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모자 쓴 석불의 미소

이춘아 2025. 7. 25. 10:05
부여 정림사지 석불


이바라기 노리코, [한글로의 여행](박선영 옮김), 뜨인돌, 2010.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 오사카 출신으로 제국여자약전 약학부를 졸업했다. 결혼 후, 잡지에 시를 투고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했다. 전후 일본인들의 무력감과 상실감을 담아낸 ‘내가 가장 예뻤을 때’란 시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으며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을 계기로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문학의 번역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134~136쪽)

부여의 참새

부여는 백제의 고도다. 고도이기는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유적은 그다지 많지 않고 산하만이 존재한다는 점에서는 일본의 아스카와 비슷하다. 정림사지라 불리는 절터가 이곳에 있는데, 그곳에 가면 백제 시대의 석불과 석탑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 

석불은 머리 부분이 소실되었는데,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했을 무렵의 일인지 그 후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세월 머리 없는 석불로 이곳에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모습이 측은하다며 후세의 어떤 이가 다른 불상의 머리를 가져와 얹고, 그 위에 석판을 올려서는 그 위에 다시 동그란 돌 하나를 툭 올려놓았다. 

그러자 석불의 모습이 모자를 쓴 아미타불같이 되었는데, 나름대로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대대로 그렇게 두었다고 한다. 비바람을 맞으며 주변 풍경에 녹아들어, 지금은 이 석불이 처음부터 모자를 썼던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너진 석불에 얼굴을 채워 주고 모자를 씌워 주다니, 이런 대범하고 온정적인 성격은 이 민족이 가진 독특한 기질이자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기풍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정림사지의 석불은 이를 상징하는 것처럼 미소 짓고 있다. 

알카익 스마일(고대 그리스 미술 조각에서 보이는 미소 띤 표정 - 옮긴이), 일본의 츄구사나 고류사를 통해 알려진, 자연스러운 그리움이 느껴지는 고졸의 미소이다. 

9월이었다. 절절히 넋을 잃고 석불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떠들썩한 참새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어머, 정말 대단하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참새 떼가 석불과 마주한 큰 나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푸르디푸른 나무를 돌아 나선형으로 소용돌이치듯 날아올랐다가, 뿔뿔이 흩어지기를 여러 번,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나뭇가지 끝으로 돌진하면서, 끝도 없이 장난을 치는 개구쟁이처럼 힘차게 소란을 피우고 있다. 

하늘엔 벌써 황혼이 깃들어 있었다. 이 나무가 녀석들의 둥지일지도 모르겠다. 

“부여는 참새마저 다르구나……”

내가 감동해서 중얼거리자 함께 갔던 친구는, “얘, 그런 걸 두고, ’오버‘라고 하는 거야”하며 웃었다. 

그랬다. 나는 그저 무작정 부여에게 반해 있었던 것이다. 힘이 넘치는 부여의 참새들. 원래 참새란 이렇게 활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도쿄 북쪽, 다마군 호야리의 우리 집으로 날아오는, 흠칫흠칫 떠는 참새들이 불쌍해졌다. 

참새는 한국말로 ’진짜 새‘라는 뜻이란다. ’진정한 새‘라니 재미있다. 참새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 근처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하는데, 농경문화가 시작된 이래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새이자 어느 나라에서나 공기와 같은 흔한 새였을 것이다. 

저녁 식사 전 한바탕, 정신없이 놀이에 빠져 무아몽중, 흥분한 나머지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한 참새들과 헤어져 그 자리를 떠났다. 모자 쓴 석불의 미소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그 나무에서 편안히 잠들겠지. 

해질 무렵이 되면, 지금도 곧잘 부여의 참새들을 떠올린다. 나 역시 한 마리의 참새가 되어 정림사지의 큰 나무로 돌아가고 싶은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