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아Q에 관한 정전

이춘아 2022. 11. 18. 19:42

루쉰, [아Q 정전](김택규 옮김), 푸른숲주니어, 2015(2013 1쇄).

(73~79쪽)

제1장 머리말
나는 꽤 오래전부터 아Q에 관한 정전(正傳, 바르게 적은 전기)을 쓸 작정이었다. 하지만 쓰려고 할 때마다 자꾸 망설여졌다. 어찌 보면 이게 다 내가 훌륭한 문장가는 아니라는 증거이리라.

예로부터 훌륭한 사람에 관한 글은 훌륭한 문장가가 다루어왔다. 그렇게 사람은 글을 통해 전해지고 글은 사람을 통해 전해져서 대체 무엇이 무엇을 통해 전해지는지 애매해진다. 아무튼 이리저리 헤매다가 끝내 아Q에 관해 쓰기로 작정했으니 귀신에 씐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금세 잊히고 말 글일지언정 쓰려고 보니 곤란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는 글의 제목이 문제였다.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다.”라고 했다.이는 애초부터 무척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전기를 이루는 형식은 퍽 많다. 열전(중국 역사 속에 따로 기재된 위인들의 전기), 자서전, 내전(신선이 주인공인 고대 소설의 일종), 외전(내전에서 빠진 부분을 따로 기록한 전기),별전(열전 이외에 재미있는 일화를 기록한 전기), 가전(가문에 일어난 사건들을 적은 기록), 소전(줄여서 간략하게 적은 전기) 등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어느 것 하나 이 글에 딱 들어맞지가 않는다.

이 글을 ‘열전’이라 하자니 수많은 위인들과 함께 정식 역사 속에 들지 못하며, ‘자서전’이라 하자니 나는 아Q가 아니다. 또 ‘외전’이라고 하면 ‘내전’은 어디 있단 말인가? ‘내전’이라는 이름도 아Q가 신선이 아니므로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별전’도 옳지 않다. 총통의 명령을 받아 국사편찬위원회가 아Q의 ‘열전’을 쓴 적이 없지 않은가. 문호 찰스 디킨스가 영국 역사에 ‘로드니 스톤 열전’이 없음에도 [로드니 스톤 별전]을 지었지만 ( [로드니 스톤]은 디킨스가 아니라 코넌 도일의 작품이다. 나중에 루쉰은 이것이 자신의 착오였다고 인정했다. - 옮긴이) 그야 문호이니 가능했던 일이지 나 같은 사람은 그럴 재간이 없다.

그다음은 ’가전‘인데, 내가 아Q의 친척인지 아닌지도 모를뿐더러 그의 자손에게서 글을 부탁받은 일도 없다. ’소전‘ 역시 아Q에게 달리 ’대전‘(빠짐없이 집대성한 전기)이 없으므로 적당하지 않다. 결국 이 글은 ’본전‘(기본이 되는 전기)인 셈이지만 나는 길거리 장사치나 쓰는 속된 말을 사용하므로 감히 그 이름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러니 평범하게 ’정전‘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이름으로 삼는다. 이 이름 또한 옛사람이 편찬한 [서예 정전]의 ’정전‘(이때는 정확하게 가르침을 전수한다는 뜻)과 혼동되긴 하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둘째, 전기를 쓸 때 첫머리에 “아무개는 자가 무엇이고, 어디 사람이다.“라고 시작하는 게 예사이다. 그런데 나는 아Q의 성조차 모른다. 언젠가는 그가 자오 씨인 줄 알았는데 이튿날이되자 긴가민가했졌다.

자오 나리의 아들이 수재가 되었다는 소식이 요란한 징 소리와 함께 마을에 전해졌을 때였다. 아Q는 자기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술 두 사발을 들이켜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말인즉슨 자기가 자오 어르신과 같은 집안 출신인 데다, 자세히 따져 보면 그 아들보다 세 항렬이나 높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몇 사람은 엄숙하게 예의를 표시했다. 그런데 이튿날 지보(지방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던 자치 경찰)가 난데없이 아Q를 불러내 자오 나리의 집으로 끌고 갔다. 자오 나리는 아Q를 보자마자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꾸짖었다. ” 아Q, 이 막돼먹은 놈! 네놈이 나와 한집안이라고 했겠다?“ 아Q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자오 나리는 점점 더 화가 치밀어서 몇 발자국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감히 막말을 하다니! 어떻게 너 같은 놈이 나와 친척이란 말이냐? 네가 자오 씨더냐?” 아Q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자오 나리가 펄쩍 달려들어 따귀를 갈겼다.

“네가 어떻게 자오 씨란 말이냐?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아Q는 자기가 정말 자오 씨라고 항변하지 못했다. 그저 왼쪽 뺨을 어루만지며 지보와 함께 물러 나왔다. 밖에 나와서도 지보에게 한바탕 꾸지람을 듣고서 사죄하는 뜻으로 술값 이백 문을 바쳐야 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아Q가 물정 모르고 터무니없이 까불다가 매를 자초했다고, 또 그는 아마 자오 씨가 아닐 것이며 정말 자오 씨라 해도 자오 나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는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 뒤로는 아무도 아Q의 성씨 문제를 들먹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의 성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셋째, 나는 아Q의 이름을 어떻게 적는지도 모른다. 그가 살아있었을 때는 다들 그를 ’아꾸이‘라고 불렀고, 죽은 뒤에는 더 이상 그의 이름을 부를 일이 없었으며, 당연히 그에 관해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에 관한 기록이라고 하면 이 글이 처음인 셈이니, 내가 이런 난관을 만난 것이다. 일찍이 나는‘아꾸이‘가 ‘阿桂’ 일지, 아니면 ‘阿貴’일지(중국에서 ‘桂’와 ‘貴’는 모두 ‘꾸이’라고 읽는다.)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만약 그의 호가 ‘월정(月亭)‘이거나 생일이 8월이라면 달과 관계가 있으니 ‘아꾸이’(阿桂)가 맞을 것이다. (‘桂’는 월계수, 즉 달에서 자란다는 상상의 나무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는 호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 있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생일이라고 초대장을 돌린 적도 없으니 제멋대로 ‘아꾸이’(阿桂)라고 적는 건 옳지 않다.

또한 그에게 ‘아푸(阿富)라는 형이나 동생이 있었다면 ‘아꾸이’(阿貴)가 맞겠지만 그는 혈혈단신이었다. 그러니 ‘아꾸이’라고 적는 것도 근거가 없다.

이것 말고도 역시 ‘꾸이’라고 읽는 낯선 글자들은 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예전에 자오 나리의 아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뜻밖에 그런 박식한 사람도 뭐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천두슈(중국의 사상가이자 혁명가 -옮긴이)가 [신청년]이라는 잡지를 만들어 한자 대신 서양의 알파벳을 쓰자고 제창하는 바람에 전통문화가 무너져 버려 알아볼 방도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고향 사람에게 ‘아꾸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사건이 있는지 수사 기록을 찾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한 답이 여덟 달 만에 날아왔는데, 그 어떤 자료에도 아꾸이와 발음이 비슷한 이름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말 없는지, 아니면 그가 조사를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알파벳을 이용해 ‘꾸이’를 ‘Quei’라고 쓰고 이를 줄여 ’Q’라고 하기로 했다. [신청년]의 주장을 무작정 따르는 것 같아 좀 미안하긴 하지만, 수재도 모르는 마당에 나라고 달리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넷째는 아Q의 본적이다. 그가 자오 씨라면 요즘 관례에 따라 이 성씨가 고대에 위세를 떨쳤던 지역 이름을 따서 “룽시 텐슈 이 사람이다.”라고 할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성씨가 자오인지 별로 믿을만하지 못해서 본적도 정할 수가 없다. 그가 웨이좡 마을에 오래 살기는 했지만 다른 곳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딱히 웨이좡 마을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다. 그냥 웨이좡 마을 사람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역사 기술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위안으로 삼은 것은 ‘아’ 자 하나만은 매우 정확해서 결코 가짜나 억지가 아니며 무엇보다도 믿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나머지는 내 얕은 지식으로 깊이 파고들 수 없으므로 역사를 꼼꼼히 따지기 좋아하는 후스(중국의 사상가이자 교육가 -옮긴이) 선생의 제자들이 앞으로 새로운 단서를 많이 찾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나의 이 [아Q 정전]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른다. 이상이 이 글의 머리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