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악의 평범성',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하기를 멈추었을 때

이춘아 2021. 12. 4. 23:38

이동희,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철학 이야기], 휴머니스트, 2010.

'악의 평범성',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하기를 멈추었을 때

1951년 아렌트는 78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출간한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많은 주목을 받는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이렇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는 전체주의는 인간성 또는 인간의 본질을 파괴하는 세력으로 ‘공존’을 불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정부 형태라고 말을 한다. 아렌트는 이 책에서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와 수용소 군도의 시각에서 전체주의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녀는 묻는다. 인간을 조직적으로 학살하고 유대 인종을 말살하려는 전체주의 정권이 어떻게 현대에서 가능한 것인가? 

아렌트는 이렇나 물음을 파헤치기 위해 대부분 역사학자들이 쓰는 순수한 인과적 서술 방식을 쓰지 않았다. 전체주의는 단순한 역사 문제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문제였다. 전체주의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것에 저항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주의에 대한 역사적 설명뿐만 아니라, 전체주의 운동 및 지배의 본질적 구조를 밝혀내야 했다. 그녀는 반유대주의, 제국주의를 전체주의 운동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억압으로 파악했다. 

아렌트가 볼 때, 제국주의는 전체주의가 정치 세력화하는 본격적인 계기가 되었다. 제국주의의 팽창은 유럽 대중에게 식민지 인종에 대한 지배 의식과 식민지 인종주의적 편견을 전파했다. 전체주의는 이러한 인종주의적 편견을 통해 새로운 정치권력으로 등장한 대중들을 규합했다.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 시대에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개인적 이익에만 관심을 갖던 부르주아지에 의한 정치 개입이 시작된 시기였다. 부와 정치적 권력을 장악한 부르주아지는 온갖 부조리와 부패를 야기했다. 대중은 불만에 가득 차 있지만 고립되어 있으며 사회에서 주변부를  차지했다. 전체주의는 부르주아지의 탐욕과 자만에 찬 지배에 대해 이런 대중들을 규합해 그들의 세력을 얻어 나갔다. 전체주의는 이들을 교묘하게 정치 조직화하고, 거기에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까지 동원해 자신의 체제를 구축했다. 실제로 히틀러와 스탈린은 대중의 인기를 얻고 권력을 장악했으며, 대중들의 간절한 열망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체주의 지도자들은 이들 대중에게 개인적 정체성과 역사적 운동의 주체라는 허위의식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기반해 전체주의 하에서 대중은 거대한 폭력적 군중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렌트는 이러한 현상을 표현하기 위해 ‘폭력적 대중(mob)’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전체주의는 지배 수단으로 이데올로기와 테러를 사용한다. 이데올로기는 역사와 미래, 그리고 세계를 설명하는 논리적 신념 체계로서 전체주의 운동의 논리성을 제공한다. 독재정권이 무력을 사용하여 대중들을 지배하는 것과 달리, 전체주의 체제의 지배자와 대중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논리성에 스스로 굴복하고 그것을 위해 일한다. 그들에게 테러는 그들의 신념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정당화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테러’를 통해 그들의 신념에 위배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나간다. 그들은 ‘전체의 신념’을 위해 인간들의 자유와 다양성 등을 제거하고, 전체의 목적을 위한 거대한 규모의 단일한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렌트는 전체주의적 테러의 궁극적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테러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러 사람의 복지나 한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의 개조로서 종(種)을 위해 개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며, 전체를 위해 ‘부분들’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기원]이 출판되자마자 아렌트는 곧바로 유명세를 탄다. 아렌트는 그 영향으로 1951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미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그녀는 파리에서부터 12년간 무국적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녀는 무국적자의 삶을 통해 처절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국적 그 자체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권리”에 해당하는 인간의 기본 권리라는 것이었다. 이와 연관해 그녀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이자 조건으로 인간의 정치적 삶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그 결과 1958년에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을 펴낸다. 

1960년 5월24일, 이스라엘 비밀요원들은 아르헨티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납치해 이스라엘로 송환했다. 아렌트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취재하다가 깜짝 놀랐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아이히만은 성격 파탄자도 아니고 정신이상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 멀쩡하고 평범했다. 거대한 이데올로기에 도취되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칸트를 들먹이며 자기의 의무를 다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상을 위해서라면 “아버지마저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은 이상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아렌트가 보기에 아이히만은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히틀러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만이 있을 뿐, 스스로 사유할 능력이 없는 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는 자기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한 정상적인 관료였지만 책상 앞의 살인자였다. 

아이히만에 대한 아렌트의 이런 기사는 심한 반대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1963년에 ‘악의 평범성’이라는 부제가 달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나왔을 때 유대인들은 거세게 반발하며 그녀를 비난했다. 유대인들은 아렌트가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악을 사소하고 평범한 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그녀의 주장은 사후에도 많은 반대를 낳았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악행이 얼마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은 평범하지만,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해 사유하기를 멈추었을 때, 그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 주변에서 항상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아렌트는 1973년과 1974년에 행한 애버딘 대학의 기퍼드 강의들에 기초해 [정신의 삶-사유], [정신의 삶-의지]를 1978년에 출간했다. 이것은 [정신의 삶]의 1부와 2부에 해당한다. 그녀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기한 물음인 인간의 사유력과 정치적 행위의 연관을 규명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였다. 1975년에 3부 ‘판단’의 집필을 막 시작할 무렵그녀는 두 번째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의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어 가지 않고, 일생 동안 유대인 문제와 현실 정치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그녀는 인간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그리고 그러한 자유를 형성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평생 열정을 바쳐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