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경, “정순왕후와 창신동 여인시장”, [사상계], 2026년 신년특별호(통권210호, 재창간5호)
S.O.S.(Soul of Seoul)라는 글자에 꽂혀 살고 있던 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튀르키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자전적 에세이 [이스탄불]이라는 책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는 이스탄불이란 도시를 튀르키예어 ‘Husun’이라는 감성적 렌즈로 바라본다. 나는 2007년 이슬람 순례를 떠났을 때 튀르키예를 3개월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중 한 달 반을 보스포루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의 구도심에 살았다. 그때 알았다. 이스탄불은 농도 짙은 역사의 영혼이 오늘도 살아 숨쉬고 있는 도시라는 것을. Husun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비애‘라는 말이 가장 근접한 표현일 것이다. 그것은 오스만 제국의 몰락과 함께 스며든 깊은 패배감, 중심에서 소외된 느낌, 뭘 해도 실패할 것같은 무력감 분노 멜랑콜리가 오래된 폐가의 색처럼, 실업자들이 가득 찬 카페의 담배 연기처럼, 습기 찬 지하실의 냄새처럼 튀르키예인의 영혼에 스며든 집단무의식이다. 우리나라 말 중 ’한‘에 가까울 수 있다. 그러나 Husun은 한보다 훨씬 나른다다.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은 자신의 도시에 대한 슬프고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이다. 그의 책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내가 자라나고 지금 살고 있는 도시, 서울의 영혼에 대해 오르한 파묵 같은 섬세한 관찰과 언어로 러브스토리를 쓰고 싶은 열망에 온몸이 후끈거렸다. 그가 이스탄불과 맺고 있는 사랑의 깊이에 불타는 질투를 느꼈다. 이스탄불은 그에게 한없는 출렁거림을 주는 고혹적이고 의로운 연인 같았다. 내가 가본 세계의 도시 중 몇몇은 도시 자체가 살아 있는 영혼이었다. 이집트의 일렉산드리아, 인도의 캘커타,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이란의 이스파한, 과테말라의 안티구아, 페루의 쿠스코, 이탈리아의 피렌테, 모로코의 마라케시, 그리고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그 도시들에 들어섰을 때 깊은 숨이 쉬어지며 “나는 여기서 살 수 있어"라는 확신에 차오르곤 했다. 나는 이제 오래된 나의 도시, 서울과 사랑에 빠져보려 한다. 고층 건물과 아파트 건축으로 많은 역사적 장소들이 사라져 안타깝지만, 아직도 서울에는 내가 이생을 떠날 때까지도 다 못 만날 여러 역사적 영혼의 공간들이 남아 있다.
나는 첫 번째 Soul of Seoul을 만 16세에 삼촌 세조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한 단종과 , 17세 꽃다운 나이에 청상과부가 된 그의 부인 정순왕후의 이야기로 시작하려 한다.
단종은 세종의 장자인 문종의 맏아들이다. 유교적 가족 계보에서 적자 중 적자다. 그러나 그는 조선 역사상 가장 비운의 왕이다. 그의 어머니 현덕왕후는 산후병으로 단종 출생 후 곧 사망한다.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현황후, 아버지 문종도 그가 어릴 때 돌아가신다. 그는 열 살 어린 나이에 왕이 된다. 부모 품에서 한참 뛰어놀 어린아이가 자신을 지켜줄 한 사람의 가족 어른도 없이 한 나라의 통치자가 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권력에 눈 먼 삼촌 수양대군은 재유정난을 일으켜 왕좌를 빼앗는다. 단종 복위 운동이 여러 사람들에 힘입어 도모되자 세조가 된 수양대군은 그들을 철저히 죽임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유지한다. 인정사정없었다. 세종과 문종의 추신들, 자신의 형제, 친구까지도 다 사형에 처했다.
세조의 권력에 대한 욕망과 불안은 끝이 없어 마침내 조카인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영월로 유배를 보낸다. 단종이 만 16세 때 일이다. 세조는 단종이 세도 있는 집안 딸과 혼인해 외척 세력을 만들까 걱정되어 정읍의 관리이자 어릴 때 절친인 송현수의 딸을 단종의 비로 손수 정한다. 그녀가 정순왕후다. 단종이 열세 살, 정순왕후가 열네 살 때다. 어린 소년, 소녀 부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궁궐 속에서 삶을 서로 의지하며 버텨 나갔다. 매일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그 둘의 사랑은 깊어간다.
세조의 비정함은 어린 부부를 갈라놓았다. 함께 유배를 보내달라는 그들의 간곡한 청을 세조는 거부했다. 단종은 호랑이가 출몰하던 심심 산천 영월의 청령포로, 정순왕후는 늙은 궁녀들이 궁을 나와 생의 마지막을 살았던 오늘날 창신동의 암자, 정업원으로 보내진다. 어린 부부는 청계천 영도교에서 서로를 마지막으로 본다. 차마 헤어지지 못해 통곡하는 그들을 백성들은 보았을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단종이 영월로 유배가는 긴 길 위에 백성들이 나와 엎드려 절하며 울었다고 한다.
전해 내려오는 민담에 의하면 단종은 영월에서 서울 쪽을 바라보면서 정순왕후가 그리워 울고, 정순왕후는 창신동 낙산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 한다. 마을 사람들이 새벽에 봉우리에서 들리는 소녀 왕비의 구슬픈 통곡 소리에 잠이 깨었다고 한다. 그 후 이 언덕은 ‘동망봉’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그 당시 단종이 쓴 그리움의 시는 지금 읽어도 가슴이 찢어진다.
달 밝은 밤 두견이 우는데
시름겨워 누각에 기대었네
네 울음소리 슬퍼 나 듣기 괴롭구나
네 소리 없으면 내 시름없을 것을
이 세상 괴로운 이에게 말을 전하니
부디
춘삼월 두견이 우는 누대에는
오르지마소
총명하고 섬세한 단종은 삼촌의 사형 명령으로 활줄에 목이 졸려 열여섯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단종의 시신은 서강에 버려졌다. 한 많은 시신은 떠내려가지 않고 물결 따라 빙빙 돌아 가녀린 하얀 손가락들이 보였다. 한다.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묻어주는 것은 가문이 멸할 벌을 받는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하늘의 법을 군주의 법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 안티고네의 시대부터 항상 있어 왔다. 엄흥도라는 영월의 아전이 밤에 몰래 시신을 건져 지게에 지고 자신의 선산으로 묻으러 갔다. 때는 이미 11월 말에 가까워 눈보라가 치고 땅이 얼어 파기가 어려웠다 한다. 그때 노루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걸 보았는데 그들이 도착하자 어디론가 사라졌다. 노루가 앉아 있던 자리가 땅이 녹아 있어 그곳을 파서 단종을 묻고 엄흥도는 다른 지역으로 피신을 간다. 전설에 따르면 단종에게 말동무하며 과일도 가져다 바쳤던 박충원이 단종을 찾아가는데 단종이 어의를 차려입고 백마를 타고 어디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다. 그가 어디로 가시냐 물으니 단종은 태백산으로 간다고 대답했다. 그가 서둘러 단종이 머물던 관풍헌으로 달려가니 단종은 이미 죽어 있었다. 그 후 단종은 태백산 산신이 되어 무속의 신으로 숭상되었다. 체 게바라가 암살당한 볼리비아의 라 이게라 산 위의 마을에선 지금도 체 게바라가 민중들의 기도에 나타나 그들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많은 남미의 젊은이들은 남미 대륙의 예수는 체 게바라라고 고백한다. 예수 시대부터 죄 없는 의로운 젊은이의 죽음은 민중들의 가슴 속에서 부활한다. 민중들의 집단 무의식 속에선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신적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다.
단종의 죽임을 알게 된 열일곱 살의 어린 왕비는 어떻게 삶을 견뎌냈을까?
일을 할 줄도 모르고 슬픔에 젖어 매일 통곡하는 청상과부에게 창신동 아낙네들은 몰래 음식을 놓고 같다. 왕후를 보필하던 두 명의 궁녀가 동냥을 해서 어린 왕비를 먹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조가 이 소식을 듣고 쌀과 음식을 내렸지만, 정순왕후는 그 모든 하사품을 거부하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선 생존을 위한 생산수단이 있어야 했다. 어린 왕비는 낙산에서 서식하는 식물 뿌리를 캐어 염색을 해서 근처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 당시 염색 안 한 천과 염색한 천의 가격 차이는 거의 10배였다고 한다. 궁중에서만 살던 사람들이 이러한 노동에 얼마나 서툴렀을까? 그때 동네 아낙들이 몰려와 염색을 도와주었다. 자줏빛 염색을 해서 지금도 남아 있는 염색터의 우물을 ‘자주동천’이라 부른다.
권력자 남자들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여인들은 남자들의 전리품이 된다. 정순왕후의 가족들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 정순왕후도 노비 신분으로 전락했다. 야사에 따르면 이때 신숙주가 정순왕후를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세조에게 청했다 한다. 비열한 쥐새끼 같은 놈! 왕족의 역사, 전쟁의 역사를 보면 이런 남자들이 허다하다. 열일곱 살 꽃다운 왕후를 데려가 그는 무슨 짓을 하고 싶었을까? 상상만 해도 치가 떨린다. 전쟁, 정복, 탈취, 강간의 역사 속에 나타나는 왜곡된 가부장적 남성성은 언제쯤 극복될 수 있을까? ‘정신대’를 고발한 생존자 할머니들 덕분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결의안 1325조를 발표했다. 전쟁 중 강간을 포함한 성폭력 행위를 전범으로 규정하는 조항이다. 이 발표에도 불구하고 모든 형태의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성폭력은 적군 남성을 에너지 창궐에서 거세시키는 ‘전략’으로도 사용된다. 내가 세조의 인간성에 대해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 존재에 대한 명복을 빌어줄 수 있는 것은 그가 신숙주의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창신동 아낙들이 정순황후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것을 세조가 금지하자 창신동의 아낙들은 지혜를 발휘한다. 왕후가 사는 곳 가까이 여성들만 들어가는 여인시장을 만든다. 금남의 시장. 나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장의 콘셉트다. 정순왕후는 이곳에서 자줏빛으로 염색한 옷감을 팔았다. 현재도 동묘시장이란 이름으로 이 시장이 남아 있다. 여인시장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열일곱 살 소녀 왕후가 못된 남자들의 손을 타지 않게 하는 것, 둘째는 파고 남은 농작물을 조정에 들키지 않고 살짝 정순왕후에게 주기 위해서다. 남자 세상의 권력자들이 망가트린 정순왕후의 삶이 동네 아낙네들의 측은지심 힘으로 지켜졌다. 정순왕후는 그곳에서 한 많은 삶을 81세까지 살다 세상을 떠났다. 사후에 그녀도 무속의 ‘송씨 부인’ 할머니 신이 되어 추앙된다.
정순왕후는 오랜 세월을 살며 비열한 수양대군이 자기 남편의 왕자리와 목숨을 빼앗고 어떤 삶을 사나 역사의 증인으로 지켜보았다. 세조가 된 그는 맏아들과 손자가 병으로 죽는 것을 봐야 했다. 권력 획득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다 했던 그는 성리학의 세계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형제, 조카를 죽인 친족 살인자가 된다. 그는 피 묻은 손으로 충신들과 친구들, 그들의 가족들까지 죽였다. 그래서 세조는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나? 그는 낫지 앉는 피부병에 시달리고 권력을 빼앗길 까 봐 공포와 불안에 술로 세월을 보냈다. 세조는 14년간 왕위를 지키다 병사한다. 그의 작은 아들이 예종이 되나 그도 빨리 죽는다. 이 정도면 하늘이 그를 저주하여 천벌을 내렸다고 봐야지 않을까? 세조의 낫지 않던 피부병에 대해서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설화가 전래된다. 어느 날 세조가 자다가 눈을 떠보니 단종의 어머니, 죽은 현덕왕후가 그의 머리맡에 서 있었다. 그녀는 세조를 쏘아보며 “내가 네 아들을 데려가겠다”라고 하며 세조에게 침을 뱉었다. 세조의 피부병은 현덕왕후의 침을 맞은 그 자리로부터 퍼져 나갔다 한다. 왕이니 온갖 명의를 동원해서 병을 고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늘의 저주를 인간 명의는 고칠 수 없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한다.
아마도 세조의 무의식에 꿈틀대던 지옥 같은 죄의식이 꿈의 방식으로, 종기를 통한 온몸의 독소 방출로 표현되었을 수 있다. 한 인생에서 보면 짧디짧은 14년의 불안하고 무서운 왕의 권세를 위해 그 많은 주변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권력에 대한 광기다. 미쳤다. 덧없다. 추하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 세조가 병들어 죽는 순간 회한과 허망함에 괴로움으로 몸부림치지 않았을까?
1698년 숙종 때, 단종은 그의 억울한 죽음 후 241년이 지나 왕으로 복위된다. 그때 그의 가엾은 아내도 정순왕후로 복권된다. 그들은 죽어서도 멀리 떨어져 있다. 단종은 영월에, 정순왕후는 남양주에 묻혀 있다. 그들의 무덤을 합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9년 4월9일 정순왕후의 사릉에 있는 소나무 하나를 영월, 단종의 장릉으로 옮겨 심었다. 몸으로 만나지 못한 부부가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속에서 영혼으로 만나 얼싸안고 춤추기를 기도한다.
동묘에 가서 여인시장의 자리를 보았다. 지금은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구제품 시장 같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자주색 천을 파는 노비 신분의 천민, 정순왕후를 만난다. 그녀를 지키려 “가요, 가요! 남자는 못 들어와요”라고 큰 목소리로 외치며 손사래를 치는 여인시장의 문지기, 어깨가 떡 벌어진 튼튼한 언니의 모습이 보인다. 서로 눈빛으로 대화하며 권력에 대항해 키득키득 웃으며 어린 왕비를 지키고 돌보며 다시 살려내는 언니들이 보인다. 지혜로운 조선의 민초 언니들이 진정한 ‘살림이스트’들이다. 그 길을 따라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영도교를 걷는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애달프고 억울하고 뜨거운 서러움이 뱃속으로부터 올라온다.
차도 없는 내가 뭔가에 끌려 영월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단종을 보기 위해서다. 그래야 이 이야기가 완성될 것 같았다. 이화서원 김재형 선생님의 소개로 엄흥도의 직계 자손인 엄의현 선생님을 뵈었다. 엄 선생님은 나를 동강으로 청령호로 장릉으로 관풍헌으로 안내해 주셨다. 엄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단종의 시간으로 돌아가서 내가 산다면 나는 내 조상처럼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할 용기가 있었을까요? 인간이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계엄군이 쳐들어올 때 광주 도청에 끝까지 남은 소년 동호의 가슴 속에 있었던 그 무엇이었을 거다.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나무에 앉아 울었다는 몇백 년 된 커다란 청령포의 소나무, ‘관음송’ 아래에서 나는 하트 모양의 돌멩이를 발견했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내게 준 선물이다.
단종의 시를 읊어본다.
외로운 몸 외딴 그림자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마다 잠을 청하나 잠들길 없고
해마다 햔을 끝내려 하나 끝없는 한이네
산봉우리에 울음소리 끊어지니 새벽달이 비추고
봄 골짜기에 피 흐르니 붉은 꽃이 떨어진다
하늘은 귀먹어서 하소연 못 듣는데
서러운 몸 어쩌다 귀만 홀로 밝은가
그래도…… 사랑이 이겼다.
'문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 (0) | 2026.03.11 |
|---|---|
| 나는 느림과 침묵에 굶주려있다 (1) | 2026.03.07 |
| 나의 음악 (1) | 2026.02.18 |
| 오윤을 다시 만나다 (0) | 2026.01.31 |
|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0) | 2026.0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