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452

상해 항일운동 유적

한국근현대사학회, [국외 항일운동 유적(지) 실태조사 보고서], 2002.상해 지역상해는 양자강과 황포강이 만나는 삼각주에 위치한 중국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이자 국제도시이다. 아편전쟁 직후 체결된 남경조약(1842)으로 영국(1845), 미국(1848), 프랑스(1849) 등 열강들의 조계지가 설정(미국과 영국의 조계지가 통합되어 1863년 공동조계가 됨)되면서, 상해는 동서양이 만나는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인 동시에 열강들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한국에서 상해로 가는 주도니 길은 신의주 진남포 인천을 통하는 것이었다. 특히 진남포와 인천은 중국의 정크선이 자주 드나들어 상해로 가는 주요 지점으로 지점으로 이용되었다. 1910년을 전후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상해로 모여들었다. 대한제국 군인출신인 신규식은 상..

1920~40년대 상하이

조너선 카우프만,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최파일 옮김), 생각의힘, 2023.(124~127쪽 )침략자들의 성공에 자극 받은 중국의 반정부 분자들은 황제의 허약성을 감지하고 청나라 조정에 도전했다. 1850년에는 태평천국의 난이 중국을 뒤흔들었다. 중국 정부를 개혁하고 서양을 따라잡으려는 시도는 수구적인 황제들과 조정에 의해 좌절되었다. 중국 개혁가들은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만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황제와 청조의 무능한 통치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량치차오(양계초)는 “우리의 내부적 여건을 알아차리자마자 유럽인들은 개미 떼가 더럽고 악취 나는 것에 달라붙듯이, 무수한 화살이 하나의 과녁에 집중하듯이 제국주의..

중국 역사의 모자이크 일부 복원

조너선 카우프만,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최파일 옮김), 생각의힘, 2023.(35~ 41 쪽)중국 공산당 판본의 역사에는 적잖은 진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다른 진실들도 존재한다. 상하이는 중국의 용광로, 중국을 형성한 모든 세력들 - 자본주의, 공산주의, 제국주의, 외국인, 민족주의-이 한데 모인 도가니였다. 1895년에 이르자 상하이는 현대적인 런던의 설비에 버금가는 시가 전차 체계와 가스 공급망을 보유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타이판 빅터 서순의 주도로 시카고에 버금가는 마천루와 스카이라인을 갖추게 되었다. 상하이는 당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였다. 나머지 세계가 대공황에 빠져들고 있을 때 장제스 정부는 화폐를 안정시키고 수출 붐을 일으키기 위해 서순과 협력했다. 상하이는 중국의 뉴욕..

아. . . 이 느낌

2025.2.20 우수 지나 경칩을 기다리며2025년 새해에는 [소년이 온다] 영문판을 읽자고 했다. 2024년 매주 한번씩 줌으로 [Little Tree]를 읽고 난 후였다. 문학책을 영어로 읽은 것은 거의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지역방언도 많았고 모르는 단어들이 하도 많아 앞으로는 좀 쉬운 책으로 읽고 싶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탄 이후 이전에 읽다가 그만 둔 한강의 책들이 떠올랐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감했던 부분을 내가 놓치고 있는 게 뭘까 궁금했다. 매해 노벨상 수상자가 거명될 때마다 그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던 것처럼, 한강 책도 노벨수상작에 대한 오마쥬로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소년이 온다] 영문판을 읽자는데 동감을 해주어, 2025년 1월 8일 부터 읽기 시작했다..

휴먼 액츠

장융, [아이링 칭링 메이링](이옥지 옮김), 까치글방, 2021.(360~ 369쪽 )1966년 문화 대혁명이 시작되자 칭링은 더 이상 집 밖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문화 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일으킨 가장 큰 숙청 사업으로, 주요 표적은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서 국가 주석이 된 류사오치였다. 그가 대약진 이후 돌연 마오쩌둥을 공격하고 마오쩌둥의 초고속 군수 사업화를 중단시킨 것(덕분에 대기근도 끝이 났다)이 원인이었다. 마오쩌둥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류사오치를 증오했고, 그가 감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만들었다. 류사오치의 아내 왕광메이는 “미국중앙정보국과 국민당의 간첩”이라는 황당무계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혔다. 중국 전역에서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류사오치의 추종자로 몰려서 고..

고통의 진실

리 호이나키, [아미쿠스 모르티스](부희령 옮김), 도서출판 삶창, 2016. ( 197~ 200쪽)오랜 세월 동안 나는 시몬 베유의 글을 읽고 또 읽어왔다. 비록 그녀의 글이 잘 이해가 안 되고, 거의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녀의 책이 나의 책장에서 내려온 적은 없었다. 때때로 진실을 꿰뚫은 빛나는 통찰력은 나의 둔한 감성에 충격을 주곤 했다. 그리고 일리치가 죽은 뒤에 나는 새로운 눈으로 그녀의 글을 읽었다. 진실 중 유일하게 여기에서 언급할 수 있는 것은 고통의 진실이다. 일리치가 죽은 2002년 12월 2일 이후의 시간 동안 시몬 베유를 읽으면서, 나는 일리치가 겪은 고통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2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 그녀의 에세이 [신의 사랑, 그리고 고통]은 내가 읽은 어떤..

다 내맡기오

이문재, ‘성찰하고 표현하자, 공감하고 연대하자’, [녹색평론], 2024년 겨울호. 삼보일배-오체투지는 ‘눈먼’ 시대와 문명 앞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한 하나의 사건입니다. 산업문명의 폐해를 두루 살피고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는 길을 꿈꾸게 한 전환점입니다.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일깨운 ‘죽비 소리’입니다. 천지자연을 인간의 물질적 풍요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켜온 법과 제도의 ‘민낯’을 드러낸 비폭력-불복종 직접행동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지 함께 모색하게 만든 촉진제입니다. 한마디로, 모두를 위한 참회기도이자 모두의 미래를 위한 순례입니다. 삼보일배- 우리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다2003년 삼보일배는 새만금 해창갯벌에서 첫걸음을 뗐습니다. 그해..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24(2014 초판).(193~ 194쪽) 에필로그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살이었다.누군가 나를 불러앉혀놓고 자초지종을 들려준 건 아니었다. 서울로 올라온 그해, 수유리 언덕배기 집에서 나는 아무 데나 틀어박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거나, 오빠나 남동생과 오후 내내 오목을 두거나, 엄마가 나에게만 시키는 일인 동시에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마늘 까기나 멸치 머리 떼기 같은 일을 했고, 그러는 사이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들을 주어들었다.오빠가 가르친 애였어요?초가을의 어느 일요일 막내고모가 식탁머리에서 아버지에게 물었다.담임을 한 건 아닌데, 작문을 해서 내라고 하면 곧잘 쓰던 애여서 기억이 나. 중흥동 집 팔고 삼각동으로 이사 가면서 복덕방에서 계약을 했는데, 내가..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

시그리드 누네즈, [어떻게 지내요](정소영 옮김), 엘리, 2021(2022 재판)(253쪽) 옮긴이의 말시몬 베유의 말에서 따온 ‘어떻게 지내요’라는 말은 원어인 프랑스어로는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이고, 이웃에 대한 관심은 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 일이,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소설 속 일화들이 진짜 고통받는 삶의 장면이라기보다 연로한 여성 작가의 불평으로 들리기도 한다는 의구심도 있을 수 있다. 문학 작품이라면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식의 착잡함만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을 어떤 식으로든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내가 누군가의 삶을 지옥..

극한 노동의 응축, 멸치액젓

김창일, [물 만난 해양민속학자의 물고기 인문학], human & books, 2024.(121~ 127쪽)밑반찬은 물론이고 젓갈, 액젓, 분말 등 감칠맛을 내는 데에 빠뜨릴 수 없는 식재료, 우리 식탁에서 멸치의 위상을 넘는 생선이 있을까? 조연처럼 보이지만 실은 맛의 주연이다. [자산어보]에서는 멸치를 추어, 멸어라 했다. ‘업신여길 멸’ 자에서 알 수 있듯 변변찮은 물고기로 여겼다. 국이나 젓갈 또는 말려서 각종 양념으로 썼다. 물고기 미끼로 사용했으며 선물용으로는 천한 물고기라고 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한 그물로 만선하는데 어민이 멸치를 즉시 말리지 못하면 썩으무로 이를 거름으로 사용한다. 건멸치는 날마다 먹는 반찬으로 삼고 회, 구이로 먹고 건조하거나 기름을 짜기도 한다’고 했다.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