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이춘아 2022. 9. 17. 06:52

최원식, [산천독법], 한길사, 2015.


(7~11쪽)

우리는 산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살아서도 산으로 가고 죽어서도 산으로 간다. 왜 한국 사람들은 유달리 산을 좋아할까?

주말만 되면 너 나 할 것 없이 산을 찾아 나선다. 그저 산이 좋아서 가는 사람, 산야초를 찾으러 가는 사람. 목적과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발걸음은 모두 산으로 향한다. 우리의 몸에 산천유전자가 있고 그것이 발동하여 신호를 보내 주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상상일까?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내 생명의 뿌리들이 산에 묻혀 산이 되었으니, 내 몸의 DNA도 간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우리에게 산은 몸에 유전적으로 내장된 생명의 뿌리다. 큰 몸이다. 산에 대한 문화와 사유는 한국 중국 일본이 대체로 비슷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나라마다 특색이 있고 코드도 다르다. 사람과 공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중국이 강이라면 한국은 산이다. 중국 사람들은 황하를 ‘어머니강’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지라산을 어머니산’이라고 한다. 중국 문명이 강에서 꽃피웠다면, 한국 문명은 산에서 형성되었다.

풍수성향도 그렇다. 중국 풍수의 키워드가 물이라면, 한국 풍수의 키워드는 산이다. 물을 어떻게 얻을 것인지 따지는 것이 중국 풍수라면, 어떤 산을 선책할지 먼저 살피는 것이 한국 풍수다. 그래서 한국에는 산과 사람이 오래 주고받은 관계의 문화사로서 ‘산의 인문학’이 가능했다.

일본과는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일본 사람에게 산이 신화의 현장이라면, 우리에게 산은 설화의 현장이다. 그들에게 산은 숭엄하고 두려운 존재다. 지리적으로 보아도 일본의 산은 미궁으로 들어가듯 산골짜기가 깊어지고, 공간적으로 산이 삶터와 격절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일본의 산은 하늘에 이를 듯 가파르게 솟아 있거나, 곧 터질 듯 연기를 뿜는 화산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곳은 사람이 범접하지 못하는 신의 영역으로서 신화가 서려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산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담긴다. 어디나 있는 옥녀봉 설화도 그렇고, 인자한 산신할머니도 그렇다. 한국의 산신은 사람인 듯 신인 듯, 사람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다. 신화라기보다는 설화의 범주에 속한다. 같은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의 다테야마立山에는 불지옥이 있고, 한국의 연화산에는 극락정토가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산이 없는 평야 지대나 도서 지역은 어떨까. 그곳에서 산의 의미는 무엇일까. 평야지대 사람들은 작은 둔덕이나 구릉도 무척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지막한 언덕도 아주 큰 산처럼 여긴다. 산이 없으면 이름이라도 붙인다. 실제로 경남 함안의 넓은 들에는 대산리라는 마을 이름을 붙였다. 지면으로 산을 대신하거나, 큰 산으로 상징화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섬 지역은 또 어떤가. 조선시대에 이중환(1690~1752)은 [택리지]에서 섬을 해산海山이라고 했다. 바다에 떠 있는 산이다. 섬島 글자에는 산山이 들어앉아 있다. 섬 지역 사람들은 육지에서 산줄기가 이어져 섬이 되었다고 인식했다. 마음속에서라도 어떻게든 산과 연결하고, 부족한 산을 채워야 했던 것이다. 산 코드의 현상학이다.

요즘은 등산할 때 예전처럼 정상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한 산행 패턴은 좀 줄어들었다. 그 대신 둘레길처럼 여유롭게 산길 걷기가 유행이다. 산을 생각하고 대하는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유산遊山 전통을 닮았다. 우리 선조들은 금강산, 지리산, 청량산, 삼각산 등 명산 유람을 좋아했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어진 이는 산을 즐거이 하기 때문이다. ‘산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다.

퇴계 이황에게 산은 책이었다. 산을 좋아하는 그가 산에 가는 것은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남명 조식에게 지리산은 자신이 도달해야 할 표상이었다. 남명은 지리산 천왕봉아래 거처를 정하고 목숨을 다할 때까지 살면서, 거대한 지리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진정한 지리산인이었던 것이다.

우리 산의 독법은 우리에게 산천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 산천은 무엇인가?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시간은 흘러가버려 허망하기 짝이 없다. 공간은 무색으로 텅 비어 있어 무정하다. 그러나 산천은 핏줄처럼 흐르고 있는 그 무엇이다. 모두가 차곡차곡 저장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산천을 거대한 메모리라고 생각한다. 역사도, 조상도, 자연생태도 모두 담겨 있고 또 앞으로 담길 그 무엇이다. 그 메모리의 일부로 나와서 살다가 다시 육신과 얼이 저장되는, 거대한 생명 줄기에 접속해 있는 것이 우리가 아닐까? 산의 보장寶藏, 산천메모리다. 그래서 우리는 산으로 돌아갔나 보다. 그렇게 산을 만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