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순리를 따르는 넉넉한 마음
이춘아
2022. 2. 25. 23:08
순리를 따르는 넉넉한 마음
눈도 실컷 나빠지고, 무릎뼈도 삐걱거리고, 몸 구석구석에 피로와 나태가 찐득찐득하게 달라붙어 있는 요즘, 나는 늙은 마티스를 생각한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배가 남산만큼 부른 늙은, 무거운 마티스. 몸이 날렵하고 기운이 넘칠 때 별볼일 없는 그림만 그려대던 마티스가 그 지경에 이르러서야 좋은 그림을 그려냈다. 사람은 다 망가지고 죽을 무렵이 되어서야 자유로워지는, 괴로운 동물인가?
마티스가 살아 있던 동안 그가 그린 그림들을 연대기 순으로 쭉 나열해 놓고 고찰해 보면, 젊은 시절의 그림들은 난잡하고 지리멸렬하다. 그러나 늙어갈수록, 눈과 몸이 망가져 갈수록 그림은 활기를 띠고 정리되며 개성이 발휘되어 있다.
다 늙어 죽기 전, 지팡이에 의지해서 그 무거운 몸을 끌고 다닐 무렵, 그의 의식은 더러운 때를 다 벗는다. 한없이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고, 조화롭고….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면서 나는 그를 칭송한다.
어느 성당의 벽화를 끝으로 그는 죽는다. 그것이 성당이고 뭐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최후의 그림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 내게는 슬프고도 아름답다. 나는 죽을 무렵에는 그 지경에 도달해 볼지도 모른다는 꿈을 갖게 된다.
내 눈이 하루에 한 두어 시간만 물체를 식별하게 되고, 내 몸이 운동 부족으로 사방에서 낡은 마룻바닥처럼 삐걱거릴 때, 그때 내가 무서워할 게 어디 있을까. 그럼 지금은 무엇을 무서워하나. 그 지경이 되기 전에는 무서운 게 많은가. 그것이 그림을 나쁘게 만드는가?
나는 이제까지 ‘에스키스’라는 그림연습을 수없이 해왔다. 종이나 연습장에 끊임없이 그림을 그려 보고, 어떤 때는 색칠까지도 해보고, 그 뒤에 그것이 나 자신의 세속적인 안목에서 좋게 평가될 때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 그래서 우리 집 구석구석에는 내가 그려댄 연습그림들이 수도 없이 쌓여 있고, 내가 써댄 글씨 찌꺼기들이 여기저기 뭉텅이로 쌓여 있다. 나는 더 빨리 눈이 나빠지고, 무릎은 더 삐걱이고, 허리는 마티스보다 더 굵어지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더러운, 나 자신 속에 낀 정신적인 때를 털어 버리고 싶다. 좋은 그림만 발표하겠다는, 좋지 않은 그림은 집안 식구들에게조차 보이기를 꺼려하던 생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 우중충한 정신으로부터 도망치는 날, 나는 자유를 찾을 것이며, 그 자유 속에서 행복할 것이며, 인간으로 태어난 기쁨에 몸을 부르르 떨며 크게 울지도 모른다.
나는 토끼를 좋아한다. 실제의 토끼를 보고 좋아하기보다, 어릴 때 읽은 동화 속에서 느낀 토끼를 이제껏 좋아한다. 어느 날 나는 토끼를 그렸다. 몰래 토끼를 그렸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그렸다. 그랬더니 나는 자유로웠다. 아무도 없는 대낮에 재빨리 토끼를 그려 놓고 그림 앞에서 행복해 했다. 며칠 동안 나 혼자 좋아하다가 누군가에게 보여줬다. 그때 그 사람이 나처럼 그 토끼를 좋아했다면 나는 계속 그 사람에게 나의 새로 그린 그림들을 보여주면서 계속해서 행복한 화가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그림에 대해 뭐라고 말했다. 좋지 않다는 것밖에는 기억되지 않는 말들을 해댔다.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토끼를 못 그린다. 토끼가 너무 그리고 싶다고 느낄 때 몰래 그리면서도 자꾸 마음속에서는 쭈뼛거린다. 주저하고, 자신없어하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 그 그림을 남들처럼 미워하기 시작하고 …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 나는 이런 ‘때’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없어야 하고, 내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망가져야 하고, 내게 사람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빠져야 하고, 나 자신조차 자신을 포기할 만큼 붕괴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오로지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건, …. 내 기억 속에 아직까지 나를 따라오면서 선명히 남아 있는 아름다운 토끼를 그려 대 보는 것. 나 자신의 기억을 위해, 나 자신의 기쁨만을 위해, 내 지워지지 않는 지나간 생애 동안의 행복한 기억을 위해 손을 움직여 대는 일, 그것뿐일 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내 눈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 내 무릎이 점점 더 삐걱이는 것, 내 몸 속에 피곤이 덕지덕지 쌓이는 건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징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