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나무를 찾아서
이춘아
2022. 7. 2. 04:02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나무를 찾아서
어느 날,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팎에는 어떤 나무가 있고, 또 날마다 출근하는 거리에 어떤 나무가 우리 곁을 지켜주는지를 알고 싶은 난데없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건 어쩌면 당시 나의 직업이 신문기자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이었으니까.
그래서 아침 출근길 뒷주머니에 든 수첩을 꺼내고 넣기를 되풀이하며 눈에 보이는 나무들을 하나하나 적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나무도 많았다. 그런 나무들은 그림으로 표시해야 했다.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제일 먼저 백목련이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나무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잘자란 명물 급의 백목련이었다. 눈을 돌리니 앵두나무 자귀나무 감나무가 있었고, 단지를 벗어나자 길가에는 가죽나무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줄지어 서 있으면, 아파트 경계의 낮은 울타리에는 개나리 쥐똥나무 회양목이 즐비했다. 대로에 나오자 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튤립나무 양버즘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다문다문 매화나무도 있었다. 전철에 오르자 차창 밖으로 여러 나무가 스쳐 지나갔다. 대개의 역들마다 거의 빠짐없이 보이는 나무는 무궁화였고, 역의 역사적 특징을 살려서 나무를 심은 곳도 있었다. 예를 들면 오류동역이 그랬다.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은 마을이어서
오류동’이라고 부르는 이 마을의 전철역에는 새로 심어 가꾸는 오동나무와 수양버들이 높지거니 자랐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회사까지 걸어가는 길에도 나무들의 사열은 이어졌다. 큰길가에는 벚나무 은행나무가 촘촘히 서서 자동차 매연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길 한켠의 옛 건물 마당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하늘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나무는 회사에 다다라서도 찾을 수 있었다. 건물 주위에는 철쭉과 영산홍이 오순도순 모여 있었고, 대나무로 차디찬 대리석 빌딩 벽을 둘러싼 곳도 있었다.
겨우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내 곁에 이토록 많은 종류의 나무가 살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놀라운 시간이었다. 10년 넘게 같은 길로 출근하면서 한 번도 돌아보지 못한 내 곁의 생명체들을 한 번 더 바라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그러자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한 장, 낙엽 한 장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얼마 뒤에 다니던 직장을 나와서 지금까지 16년 동안 우리나라의 큰 나무들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와 풀꽃에 큰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눈을 뜨고 바라보자 나무들은 차근차근 내게 미소 지으면 다가왔다. 도시든 시골이든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우리가 사는 곳 어디라도 자연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도시는 어쩌면 산과 들, 혹은 농촌 산촌과 같은 시골 마을보다 훨씬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시골에서라면 대개 자생하는 생물들 위주로 식생이 이루어지겠지만, 자생하는 생명체의 서식지를 파헤치고 들어선 도시에서는 새로이 생명체를 들여와야 한다. 결국 다양한 생명체들을 끌어들여 심어 키우게 되고, 자연스러움이 모자랄지 몰라도 다양함에서만은 시골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든 다양하든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곳은 없다. 자연의 숨결이 멈춘 곳이라면 사람의 숨결까지 멈추어야 하는 곳이다. 이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곁의 자연,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 앞에 우리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나무들을 함께 찾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