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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많이 온 날 금산장

비 억수 오는 날. 비 새는지 점검하러 왔다가 보니오늘이 7.17 금산 장날이다. 비 많이와서인지 장똘배기 큰손들은 오지않았다. 금산 내 주민들이 띄엄띄엄 좌판을 벌였다. 비를 뚫고 온 분들의 수고를 생각하며 주섬주섬 샀다. 대파 모종 5천원(큰 묶음 한다발)복숭아 2만원 (10개)찐옥수수 5천원(4개)만두 찐빵 6천5백원(김치만두 8개, 찐빵6개)양배추 2천원(1통)가지 6천원(8개)호박 1천원(1개)

마음숲밭 2025.07.18

죽음이 아니라 삶에 가까운 사진을 찍는 것

조해진, [빛과 멜로디], 문학동네, 2024.(169~176쪽)“당신은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예요.”촬영을 하러 비행기를 탈 예정이니 모르핀 계열의 진통제를 넉넉히 처방해달라는 그의 말에 담당의는 높은 단상에 앉은 법관처럼 그렇게 말했다.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돼서 수술은 이미 불가능하지만 항암 치료를 받는다면 한 가닥 희망은 걸어볼 수 있다는 레퍼토리를 잊지 않은 채, 일단 살아야 그렇게 좋아하는 사진도 더 찍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라고 그늘진 눈빛으로 물을 때는 부쩍 나이들어 보이기도 했는데, 그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담당의의 시선을 피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들어줄 의향이 없었으니까. 언제부터였을까. 어떤 병에든다 해도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 것은 대체..

스쳐가는 잊지못할 형상들

김주혜, [작은 땅의 야수들](박소현 옮김), 다산북스, 2022.1917년(27~ 29쪽)남자의 눈이 번쩍 떠졌다. 정말로 어떤 소리가 귀에 들려오고 있었다. 벼랑 가장자리에서 낮게 그렁대는 숨소리였다. 짐승이 호흡할 때마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수증기가 향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그는 활시위를 팽팽히 당겼다. 그러나 사냥감을 포획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산 아래까지 무사히 내려가진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저 표범의 먹이가 되어 죽고 싶지는 않을 뿐이었다.표범이 절벽 끝에 튀어나온 바위로 훌쩍 올라왔다. 짙은 안개 속에서 윤곽으로만 어른거리는 그 짐승의 존재를 그는 눈으로 보기보다 온몸의 감각으로 느꼈다. 마침내 짐승이 몇 자도 되지 않는 거리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남자는 숨이 턱 막..

상하이 관련 자료 및 역사적 배경 및 지명

정윤수의 도시산책 극장, [상하이], 팟빵 매거진, 2024년 12월호리쩌허우, [화하미학](조송식 옮김), 아카넷, 2016.하상일, [상하이 노스탤지어], 이담북스, 2016.왕안이, [퓨핑](김은희 옮김), 어문학사, 2014.: 문화대혁명 직전인 1964년과 65년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푸핑이라는 여성과 그 주변 이야기를 그린 작품. 영화 [상해탄], 1996.예원: 상하이 구시가지 푸시의 중앙에 위치한 정원. 명청시대 양식으로, 중국 정원 중에서도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고 평가받고 있다. 성황묘: 성황신을 제사지내기 위한 사당. 중국 문화에서 성황신은 도시의 수호신으로 그 전신은 주관의 팔신의 하나로 등장하는 수용신이다. 천안문 사건: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의 주도로 1989년 4..

조선선비 일본 답사기

신유한, [해유록](김찬순 옮김), 보리, 2020(2006 1쇄).(371~372쪽)[해유록]은 신유한(1681~1752, 호는 청천, 자는 주백)의 일본 기행문이다. 그는 글 잘하기로 유명하였으며 또 시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로 [청천집] 여섯 권이 있으며 그중 [해유록]은 숙종 기해년(1719)에 통신사 홍치중을 좇아 제술관으로 일본에 갔을 때의 여행기이다. 그는 민족 의식이 강한 패기 있는 애국자였다. 일본에 가서는 언론으로, 기개로, 문필로 그 나라의 관료와 문인들 그리고 각계 인사들의 존경과 탄복을 자아냈으며 ‘사무라이’ 무리 속에서 대마도주의 거만을 위압하였고 나라 간의 의례상 불합리를 바로잡아 놓음으로써 민족의 존엄을 떳떳이 지키며 빛내었다. 이른 곳마다 그의 시를 얻으러 모여드는 사람으로..

[표해록]을 따라가는 중국 답사기

서인범, [명대의 운하길을 걷다: 항주에서 북경 2500km 최부의 표해록 답사기], 한길사, 2012.(23~28쪽)최부의 본관은 탐진(오늘날 강진)으로, 생가는 나주시 동강면 인동리 성기촌에 있다. 자는 연연, 호는 금남이다. 최부는 최택과 여양 진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조선조 사림의 종장인 김종직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명망을 떨쳤다. 성종 8년(1477) 24세의 나이에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했으며, 성종 17년에는 문과 중시 을과에 급제했다. 당시 8명의 급제자 중 김종직 문하의 동문으로 신종호와 표연수 김일손 등이 있었다. 이듬해 홍문과 부교리로 승진했고, 11월에 제주 삼읍 추쇄경차관에 임명되었다. 다음해 정월에 부친상을 당해 급거 고향 나주로 돌아오다 태풍을 만..

조선 선비 중국 답사기

최부, [표해록: 조선 선비 중국을 표류하다](김찬순 옮김), 보리, 2006.(284~285쪽)[표해록]은 최부(1454~1504)의 작품이다. 그는 성종 18년(1487)에 경차관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이듬해 부친상을 당하여 나주 본집으로 급히 돌아오는 도중에 제주 앞바다에서 폭풍우에 불려 망망한 바다에서 험악한 파도와 싸우기를 무릇 10여 일, 거듭되는 죽을 고비를 겪고 마침내 중국 절강성 태주 지방에 닿아 중국의 보호를 받아 마흔세 명 전원이 고국에 살아 돌아온 기록이다. 노한 바다, 미친 파도가 배를 삼켰다 뱉었다 하여 배는 곤두박질로 전복, 침몰, 파선의 위기에 부딪히곤 하였다. 억센 의지력과 굳은 신념을 다진 최부는 선원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여 가혹한 바다의 시련을 이겨 냈다. 해적의 창검에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