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함께 홀로하기
이춘아
2022. 7. 8. 15:58
함께 홀로하기
우리는 때때로 고독과 공동체가 양자택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처럼 쪼개고선 둘 중 하나하고만 어울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럴 때 우리는 스스로를 영적 곤경에 빠트리게 된다. 독일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의 고전 [말씀 아래 더불어 사는 삶]에서 이러한 위험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홀로 있지 못하는 삶은 공동체를 조심해야 한다. 공동체에 있지않은 사람은 홀로 있기를 조심해야 한다.”
본 회퍼의 경고는 두 가지 단순한 진리에 근거한다. 우리는 내면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으나, 내적 삶의 미궁 속에서 해맬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이에게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지만, 무리의 혼동 속에서 헤맬 수도 있다. 고로 우리에게는 고독과 공동체가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가 한쪽에서 배우는 것은 다른 쪽에서 배운 것을 견제해 줄 수 있다. 함께 갈 때 고독과 공동체는 들숨과 날숨처럼 우리 삶을 온전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전에서 고독과 공동체가 정확히 어떻게 함께 가는지 아는 것은 숨쉬기보다 더 어렵다. 우리는 고독 속에 있다고 하지만, 실은 다른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독’이 얼마나 자주 거기 있지 않은 누군가와 속말을 나누느라 훼방받았는지 생각해 보라! 우리는 공동체 속에 있다보면 종종 참된 자아를 잃어버리곤 한다. 우리가 역동적인 그룹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는 게 얼마나 쉬웠는지 생각해 보라.
고독과 공동체를 진정한 역설로 보려면, 양극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고독은 다른 이와 동떨어진 채 사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독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결코 격리된 채 살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고독은 다른 이의 부재가 아니다. 다른 이와 함께 있건 안 있건 자신에게 충실히 존재하는 게 고독이다. 공동체는 반드시 다른 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더불어 사는 걸 뜻하지 않는다. 공동체는 다른 이에게 잇닿아 있다는 깨달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본질은 다른 이의 존재감이 아니다. 공동체의 핵심은 우리가 혼자 있건 아니건 관계의 현실에 온전히 열려 있는 것이다.
고독과 공동체를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때 신뢰 서클을 만든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신뢰 서클을 만든다는 건 영혼을 환대하는 공간을 우리 사이에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홀로 할 수 있는 고독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이에 공간 만들기’라는 개념이 낯설거나 해괴하게 들린다면, 우리가 이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살펴보자. 사람들이 모일 때마다, 대규모든 소규모든, 우리는 다른 목적을 지원하기 위한 다른 종류의 공간을 만든다.
* 우리는 지성이 나타나도록 불러들이는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안다.
* 우리는 감성이 제 역할을 하도록 불러들이는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안다.
* 우리는 의지가 표출되게끔 불러들이는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
* 우리는 에고가 모습을 드러내도록 불러들이는 공간을 분명히 알고 있다.
* 허나 우리는 영혼이 자기 모습을 알리도록 불러들이는 공간을 만드는 법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지, 정, 의, 에고가 내면의 작업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펴는 게 아니다. 이런 기능들은 각자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꼭 영혼이 길잡이가 된다면 이 기능들은 모두 이중성을 이겨낸 삶으로 가는 여행에서 훌륭한 우군이 될 것이다.
영혼이 지성을 통해 말할 때 우리는 “이성이 마음속으로 내려온 상태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영혼이 감성을 통해 말할 때 우리의 감정은 관계를 키우는 자양분이 된다. 영혼이 의지를 통해 말할 때 우리의 의지력은 공공선을 위해 동원될 수 있다. 영혼이 에고를 통해 말할 때 우리는 자아에 대한 인식을 얻고, 이로써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할 용기를 얻는다. 모든 인간 기능은 영혼을 바탕으로 할수록 뫼비우스띠 위에서 삶의 복합적인 지형을 흥정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