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다

이춘아 2021. 10. 2. 00:43

최선경, [호동서락을 가다, 남장 여인 금원의 19세기 조선여행기], 옥당, 2013.

금원(1817~ ?)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지 어느새 6년이 흘렀다. 처음에는 여러 여성인물을 찾아가는 답사안내서를 계획했다가 중간에 금원을 단독으로 쓰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녀의 삶이 그만큼 독특하고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열네 살 나이에 남장을 하고 금강산과 관동팔경 등을 유람했고, 삼십 대가 되어 용산 삼호정에서 여성들만의 시회를 열었으며, 1850년 그동안의 여행기를 한문으로 기록한책 [호동서락기]를 썼다. 19세기 여성으로서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이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을까? 

한 인물을 단독으로 다룬다는 것은 저자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운 작업이다. 게다가 [호동서락기] 이외에는 금원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자료도 별로 없었다. 그녀에 관한 행적을 여기저기에서 수집하고 퍼즐을 맞추듯 추적해가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녀를 평가한 당대의 여러 글을 접하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중국의 역사와 신화, 한시를 능숙하게 인용할 정도로 한학에 정통했으며, 당대 유명한 문장가들과도 교류한 실력자였다. 150년 전을 살았지만 그녀의 재능은 남달랐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는데 여기서 인간은 ‘남자’를 의미한다. 여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사대부 남자들은 산속 바위에까지 자신의 이름을 새겨서 흔적을 남기려 했고 문집을 쓰거나 나라에 공을 세워 공식 기록에 남고자 하였다. 하지만 여자는 아는 것이 있어도 감추어야 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죽으면서도 자기가 쓴 글을 태워 없앴다. 허난설헌이나 안동 장씨, 영수합 서씨 등은 뛰어난 문장가, 시인이었으나 ‘여자가 이름을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스스로 자기 글을 없앴다. 다행히도 주변 사람들의 기록을 통해 그녀들의 존재가 후세에 전해졌다. 그런 시절에 금원은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책을 썼다. 여자는 규문 밖을 나가지 못하고 오직 주식(酒食)이나 의논해야 한다는 구속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담장 밖으로 나선 것이다. 그녀가 특별히 더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죽고 세월이 흐르고 나면 누가 나를 기억해 줄 것인가!”

그런데 그녀의 책 [호동서락기]는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꾸준히 읽히고 있으며 그 덕분에 ‘금원’이란 이름은 잊히지 않고 알려졌다. 그녀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행을 향한 갈망이 컸지만 궁극적으로 그녀가 원했던 것은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것이었다. 명성과 명예가 그녀에게는 중요한 가치였다. 여성이 자기에게 그러한 욕망이 있다는 사실조차 숨겨야했던 시절, 그녀는 당당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금원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나는 나의 학창 시절과 친구들이 생각났다. 금원이 열넷의 나이에 자신의 불안한 현실 앞에서 여행을 갈망했듯이 우리도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면 일탈을 꿈꾸곤 한다. 하지만 금원을 통해 그 탈출은 회피가 아니라 깨달음으로 돌아올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금원과 우리의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