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몸으로 하는 마음공부

이춘아 2022. 3. 19. 00:33

이현주, [사랑 아니면 두려움], 분도출판사, 2020.

몸으로 하는 마음공부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눈길을 자기에게로 돌려 내가 지금 밥을 어떻게 먹고 있는지, 똥을 어떻게 누고 있는지, 손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김을 어떻게 매고 있는지, 운전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런 것을 자세히 살펴서 자기가 과연 제대로 마음공부를 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남을 대하는 태도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품이 좀 더 넉넉해지고 말이 좀 더 느리고 어눌해지면 그러면 지금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반대로, 말이 단호해지고 남을 대할 때 “그건 아니야, 그러면 안 돼”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무슨 일이 생길 때 “그럴 순 없어, 틀렸어”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불쑥불쑥 나온다면, 지금 하고 있는 마음공부를 의심하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바다로 향해 흐르는 물처럼,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지게 마련이니까요. 강물은 개울의 방향을 간섭하지 않고 바다는 강물의 깊이를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더 낮은 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들어오는 그것들을 받아드릴 따름이지요. 그래서 간디가 뒤쳐진 사람 꾸짖지 말라 하셨고 바오로가 믿음이 약한 사람 돌봐 주라고 하셨던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마음공부’라는 것도 결국, 두텁고 무거운 무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입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서, 어렵고 힘든 수련을 참고 견뎌서 보통 사람들은 들어설 수없는 어떤 높은 경지에 도달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예요. 다행히 스승을 만나 그 마음이 깨어지지 않으면 마침내 큰 탈을 빚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엄격하게 분별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귀한 일, 천한 일이 따로 없는 걸까요? 저는 있다고 봅니다. 다만 귀한 일과 천한 일을 가를 때, 이 일은 귀하고 저 일은 천하다고 일의 종류에 따라서 나눌 게 아니라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서 같은 농사일이 귀한 일도 되고 천한 일도 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공자님 같은 분이 농사를 지으면 그 농사가 귀한 일로 되고,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 있는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그 농사가 천박한 일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요. 일에는 분명 귀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누는 경계가 일에 있지 않고 그 일을 하는 사람한테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공부는 그런 뜻에서 우리 모두를 귀한 직업인으로, 성직자로 만드는 방편입니다. 농부는 논밭에서, 기술자는 공장에서, 교사는 교실에서, 어부는 바다에서, 군인은 전쟁터에서,주부는 집 안에서, 상인은 상점에서, 운동선수는 운동장에서, 배우는 무대에서 저마다 수행자로, 성직자로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살아갈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방금 “그래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만, 여러분에게 무슨 의무를 하나 더 보태어 드리려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바라시는 거라는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