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모두의 경험이 글로 집약되어
이춘아
2021. 9. 25. 23:57
나는 그렇지 않다. 책을 읽을 때 얻는 다양한 양분이 근육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기분이다. 따라서 도서관의 불을 꺼도 내가 방금 덮은 책의 목소리와 흐름은 잠자리까지 따라온다. 나는 오랜 경험을 통해 다음 날 아침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 전날 밤 그 주제에 대해 책을 읽으면, 그 내용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뿐만 아니라 책에 언급된 실제 사건들까지 꿈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램지 부인(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의 주인공)의 쇠고기 스튜에 대한 설명을 읽다보면 배가 고프고, 페트라르카의 [방투 산을 오르며]를 읽으면 숨이 가빠진다. 또 존 키츠가 수영하던 장면을 묘사한 글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솟고, 러디어드 키플링의 소설 [킴]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다정한 우정으로 내 가슴이 채워진다.
밤의 상상을 한껏 북돋우기 위해 나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한다. 종이를 보고 만지며,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사각대고 바스락대는 소리에 귀를 바싹 세우고, 책등을 꺾을 때 나는 섬뜩한 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또 책꽂이의 나무 냄새, 가죽 장정의 은근한 곰팡내, 색을 잃어가는 문고본의 아릿한 냄새까지 맡고 나서야 나는 편히 잠들 수 있다.
낮에는 집중적이고 체계적으로 독서하려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지만, 밤에는 근심을 덜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낮이나 밤이나, 나의 도서관은 사적인 세계이다. 크고 작은 공공 도서관과는 사뭇 다르다. 유령 같은 전자 도서관과도 무척 다르다. 세 도서관의 구조와 관습은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을 조화 있게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고, 정보를 분류해서 분배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만은 세 도서관 모두 공통적으로 갖는다. 동시에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두고, 인색함과 무지 및 무능과 두려움으로 인해 다른 독서가들의 경험을 배제하려는 명백한 의지도 세 도서관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처럼 겉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상생과 배척이 한결같이 계속되어왔고 만연해 있기 때문에서, 적어도 서구 세계에서 도서관은 우리의 모든 것을 대신하는 두 기념물을 확실한 상징물로 갖게 된다.
내 작은 도서관은 두 불가능한 열망 - 모든 언어를 끌어안으려는 바벨탑의 욕망과 모든 책을 보관하겠다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바람-을 떠올려준다. 알렉산드리아의 사서들은 하나의 지붕 아래에 최대한 많은 책을 보관함으로써, 무심한 사람에게 맡겨질 때 자칫하면 파과될지도 모를 위험으로부터 책들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따라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힘을 상징하는 건물인 동시에, 시인들이 흔히 우리에게 말하듯이 기억에 종지부를 찍는 죽음을 이기기 위해 세워진 기념물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 지배자들과 사서들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사라지고 말았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세워졌을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전혀 모르듯이, 도서관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서도 확실히 아는 바가 없다. 역사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종말은 그 실제 모습만큼이나 아리송하다. 바벨탑은 역사적으로 실제로 존재했더라도 야심차기는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부동산 사업이었다. 하지만 신화로서, 또 밤의 상상의 산물로서, 두 건축물의 원대한 꿈을 비난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온갖 상상과 지식이 망라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빼곡한 서가들 사이를 배회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를 통해, 우리가 어렵게 모은 모든 것을 잃더라도 많은 것은 다시 되찾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원대한 야망 속에는 한 사람이 경험한 것이 언어의 연금술을 통해 모두의 경험이 되고, 모두의 경험이 다시 글로 집약되어 그 글을 읽는 개개의 독자에게 은밀한 목표로 발전될 수 있다는 걸 배울 수 있다.
엘리아스 카네티가 1935년에 발표한 소설 [현혹]에서, 주인공인 학자 페터 킨은 외부 세계의 방해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자신과 자신의 책에 불을 지른다. 이런 점에서 페터 킨은 자신이 소유한 책에 자아가 얽매인 독서가로서, 알렉산드리아의 한 학자처럼 도서관이 사라진 후에 밤이면 먼지가 되어야 했던 독서가로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정신을 이어간 모든 후계자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7세기 초에 에스파냐의 시인 프란시스코 데 케베도가 말했듯이, 그곳은 정말로 먼지가 되었다. 그러나 케베도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구현한 정신의 무한한 존속을 굳게 믿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곳은 먼지가 되겠지만, 그건 사랑의 먼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