내 몸의 전자기 계통의 통로를 완전히 차단시켰다.
그러나 과거 친숙했던 고약한 느낌이 다시 닥쳐왔을 때, 나는 지체없이 그 느낌을 무언가 새롭게 배울 기회로 삼았다. 그리고 얼음주머니를 목에 괴고 누워 조용한 분위기에서 두 손을 따뜻하게 하는 데 열중했다. 생체자기제어 치료사에 따르면, 몸의 긴장을 풀면서 손을 따뜻하게 하면 편두통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나는 지독한 두통을 피해갈 수 있었고, 약 1시간 후에는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사흘 전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몇년 간 팽개쳐두었던 집안 일을 단 이틀 만에 정리해야 했다. 일요일 저녁 나는 몹시 초조해졌다. 밥 먹을 틈도 없고 샤워할 시간도 없었다. 심지어 허리를 펼 시간조차 없었다. 잠자리에 들 때 쯤에는 머리가 묵지근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편두통 증세가 있었다. 내 몸이 절대적인 휴식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증세를 경고로 받아들였다.
내가 이상의 경험에서 얻은 치유의 원칙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처음에 몸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를 무시하면 다음에는 더 큰 고통이 찾아온다. 어떠한 감정이든, 감정은 우리에게 느낌을 전해주며 삶에 더욱 충실하도록 해준다. 내면의 인도자를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감정을 철저히 신뢰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위급한 상황에 있는 것처럼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대개는 “감정은 나중에 생각할 거야. 지금은 시간이 없어. 저녁 준비하기도 바빠.”라고 말한다. 그러나 감정의 해결을 뒤로 미루고 부정함으로써 몸은 더욱 우리의 관심을 얻으려고 몸부림치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웃고 싶거나 울고 싶으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러한 감정을 마음껏 느껴라.
우리는 항상 명랑하고 즐겁다고 ‘생각’하도록 배웠다. 그렇게 느끼도록 길들여진 것이다. 슬픔이나 고통은 삶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며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슬픔이나 고통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슬픔이나 고통은 나쁜 것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해가야만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우리에게는 고통을 이겨낼 내면의 능력이 있으며, 우리 몸은 그 방법을 알고 있다. 울음은 몸에서 독성을 씻어내는 한 방법이다. 울음은 에너지를 몸으로 모아준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다른 방향으로 흘려보내거나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게 해준다. 그러나 감정을 억압하면서 운동이나 진정제 등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눈물, 즉 감정의 표현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엔케팔린을 생성하게 된다. 눈물에는 몸이 씻어내는 독성이 들어있다.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은 화학적 성분이 다르며, 호르몬의 영향을 담는다. 그 때문에 감정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을 때 몸과 정신이 깨끗해지고 해방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주어진 상황에 대한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필요한 경우 마음껏 울다보면 종종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혜안이 얻어진다. 기쁨의 눈물은 슬픔의 눈물과 생리학적 화학적으로 다르지만, 기쁨과 슬픔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슬픔의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하면 기쁨의 깊은 맛도 느끼지 못한다. 둘은 서로 다른 감정이지만 몸의 느낌을 ‘소화’해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