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사랑에 이르는 길, 깨달음에 이르는 길

이춘아 2022. 1. 16. 00:21

정여울, [헤세] (클래식 클라우드 022), 아르테, 2020.

사랑에 이르는 길, 깨달음에 이르는 길


싯다르타에게 결핍된 감수성, 그것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이었다. 사실 싯다르타는 그 누구도 진심으로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를 떠나 출가할 때도 부모의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 10분의 1만큼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출가한 뒤로부모를 걱정해본 적도, 연락을 드린 적도 없었다. 무정해 보이지만 그것이 싯다르타의 성정이었다. 

카말라는 그런 싯다르타의 무심함마저 사랑했다. 카말라가 싯다르타의 아이를 낳은 것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가 곁에 없다 해도, 싯다르타를 자신의 남편이나 아이의 아버지로 둘 수 없다 해도, 카말라는 싯다르타의 아이를 기름으로서 그를 영원히 사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싯다르타는 그런 카말라의 진심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말라가 죽고 그 아들을 돌보게 된 순간, 싯다르타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다. 아들을 처음 본 순간, 싯다르타는 더없이 순수한 사랑에 빠졌다. 카말라의 품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아들을 싯다르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뱃사공이 된 싯다르타의 초라한 입성과 가난한 살림을 경멸했다. 지극한 절제와 무소유로 이루어진 아버지의 소박한 삶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싯다르타는 아들을 곁에 두고 지극정성으로 키우고 싶었지만,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을 전해 느끼지 못하고 마침내 도망쳐버린다. 

그때부터 싯다르타는 평정심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뱃사공 바주데바와 함께 지극히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싯다르타는 아들이 도망쳐버리자 엄청난 상실감과 집착에 시달린다. 그토록 깊은 상실감을, 그토록 끈질긴 집착을, 그토록 가슴 시린 애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싯다르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아들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허위허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카말라의 옛집에 도착한 싯다르타.  아들은 싯다르타를 만나주기는커녕 하인들을 통해 문전박대하고, 아버지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싯다르타는 그래도 화가 나지 않는다. 보통 아버지들처럼 ‘이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겠다’고 마음먹지도 앖는다. 그저 한 번이라도 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싶을 뿐이다. 아들이 원하는 것을 하나도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비참할 뿐이다. 그는 아들 때문에 처음으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는다. 제발 아들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인들에게 부탁하는 싯다르타의 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싯다르타는 남 앞에서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단식할 줄 아는 것, 기다릴 줄 아는 것, 명상할 줄 아는 것은 누군가에게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는 초인적인 절제를 의미했다. 그는 처음으로 기갈난 사람처럼 강렬한 갈증을 느낀다. 그 갈증은 바로 ‘사랑’을 향한 것이었다. 부모도 여인도 친구도 그만큼 사랑해본 적이 없었던 싯다르타가 자신의 혈욱에게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 순간에야 싯다르타는 그동안 자신이 거친 그 숱한 깨달음의 훈련에서 결정적으로 빠져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의 부족하고 창피하고 덜떨어진 부분에 대한 사랑, 그리고 형편없이 망가져 보일지라도 여전히 모든 사람과 함께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사랑. 그는 이 세상 모든 존제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다. 그런 사랑이 없다면, 그는 결코 깨달음의 길을 완성할 수 없었다. 싯다르타는 비로소 눈물을 흘린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잃은 자의 슬픔을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했서였다. 

그 후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었던 바주데바와도 헤어진 싯다르타는 더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보통 사람들의 열망, 보통 사람들의 사랑, 보통 사람들의 그 모든 소소한 감정을 비로소 이해한 후의 깨달음이었다. 

마침내 고빈다와 재회한 싯다르타는 이제 더는 ‘깨달음’이라는 과제에 집착하는 목마른 수행자가 아니었다. 그는 한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이 세상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 인간의 치명적인 결함을 이해함으로써 인간을 더욱 사랑하게 된 사람, 무엇보다도 ‘사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 말일세, 고빈다, 그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이 세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아마도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이겠지. 
그러나 나에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 [싯다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