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과 질환
로이 리처드 그린커, [정상은 없다: 문화는 어떻게 비정상의 낙인을 만들어내는가](정해영 옮김), 메멘토, 2022.
(30~32쪽)
사실 긴장하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손바닥에 땀이 나듯 우리 모두 날마다 일시적으로 신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미국에서는 몸의 지속적인 증상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장애와 비간질성 발작, 부분 실명, 함구증, 마비, 피부 발진, 설사, 만성통증 같은 장애는 모두 정신의학적 상태가 될 수 있다. 사람들 대다수는 육체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경향이 있기에, 이런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불안을 복통으로, 슬픔과 절망을 사지의 화끈거림과 따끔거림 등으로 느낀다.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정신과 의사들의 기술적 용어인 ‘정신장애’가 아닌 ‘정신 질환’을 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선 ‘장애’는 ‘정상적인’ 정신 같은 것이 있다고 암시하는데, 사실 우리는 정상적인 정신에 대해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 또한 장애는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무질서하거나 분열된 정신을 가진 것으로 표현하는 낡은 방식을 소환하고, 비기술적인 데다 경멸적으로 정신의학적 상태를 가리키는 수많은 단어와 표현을 강화한다. 이런 표현 중 상당 부분은 ‘나사 풀리다’, ‘맛이 가다’, ‘뭔가 빠지다’, ‘다중이’ 등과 같이 무질서와 분열에 대한 은유다. 둘째, 장애는 신체 또는 정신의 정상적이고 체계적인 기능을 저해하는 질병을 암시하는 것과 달리 ‘질환’은 아픔이나 손상의 경험을 암시한다. 인류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아서 클라인먼이 주장하듯 질병과 장애는 임상의들의 용어이며 환자의 고통 호소를 이해하는 의학적 틀이지만, 질환은 그런 질병의 개인적 사회적 의미이며 ‘증상과 고통의 경험… 아픈 사람과 가족 구성원 또는 더 넓은 사회적 관계망이 증상과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수용하며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질병은 우리의 관심을 생물학적 과정으로 이끈는 반면, 질환은 실제 삶의 양상을 조명한다.
궁극적으로 정신 질환은 우리가 과학과 의학에 기대하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비인격적인 질병 모델에 결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신의학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애초에 정신의학이 그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의학 분야도 그 무엇에 부합하지 않는다. 몇 세기 전에는 그저 기술로 여겨지던 의학이 이제 숫자와 영상을 등에 업고 마치 절대적 진리인 양 여겨지고 있다. 이것은 오류다. 소아과 의사들은 무엇이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인지를 추정한다. 심장병 전문의는 어떤 혈압 수치가 높은지, 정상인지, 낮은지를 판단한다. 내과 의사는 사람이 일주일에 마실 수 있는 술의 양과 ‘건강’을 유지하려면 몇 시간 동안 운동해야 하는지와 같은 생활양식을 권고한다. 예를 들어, 2020년의 특정한 혈압 측정값은 저혈압이나 정상 혈압 또는 고혈압에 대한 절대적인 수치가 자연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2020년에 의사들이 ‘정상’이라고 합의한 수치와 비교를 통해서만 고혈압에 대한 객관적인 징후로 여겨질 수 있다. 사실 고혈압은 질병도 아니며 질병 위험의 척도다. 1차 진료 의사들이 피로와 육체적 고통을 치료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피로와 고통은 진단명이 아니며 측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정신의학은 거짓 우상,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흉내 내고 있다. 의사들이 하는 일이 진실의 발견인 경우보다는 그들이 개발하고 합의해 받아들인 모델에 따라 관찰한 내용의 설명인 경우가 더 많다. 그들은 또한 실제 질병보다 증상을 치료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정신의학적 상태가 다른 의학적 상태보다 덜 객관적이거나 사실에 기초한 정도가 낮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순전히 우리를 현혹해 그것이 객관적이라고 믿게 하기에 충분한 수치와 영상이 아직 확보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질병 경험, 달리 말해 ‘질환’으로서 질병은 종양 세포나 박테리아 또는 바이러스 분자나 우리 DNA에 새겨져 있지 않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정신 질환을 생물학적 물질과 매커니즘으로 환원하는데 성공해도, 그 질환의 의미는 여전히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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