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페르시아 제국의 아나톨리아 지배

이춘아 2026. 5. 29. 20:34

오늘날의 튀르키예 영토인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는 고대 서아시아의 패권을 쥐었던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50년~330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무대 중 하나였습니다.
페르시아는 약 200년 동안 아나톨리아를 지배하며 리디아, 프리기아 등 기존의 토착 왕국들을 무너뜨렸고, 서구 문명의 모태가 된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치열하게 대립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아나톨리아 지배 역사를 흥망성쇠의 흐름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정복의 시작: 키루스 대왕과 리디아의 멸망 (기원전 547년)
기원전 6세기 중반까지 아나톨리아 서부는 '황금의 미다스' 전설을 이어받아 세계 최초로 금화를 주조할 만큼 부유했던 **리디아(Lydia) 왕국**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 **사르디스 함락:**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인 **키루스 2세(대왕)**는 동쪽에서 세력을 확장해 아나톨리아로 진격했습니다. 기원전 547년, 리디아의 마지막 왕 크로이소스는 페르시아군을 막으려 했으나 대패했고, 수도 사르디스(Sardis)가 함락되면서 아나톨리아 전체가 페르시아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 **이오니아 지방의 복속:** 리디아의 지배를 받거나 동맹 관계였던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가(에페소스, 밀레토스 등)의 그리스인 도시국가들(이오니아 지역) 역시 차례로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2. 통치 체제의 확립: 사트라프 제도와 '왕의 길'
페르시아의 전성기를 이끈 **다리우스 1세(대왕)**는 광대한 아나톨리아를 효율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혁신적인 제국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 **사트라프(Satrap) 분할 통치:** 아나톨리아는 리디아(수도 사르디스), 프리기아(수도 다스킬레온), 카파도키아, 킬리키아 등 여러 개의 행정 구역(사트라피)으로 나뉘었습니다. 페르시아 왕족이나 고위 귀족이 '사트라프(총독)'로 파견되어 군사와 세무를 관장했습니다.
* **왕의 길(The Royal Road) 건설:** 페르시아의 수도 수사(Susa)에서 출발해 아나톨리아의 중심을 가로질러 사르디스까지 이어지는 약 2,700km의 간선도로가 정비되었습니다. 파출소와 역참이 촘촘히 배치되어, 과거 몇 달이 걸리던 전령의 이동 시간이 단 일주일로 단축되었습니다. 이는 아나톨리아의 군사적 통제와 동서 무역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3. 갈등의 폭발: 이오니아 반란과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페르시아의 지배는 완고한 자치를 원했던 아나톨리아 서부의 그리스인(이오니아)들에게 끊임없는 불만의 대상이었습니다.
* **이오니아 반란 (기원전 499~493년):** 밀레토스를 중심으로 아나톨리아의 그리스 도시들이 페르시아의 압제와 참주 정치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때 본토의 아테네가 이들을 지원하여 페르시아의 지방 수도 사르디스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 **보복과 전면전:** 다리우스 1세는 분노하여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했고, 반란의 배후였던 그리스 본토를 정벌하기 위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아나톨리아는 이 거대한 세계 대전의 병참기지이자 전초기지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4. 문화적 융합과 사트라프들의 준독립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침공이 실패로 끝난 후 제국의 중앙 권력이 약화되자, 아나톨리아의 사트라프들은 점차 독자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 **카리아의 마우솔로스:** 아나톨리아 남서부 카리아(Caria) 지방의 사트라프였던 마우솔로스는 사실상 독립적인 왕처럼 군림했습니다. 그가 사후에 남긴 **'마우솔레움(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영묘)'**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페르시아·이집트·그리스 양식이 절묘하게 융합된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문화의 정수였습니다.
* **사트라프 대반란 (기원전 360년대):** 페르시아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해지자 아나톨리아의 여러 총독들이 연합하여 황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에게 반기를 들기도 했습니다. 비록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제국의 균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5. 지배의 종식: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 (기원전 334년)
200년간 이어진 페르시아의 아나톨리아 지배는 마케도니아의 젊은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종식을 맞이합니다.
* **그라니코스 전투 (기원전 334년):** 헬레스폰투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아나톨리아로 진격한 알렉산드로스는 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그라니코스 강가에서 페르시아 사트라프 연합군을 격파했습니다.
* **이수스 전투 (기원전 333년):** 이어 아나톨리아 남부 킬리키아 지방의 이수스 평원에서 페르시아의 황제 다리우스 3세가 이끄는 본대와 맞붙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패배로 페르시아는 아나톨리아의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패권은 헬레니즘 세계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의의와 유산
페르시아의 아나톨리아 지배는 단순한 군사적 점령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의 진보된 행정 체계와 도로망은 고대 아나톨리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어주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 아나톨리아는 **오리엔트(페르시아)의 신비주의·절대왕정 문화**와 **그리스의 합리주의·민주적 문화**가 격렬하게 부딪히고 섞이는 용광로 역할을 했으며, 이는 훗날 이 지역에 독독한 헬레니즘 문화가 꽃피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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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가 약 200년간 아나톨리아(현재의 튀르키예)를 지배하면서 남긴 문화적 영향력은 오늘날 다양한 **유물과 건축, 고고학적 흔적**으로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페르시아는 피지배민의 문화를 강제로 말살하지 않고 자치를 인정하는 '관용 정책'을 펼쳤기 때문에, 아나톨리아의 유물들은 완벽한 페르시아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토착 문화(리디아, 카리아, 프리기아 등) 및 그리스 양식이 페르시아 제국의 양식과 결합한 '복합적·융합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를 학계에서는 **'아나톨리아-페르시아(Anatolian-Persian) 양식'**이라고 부릅니다.
대표적인 유물의 형태들을 유형별로 정리해 드립니다.

1. 사트라프(총독)들의 무덤과 석관 (가장 뚜렷한 흔적)
페르시아가 파견했거나 제국에 복속된 아나톨리아 현지 지배자(사트라프)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무덤을 만들고 화려한 부조를 새겼습니다.
*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레움 (Mausoleum at Halicarnassus):**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카리아 지방의 사트라프였던 마우솔로스를 위해 지어진 거대 영묘입니다. 그리스식 기둥과 조각상이 사용되었지만, 피라미드 모양의 지붕과 거대한 기단 구조는 페르시아와 이집트 왕실 건축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동서양 융합의 결정체입니다.
* **파이아바의 석관 (Sarcophagus of Payava):**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리키아(아나톨리아 남서부)의 유물입니다. 석관 면에는 페르시아 복식을 입은 지배자가 의자에 앉아 사절단을 접견하는 모습, 페르시아풍의 전차를 타고 사냥하는 모습 등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당시 지배층이 페르시아 궁정 문화를 동경했음을 보여줍니다.

2. '왕의 길'과 관련된 통치 유물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한 제국의 대동맥, **'왕의 길(The Royal Road)'**의 종착지가 바로 아나톨리아의 사르디스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제국의 행정과 군사적 영향력이 유물로 전달되었습니다.
* **페르시아 인장(Seals):** 아나톨리아 서부 전역(다스킬레온, 사르디스 등)에서 사트라프들이 문서나 물품을 봉인할 때 쓰던 원통형 인장과 인장 반지가 대량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페르시아의 주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상징, 왕이 사자를 사냥하는 모습, 페르시아 전통 왕관을 쓴 군주의 모습 등이 새겨져 있어 제국의 행정력이 미쳤음을 증명합니다.
* **다릭(Daric) 금화와 시글로스(Siglos) 은화:** 페르시아의 상업적 통합을 보여주는 유물로, 활을 들고 달리는 페르시아 황제의 모습이 새겨진 화폐들이 아나톨리아 전역에서 발굴됩니다.

3. 고급 금속 공예품: 류톤(Rhyton)과 귀금속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는 정교한 금은 세공 기술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아나톨리아의 귀족들은 페르시아 궁정 연회 문화를 모방하며 이러한 사치품을 소비했습니다.
* **동물 모양 류톤(Rhyton, 뿔잔):** 그리핀(반사자 반독수리), 사자, 황소 등의 상반신이 잔 아랫부분에 정교하게 조각된 페르시아 특유의 술잔입니다. 튀르키예 내륙의 우샤크(Uşak)나 서부 해안가 유적에서 발견되는 황금·은제 류톤들은 페르시아 엘리트들의 연회 문화가 아나톨리아 상류층에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보여줍니다.
* **리디아 보물(Lydian Hoard / Karun Treasure):** 기원전 6세기 후반 아나톨리아 서부 무덤들에서 출토된 수백 점의 금은보화입니다. 이 유물들 중 상당수는 페르시아 스타일의 연꽃 문양이 새겨진 그릇, 페르시아풍의 황금 팔찌와 귀걸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4. 프레스코 벽화 속의 복식과 문화
* **타타를리 무덤 벽화 (Tatarli Tomb Painting):** 튀르키예 아피온카라히사르(Afyonkarahisar) 인근의 나무 무덤 방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 프레스코화입니다. 벽면에는 페르시아 고유의 바지를 입고 뾰족한 모자(티아라)를 쓴 군인들의 행렬, 페르시아식 전차 전투, 제례 의식 등이 생생한 색채로 그려져 있습니다. 고대 아나톨리아인들이 외형적으로 얼마나 페르시아화(Persianized)되었는지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유물입니다.

요약
아나톨리아에서 발견되는 페르시아 관련 유물들은 **"형태는 그리스·토착 양식이되, 주제와 정서는 페르시아 양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자에 앉아 공물을 받는 군주의 자세, 사자 사냥이라는 주제, 펄럭이는 그리스식 옷자락 대신 빳빳하고 정돈된 페르시아식 의복 표현 등은 당시 아나톨리아가 페르시아라는 거대한 세계 제국의 일원으로서 동방 오리엔트의 세련된 궁정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융합했음을 유물로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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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Persia)'**는 오늘날의 이란 고원을 중심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세계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위대한 제국들의 이름입니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는 한 번의 왕조로 끝난 것이 아니라, 수천 년에 걸쳐 여러 강력한 왕조들이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이어가며 재건되었습니다.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페르시아 역사를 장식한 **4대 핵심 왕조**를 중심으로 그 거대한 흐름을 정리해 드립니다.
## 1.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기원전 550년 ~ 기원전 330년)
### 인류 최초의 세계 제국
우리가 보통 '페르시아'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최초의 대제국입니다.
* **성립과 발전:** 기원전 550년, **키루스 2세(대왕)**가 메디아 왕국을 정복하고 창건했습니다. 그는 신바빌로니아를 무너뜨리고 유대인을 해방하는 등 '관용 정책'으로 제국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 **전성기 (다리우스 1세):** 동쪽의 인더스강부터 서쪽의 이집트와 아나톨리아(튀르키예)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했습니다. 전국을 20여 개 행정구역으로 나눠 총독(**사트라프**)을 파견했고, 대동맥인 **'왕의 길'**을 건설했습니다. 국교로 **조로아스터교**를 숭배했으며, 화려한 의례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를 건설했습니다.
* **멸망:**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영화 *300*의 배경)에서 패배한 후 서서히 쇠퇴하다가, 기원전 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공을 받아 황제 다리우스 3세가 암살당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 2. 파르티아 제국 (기원전 247년 ~ 기원전 224년)
### 실크로드를 장악한 동서 무역의 맹주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그 장군들이 세운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던 이란 고원에서 토착 유목민 계열의 아르사케스 1세가 일어난 왕조입니다. (중국 사서에는 '안식국'으로 기록됨)
* **특징:** 강력한 기마 궁수(파르티안 샷)를 앞세워 군사 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지리적 이점을 살려 서양의 **로마 제국**과 동양의 **한(漢)나라** 사이에서 **실크로드 중계 무역**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 **문화:** 오랜 그리스 세력의 지배 영향으로 초기에는 헬레니즘(그리스) 문화를 숭배했으나, 점차 페르시아 고유의 전통문화와 이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 **멸망:** 로마 제국과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된 상황에서, 내부에서 일어난 사산 가문의 반란으로 멸망했습니다.
## 3. 사산 왕조 페르시아 (기원전 224년 ~ 기원전 651년)
### 고대 페르시아 문화의 르네상스
파르티아를 무너뜨린 아르다시르 1세가 건국한 왕조로, 과거 아케메네스 왕조의 영광을 온전히 부활시키겠다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 **특징:** 아케메네스 시절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부활시켰고, **조로아스터교를 철저한 국교로 삼아** 교리를 정비했습니다. 로마 제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맞대결을 펼쳤던 진정한 라이벌이었습니다.
* **전성기 (샤푸르 1세 & 호스로 1세):** 샤푸르 1세는 로마 황제 발레리아누스를 생포하는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호스로 1세 때는 행정, 세제 개혁을 단행하고 인도의 설화와 학문을 번역하는 등 문화적 황금기를 구가했습니다. 이 시기의 정교한 은제 그릇, 유리 공예, 직물 등은 신라(경주)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이슬람의 정복과 멸망:** 비잔티움 제국(동로마)과의 소모적인 장기 전쟁으로 국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아라비아 반도에서 새로 부흥한 **이슬람 정통 칼리파 군대**의 공격을 받아 651년 예즈데게르드 3세를 끝으로 멸망했습니다. 이후 이란 지역은 이슬람화(종교가 이슬람으로 전환)됩니다.
## 4. 사파비 왕조 (1501년 ~ 1736년)
### 근세 이란 정체성과 시아파 제국의 확립
사산 왕조 멸망 이후 이란 고원은 아랍 제국, 셀주크 투르크, 몽골 제국(일리한국), 티무르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오랜 암흑기를 거쳤습니다. 이를 끝내고 약 850년 만에 이란인 고유의 민족 제국을 재건한 것이 사파비 왕조입니다.
* **특징:** 창건자 이스마일 1세는 이슬람 **시아파(12이맘파)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로 인해 원래 수니파가 다수였던 이란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자적인 시아파 국가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서쪽의 수니파 대국인 **오스만 제국**과 끊임없이 대립했습니다.
* **전성기 (아바스 1세):** 새로운 수도 **이스파한(Isfahan)**을 건설하여 "이스파한은 세계의 절반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한 이슬람-페르시아 건축과 예술의 꽃을 피웠습니다. 페르시아 양단, 양탄자(카펫) 무역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 **멸망:** 아바스 1세 이후 무능한 군주들이 이어지고, 아프간 부족의 침공과 내부 반란이 겹치면서 18세기 초 급격히 몰락했습니다.
## 5. 그 이후의 페르시아 (사파비 이후 ~ 현대)
사파비 왕조가 무너진 이후 아프샤르 왕조, 잔드 왕조를 거쳐 **카자르 왕조(1789~1925)**가 들어섰으나, 이 시기에는 서구 열강(영국, 러시아)의 내정 간섭으로 고통받았습니다.
이후 1925년 군인 출신의 레자 샤가 **팔레비 왕조(1925~1979)**를 창건하였고, 1935년 공식 국명을 국제 사회에 '페르시아' 대신 **'이란(Iran, 아리아인의 땅)'**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역사 속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팔레비 왕조는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무너지고 현재의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요약: 페르시아 역사의 축
| 왕조명 | 주요 특징 | 대립했던 주요 라이벌

| **아케메네스** (BC 550~330) | 최초의 세계 제국, 관용 정치, 조로아스터교 | 그리스 도시국가들, 알렉산드로스
| **파르티아** (BC 247~AD 224) | 실크로드 중계 무역, 기마 전술 | 로마 제국, 한나라(무역)
| **사산 왕조** (AD 224~651) | 페르시아 문화의 부흥, 중앙집권, 정통 조로아스터 | 로마 및 비잔티움 제국, 이슬람 아랍
| **사파비** (AD 1501~1736) | 근세 이란 재통합, 이슬람 시아파 국교화 | 오스만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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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Achaemenid Empire, 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서아시아, 이집트, 인더스강 유역에 이르는 지중해와 오리엔트 세계를 하나로 통합한 **'최초의 세계 제국'**입니다.
단순히 영토만 넓었던 것이 아니라, 정복 피지배민들에 대한 관용 정책과 선진적인 행정 제도를 통해 이후 등장한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 등 대제국들의 통치 모델이 되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핵심 역사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제국의 성립과 황금기 (주요 군주들)
아케메네스 왕조는 탁월한 영웅들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 키루스 2세 (대왕, 재위 기원전 559~530): 제국의 창건자
메디아 왕국을 무너뜨리고 페르시아 제국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아나톨리아의 리디아 왕국과 난공불락의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차례로 정복하며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 **관용의 군주:** 그는 피지배민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했습니다. 특히 바빌론을 함락한 후, 그곳에 잡혀 와 노예 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해방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도록 허락한 일화(성경의 '고레스 왕')로 유명합니다. 인류 최초의 인권 선언문으로 평가받는 **'키루스 실린더(Cyrus Cylinder)'**에 이러한 그의 관용 정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다리우스 1세 (대왕, 재위 기원전 522~486): 제국의 정비사
동쪽으로는 인더스강, 서쪽으로는 트라키아(유럽)에 이르는 제국의 최대 판도를 이룩했으며, 영토 확장을 넘어 제국의 '시스템'을 완성한 군주입니다.
* 전국의 행정구역을 20여 개로 나누어 총독(**사트라프**)을 파견하고, 이를 감시하는 감찰관('왕의 귀', '왕의 눈')을 두어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 제국의 수도 수사에서 아나톨리아 사르디스까지 이어지는 2,700km의 **'왕의 길(The Royal Road)'**을 건설하고 역참제를 정비하여 전령과 군대의 이동을 신속하게 했습니다.
* 화폐(다릭 금화)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제국 내 상업과 무역을 대폭 활성화했습니다.
### 크세르크세스 1세 (재위 기원전 486~465): 격변기의 군주
다리우스 1세의 아들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리스 정벌을 단행했습니다. 영화 *<300>*의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맞붙은 군주가 바로 그입니다. 초기에는 아테네를 함락하는 등 승기를 잡았으나, **살라미스 해전**과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그리스 연합군에 대패하며 유럽 진출의 꿈이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제국은 서서히 쇠퇴기로 접어듭니다.

2. 페르시아의 독창적인 통치 시스템
아케메네스 왕조가 고대의 수많은 정복 왕조 중에서도 오랫동안 번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혁신적인 제도에 있었습니다.
* **관용과 자치 (Satrap System):** 정복지의 전통, 법률, 종교를 강제로 바꾸지 않았습니다. 세금(공납)을 바치고 제국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다면 높은 수준의 자치를 인정했습니다. 이는 피지배민들의 반란을 최소화하는 현명한 통치책이었습니다.
*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 우주의 선신(아후라 마즈다)과 악신(앙그라 마뉴)의 대립을 기반으로 하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사후 세계, 최후의 심판, 천사와 악마 같은 개념은 후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교리 형성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페르세폴리스(Persepolis):** 다리우스 1세가 건설하기 시작한 제국의 의례용 수도입니다. 전 세계의 사절단이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기 위해 찾았던 곳으로, 거대한 석조 기둥과 정교한 부조들은 페르시아 대제국의 위엄과 다문화적 예술 양식의 융합을 잘 보여줍니다.

3. 제국의 몰락 (기원전 4세기)
크세르크세스 1세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는 내부적인 균열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사트라프의 반란과 왕실 내분:** 중앙 권력이 약화되자 지방 총독(사트라프)들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키워 반란을 일으켰고, 왕실 내부에서는 끊임없는 암살과 왕위 찬탈 제위 다툼이 일어나 제국의 국력이 크게 소모되었습니다.
*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 기원전 334년,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마케도니아 연합군을 이끌고 헬레스폰투스 해협을 건너 페르시아를 침공했습니다.
* **멸망 (기원전 330년):** 페르시아의 마지막 황제 **다리우스 3세**는 그라니코스, 이수스,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에게 잇달아 대패했습니다. 결국 다리우스 3세는 도주 중 자신의 사트라프였던 베소스에게 암살당했고, 페르시아의 상징이었던 페르세폴리스 궁전이 불타면서 아케메네스 왕조는 220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헬레니즘 시대로 넘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