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57

인생 나무

2021.4.27 화 어제는 윤여정의 날이었다. 나는 축하의 쑥떡도 만들고 황회장님은 작은다방 음료 5백원씩 깍아주는 ‘문화행사’도 했다. [노매드랜드]로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 감독이 궁금하여 검색해보았다. 82년생 중국인, 중학교 때부터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를 했으니 미국인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클로이 자오가 영향받은 감독은 왕가위 감독이었고, 자오가 주도해 만든 세 영화(로데오 카우보이, 노매드랜드, 이터널스)에서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평가가 눈에 띄었다. 테렌스 맬릭 감독을 검색해보니 맬릭 감독의 영화 중 ‘트리 오브 라이프’가 있다. 나도 보았던 영화이다. 브래드 피트만 기억났던 영화. 왓챠와 넷플릭스에서 검색하니 영화가 없다. 유튜브로 검색하니 내가 이미 구입한 영..

단상 칼럼 2021.04.27

백일

클로이 백일을 맞아 클로이가 2021년 1월2일 이 세상으로 왔다. 이후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활은 달라졌다. 거의 매일 전 세계로 보내지는 클로이의 사진과 동영상은 물리적인 거리와는 상관없이 가장 가까이 얼굴을 마주보고 있다. 클로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는 것 같았다. 가끔 클로이의 냄새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맡았던 아기의 냄새로 가늠해보기도 하고. 매일 변하고 있는 클로이의 얼굴과 몸을 보며 감탄을 한다. 백일과 돌을 크게 기념한 옛 선조들처럼 클로이의 백일을 축하한다. 백일 동안 잘 자라주어 기특하다. 클로이 영상을 보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즐거워한다. 코로나라는 엄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클로이를 보면서 신기해 하고, 클로이의 까르르 소리에 따라 웃게 된다. 클로이!..

단상 칼럼 2021.04.09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포만감) 작년에 말린 무청 씨레기를 무친 것, 머위를 캐서(장독대를 넓히기 위해) 데쳐서 무친 것, 한겨울 내 항아리에 보관했던 배추로 김치 만든 것으로 밥을 먹었다. 식은 밥에 먹었지만 뿌듯했다. 씨레기 배추 무, 그리고 올 봄에 나온 머위는 나의 작은 텃밭에서 나왔다. 매년 여름이 다가올 때 즈음이면 밭에서 바로 딴 풋고추와 상추를 고추장 찍어 먹을 때 뿌듯한 포만감이 있다. 올해는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추장에 찍어 먹게 될 것이다. 나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것을 먹을 때 그야말로 생명의 양식을 먹는 것 같다. 2010년 가을, 이곳을 매입했을 때는 소나무 있는 집이 좋았다. 사실 텃밭을 할 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씩 땅을 일구어 가면서 내 노력이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이러한 뿌..

단상 칼럼 2021.04.06

깨달음

2021. 3. 30 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이춘아 어려서는 ‘저렇게는 되지 않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어느 시간에 와서는 ‘이렇게 되어야겠다, 또는 이것이 맞지 않을까’하며 살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했었다. 그 질문은 여전히 세상사에 판단을 유보하게 한다. 늘 이거다 저거다 라고 확정짓지 못하게 한다. 때로는 우유부단 해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시간이 좀 지나 그때 확정짓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기도 했다.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라는 제목으로 쓰려니 떠오르는 단어가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이다. 매일매일은 뭔가 하며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딱히 ‘이렇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얼마전 나이 육십이라 했는데 벌써 육십오를 찍고 있다. 우물쭈물하다 일흔..

단상 칼럼 2021.03.30

나 여기 있소

2021.3.29 월 블로그에 단행본 소개를 했었다. 이번 익산답사를 다녀오면서 문득 집에 있는 도록이 생각나 '전시도록'을 소개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2월 코로나로 모임을 하지 못하게 되자 시작된 책 소개. 처음에는 우리 고사리 회원들을 위해 매일 책을 조금씩 필사하여 혼자서 각자 낭독할 수 있도록 하여, [그레구아르와 책방할아버지], [체리토마토파이] 등을 연재했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저작권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매일 연재를 접어두고, 주말 토요일 일요일 아침 책 소개하는 코너로 바뀌었다. 그동안 소개한 책들도 꽤 쌓였다. 그러다 ‘전시도록’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리집의 책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박물관 다녀오면서 구입한 전시도록이 제법 있기도 하다. 도서관을 오가며 일어나..

단상 칼럼 2021.03.29

맞춤복

- 대전역 앞 오래된 양복점 기신양복점.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양복점. 재봉틀 의자의 바래고 닳아 있는 색상과 질감이 60년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 2020.10.24. 중촌동 맞춤복 거리에서 패션 쇼를 하고 있다. 기성복에 밀려 그 많은 양복점들이 떠나가고 이제 몇 곳 남지 않은 양복점 가운데 하나인 기신양복점. 류아무개 사장 혼자 운영하고 있다. 이전에는 이 일대가 양복점 거리였다고 한다. 한약거리와 인근한 거리이다. 양복점 주인은 옷감 샘플을 보여주며 색상, 계절 등을 고려하여 선택하라고 한다. 오래전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은 옷감 선택에서 부터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결과물에 대한 디자인을 이미 구상하고 와서 요구하거나 주인장이 제안하는 디자인..

단상 칼럼 2021.01.27

아버지의 노자

2020.12.22화 1979년 2월, 설 지낸지 일주일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갑작스럽게 가셨기에 우리집과 동네 어르신들은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초상을 치루었다. 그 와중에 내게 남아있는 것은 아버지의 노자 였다. 아버지는 [노자]를 끼고 아래 위층으로 다니셨다. 돌아가시고 난 며칠 후, 나는 아버지가 끼고 다니셨던 [노자]를 들쳐보았다. 아버지의 곱상한 글씨가 여백에 메모 되어 있기도 하고 밑줄도 쳐져 있었다. 내가 ‘노자’를 언제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던 것같다. 노자의 ‘도’를 먼저 인지하고 있었고, 성경을 읽게 되면서 ‘나는 길이요 진리이다’ 라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 ‘길’이 ‘도’라고 적용하면서 흥미롭게 성경을 읽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아버지의 노자’를 읽어..

단상 칼럼 2021.01.03

그 마음이 여성들을 움직였다

이효재 선생님이 2020.10.4 돌아가셨다. 19년전 진해로 찾아가서 인터뷰했다. 이 글은 서울시 북부여성발전센터, [여성, 삶의 이야기 10인전] (2001)에 실렸다. 이효재 가족사회학자, 여성단체 대표 사회학적 관심이 닿는 곳에 마음이 열렸고 그 마음이 여성들을 움직였다 2001년 인터뷰. 이춘아 “선생님은 제 삶의 거울이세요” 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제자는 행복하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펼치며 살아가는 제자들을 스승은 자랑스러워한다. 그러한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스스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학문과 실천의 장을 자유롭게 자신의 뜻에 따라 넘나들어 온 삶이 어느새 희수를 넘기고 있는 이효재 선생. 어려서 막연하게나마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이 민족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믿..

단상 칼럼 2020.10.04

잘 가시라

2020.7.10(금) 새벽 4시경 잠에서 깼다. 핸드폰을 켜서 뉴스를 찾아본다. 박원순 시장님이 결국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가슴이 뻐근해졌다. 막연함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실인지, 잘못된 뭐가 있는 건 아닌지 하면서도 사실에 가까움을 인정해야하는 뻐근함이 가슴 뭉치로 내려앉는다. 노희찬도 박원순도 1956년생. 왜 그들은 죽음을 급하게 택했을까. 그들이 그토록 가열차게 살아왔던 그 많은 에너지는 어디로 빠져나가고 죽음을 서둘러 택했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다. 그들의 판도라 상자에 남겨둔 마지막의 것은 수치심이었을까. 우리의 문화권. 도덕적 형벌은 개인에게 너무도 큰 무게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에게 파생된 것은 병에 걸리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나의 동..

단상 칼럼 2020.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