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나의 음악

이춘아 2026. 2. 18. 22:59


주 샤오메이, [마오와 나의 피아노](배성옥 옮김), 종이와나무, 2017

주 샤오메이(朱曉玟: 1949~  ) :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나 또한 오랫동안 음악으로 나를 표현하면 될 일이지 글을 써야 할 별다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와 같은 세대의 중국인 가운데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격심한 고통을 겪었던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사실을 두고 생각하면 내가 고생한 이야기를 꼭 글을 써야 옳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이란 늘 그렇듯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펼치는 이야기에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또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문화대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된 이들을 위하여 쓰고 싶었다. 40년 세월이 지난 오늘날 ‘문화대혁명’에 관해 얘기하는 사람도 드물지만, 특히 서양에서는 ‘문화대혁명’이란 사건이 무엇이었던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나는 중국, 미국, 프랑스 이렇게 동양과 서양 세 나라에서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교훈을 얻게 되었다.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는 서로 대화를 나누며 교류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이렇듯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고 생각되는 이 경험에 대하여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48~
나를 살려주시고 자기 수업에 받아주신 선생님은 성함이 Pan Yiming(반일명)이셨다. 나이는 겨우 25세였고, 불과 몇 달 전에 북경중앙음악학원에서 학위를 받았으며 교수 몇 분의 주선으로 러시아 피아노 학파와도 관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외모로 보아서는 안경도 쓰지 않고 흰 머리 한톨도 없는 이 젊은이가 정말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일까, 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아이스 스케이팅 선수 같기만 한 이런 사람 밑에서 정말 제대로 공부할 수 있을까?

“건반을 쓰다듬어야지 절대로 두드리지 마라. 건반이란 생각처럼 그렇게 딱딱한 것이 아니다. 건반이랑 씨름을 할 필요는 없다. 건반은 사실 부드럽고 유연한 것이다. 그런 부드러움과 유연한 느낌을 손가락 끝으로 느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건반에다 에너지를 전달만 할 것이 아니라 건반에게서 너 쪽으로 에너지를 당기도록 해봐라. 빵 반죽을 한참 주무른다고 상상해 봐. 엄마가 반죽을 어떻게 만드시는지 한번 지켜보아라. 빵 반죽도 피아노 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과 팔목을 놀리는 일이다. 손과 팔목을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 너와 네 악기 사이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너는 곧 깨우치게 될 거야.”
또 한 차례 물으셨다. “피아노 치는 에너지는 어디서부터 솟아 나온다고 생각하느냐?”
“어깨 아닌가요?”
“아니지.”
“온몸에서부터?”
“아니야, 에너지는 숨에서 흘러나온다. 기력도 생명도 숨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숨을 잘 쉬도록 애써야 한다. 두 발은 바닥에 확고하게 자리 잡되 횡격막이 편안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해라. 그러면 얼마 안 가서 알게 될 거야. 긴장이 덜해지고 손놀림이 부드러워져 사실은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는 것을”
이렇듯 반 선생님께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내용은 평생 동안 간직해야 할 가르침이었다. 그분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피아노를 치고 싶은 의욕을, 예술인이 되고 싶은 의욕을 심어주셨다. 그러한 의욕 덕분에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기술적인 어려움, 산을 움직이는 것만큼 어려운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빠르고 또 세게 쳐야 하는 대목은 어려운 대목이다. 우선 천천히 그리고 세게 치기 시작해라. 다음으로는 빨리 그리고 부드럽게 치면서 손에 편안하다고 느낄 때까지 계속하면 드디어 어느 순간 빠르고도 세게 칠 수 있게 된다.”
“선배들이 하는 연주를 자주 듣도록 해.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식으로 치는지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네 생각을 필기해 가면서 말이다.” 나는 선생님의 충고대로 따라 했다.
“네 노트를 읽었다. 연주가가 자기의 소리를, 자기의 존재를, 자기의 참여의식을 지녀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네가 말한 내용 말이다. 너는 마음속 깊이에서부터 네가 좋아하는 것, 네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있구나. 그와 같은 자의식으로부터 너는 앞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야. 시간이 지나면 알게 돼. 넌 성공할거야.”

56~
상상력을 키우는 공부는 선생님이 주력하시는 또 하나의 분야였다. 흔히 시의 이미지를 빌려 설명하시곤 했다. 이를테면 “음표 하나하나는 벨벳 보석 상자 위에 놓인 진주알”이라고, 혹은 또 “음표 하나하나는 동틀 무렵 꽃잎이 머금은 이슬방울”이라고도 하셨다. 선생님은 특히 내가 피아노를 치면서도 끊임없이 어떤 생각, 어떤 이미지, 어떤 이야기, 어떤 느낌을 머릿속에 품기를 바라셨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는 훌륭한 요리사처럼 어떤 양념 얼마를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이 뚜렷해야 한다. 너무 달거나, 너무 짠 음식이 너는 좋으냐?”
“물론 아니죠.”
“양념이 하나도 없는 음식이 좋으냐?”
“천만에요!”
“피아노 연주도 마찬가지다. 양념이 어느 정도 들어가야 하지만 너무 짜거나 너무 달지 않게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네게 적당한 균형을 찾도록…” 그러고는 뭔가 근본적으로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늘 그러하듯이 한순간 입을 다물고 생각하시더니 “균형 잡힌 중도를 찾아야 해.” 하고 얘기를 마치셨다.

204~
1979년 아이작 스턴의 중국 방문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앞으로 중국의 음악학도에게는 외국체류를 보장해줄 만한 어떤 연줄이라도 있으면 외국 유학의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소식이 우리 모두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나는 떠나고 싶었다. 미국으로, 자유의 나라로.
당국은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도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고위 관직 집안의 자제분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외국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젊은 학도들 틈에 끼어서 바라고 바라던 유학 허가를 받게 되었다. 첫 관문은 이렇게 통과하였다.

240~
나는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가브리엘 쵸도스(Gabriel Chodos)교수의 피아노 클래스에 등록하였다.
그분이 그토록 훌륭한 음악교육가요 지도자라는 사실을 나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더욱 깊이 깨닫곤 한다. 그 당시엔 사실 그렇게 무정한 사람은 다시없다 싶을 정도로 한결같이 엄격한 교수법으로 일관하셨다. 자연스럽고 솔직한 반 선생님과는 달리 쵸도스 선생님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쵸도스 선생님과 공부할 때는 하나의 전제조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보에 대한 절대적인 존중이었다.
“작곡자에게 충실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악보를 철저히 들여다보는 것 뿐”이라고 그분은 거듭거듭 말씀하셨다.

악보읽기의 단계가 끝나자 쵸도스 선생님은 음악연주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이라고 여기고 계신 ‘프레이징(phrasing)’(선율의 흐름이 시작하고 끝나는 악절을 뚜렷이 나타내는 연주기법) 그리고 작품과의 일체감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가르쳐주셨다.
“박자를 세면 열 배로 무거워진 음악이 돼버려. 프레이징으로 템포를 나타내도록.”
그리하여 선생님은 하나의 ‘프레이즈’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건반에서 손을 떼어 올리며 연주를 멈추도록 하라고 강하게 명령하시다시피 하셨다.
“숨을 들이 쉴 때와 같은 것이지. 음악 속으로 공기가 들어가도록 해야 돼.”

과연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 다른 어떤 음악보다 바흐의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복합적인 구조에 촘촘한 짜임새로 이어져 있기에 각 ‘프레이즈’의 시작과 마침이 뚜렷할 뿐 아니라 - 마치 위대한 시 낭송에서처럼 비록 듣는 사람들에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흐름인 듯싶지만 - 앞뒤 이음새의 마디마디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비길 데 없는 걸작이기에 그러하였다.

작품과 일체감을 느끼도록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 쵸도스 선생님은 반 선생님과 의견은 같았지만 방식이 달랐다. 연주자는 애초부터 작품 속 깊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그리하여 자아의 범위를 최대한 초월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마음가짐이야말로 음악가가 지녀야 할 가장 위대한 품성이지.”
“뱃속으로부터 에너지를 끌어 올리도록.”
나는 놀라서 선생님께로 얼굴을 돌렸다. 거의 20년 전에 반 선생님이 하신 말씀과 같은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쵸도스 선생님은 다음 단계로 슈만의 ‘다비드 동아리의 춤곡’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 이 두 작품만을 당분간 연습하라고 하셨다. 특히 베토벤의 소나타 한 곡을, 그중에서도 느린 악장을 잘 공부해야 한다고 고집하시며 일종의 경고까지 해주셨다.
“이는 연주자의 능력을 최종적으로 판가름하는 작품이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나 슈베르트의 소나타작품에서 느린 악장들은 어떻게 보면 더 단순하고 더 선율적이고 더 직접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베토벤의 작품은 현대인의 감수성이 다분히 배어 있는 더욱 추상적인 음악, 여러 개의 미세한 단위로 이루어진 음악이라 하겠다. 연주하는 학생이 무엇인가를 말해줄 수 있는지 없는지 판가름해 주는 요소가 바로 이 작품 속에 들어 있지.”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 베토벤 작품의 느린 악장은 지금도 내겐 최종적 시금석이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를 그저 되는대로 지루하게 아무런 의미 없이 텅 빈 소리만 내는 연주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위대한 배우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곡뿐만 아니라 갖가지 성격의 음악을 모두 다 연기할 수 있어야 해. 이제부턴 슈만의 작품을 연습하도록. 다양한 기분의 변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는 작품은 슈만의 ‘다비드 동아리의 춤곡’이다.”

“이 곡을 연주할 때는 안정된 자세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템포의 변화라든가 지나칠 정도로 세게, 혹은 약하게 치는 등, 초보적인 단순효과는 피해야 돼. 안 그랬다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니까. 오직 연주의 손놀림, ‘터치’만으로 다양성을 발휘하도록 노력해. 다양한 ‘터치’를 통해서만 감정이 표현되도록 할 것.”

위대한 연주가요 훌륭한 교육자이신 쵸도스 선생님은 참된 음악가들 모두가 그렇듯 겸손한 분이셨다. 스스로 신성하다고 여기는 음악 앞에서 언제나 겸허한 자세였다. 독주회를 열 때에는 한 주일 전부터 강의를 중단하였다. 독주회 하루 전날이면 먹지도 않고, 피아노에 손대지도 않으며 하루 온종일을 정신집중에 쏟는 것이었다. 연주하기 전에 결혼반지와 시계를 손에서 풀었다. 또한 선생님은 가장 훌륭한 스승들만이 보이는 마음가짐, 즉 자기 자신은 뒤로 물러나고 자기 학생들을 내세워줄 줄 아는 분이셨다.

쵸도스 선생님으로부터 나는 특히 다음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게 되었다. 피아노와 음악에 대한 배움은 다양하게 여러 작품을 두루 섭렵하기보다는 하나의 작품을 끝까지 철저하게 공부함으로써 날로 깊어지는 것이라고. 오래오래 정해진 하나의 주제를 깊이깊이 천착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될 뿐 아니라, 다음 단계로 다른 모든 주제를 연구하게 해줄 방법도 펴나가게 된다는 것, 이는 정녕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가르침이었다.

281~
샤오메이에게

지난 번 너에게 편지 한 번 보낸 이후로는 내 쪽에서 따로 소식을 보내야 하겠다는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너와 엄마 사이에 오가는 편지내용으로 네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 모든 일이 잘 되어 나간다는 소식은 알고 있다.
내가 옛문서에 관해 학식을 좀 쌓은 사람임을 기억해준 한 친구 덕분에 나는 그동안 운 좋게도 티베트 불교의 고대경전 가운데 [대장경]의 편집출판 위원으로 뽑히어 일하게 되었단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경문을 읽어 내려가자마자 나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의 삶이란 그저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했었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온갖 고생으로 시달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치욕을 당해야만 했었다.
한데 이렇게 불경을 읽어내려 감으로써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상생활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욕망이나 돈에 끌려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것, 출세하겠다고, 또 명성을 얻겠다고 아둥바둥 하지 말고 오직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면 비로소 도의 신비에 가까이 다가가며 진리가 보이는 것이다.
진리에 다다르게 되고 안 되고는 각자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네가 선행을 하여 바르게 살아왔다면 진리에 다다르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아직은 고생을 좀 더 해봐야 된다는 뜻이리라 생각하면서, 진리를 찾아서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너를 설득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너도 이 진리를 찾게 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쉽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정말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아다오.

아버지.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그 누구보다 심한 비관주의자이셨던 아버지, 만사를 체념해버리고 의기소침의 낭떠러지 아래 사셨던 아버지였었는데, 얼마나 마음 깊이 내면의 평정에 이르게 되셨으면 스스로 딸에게 알려주어야겠다고 편지까지 쓰게 되었을까? 나 또한 언젠가는 그러한 마음의 평정을 찾게 되지 못하라라는 법이 어디 있으랴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따로 시간을 내어 중국고전 가운데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경서를 읽어나가며 공부하는 동시에 한편으로 깊이 명상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에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아득히 멀리 계신 아버지와의 공감인 듯, 아니 그 이상의 느낌이었다. 한때 내가 마음을 상하게 해드렸던 아버지, 그 아버지와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시에 나도 마음이 조금 더 잔잔해지고 가라앉게 되었다.

285~
생각에 생각을 해나가는 동안 음악작품에 다가가는 나의 접근방식도 모르는 사이에 달라지고 있었다. 한 작품 전체를 분석한 다음 결코 무리하지 않고, 작품의 의미를 대번에 이해하려고 덤비지도 않으면서 규칙적으로 악절 마디마디, 음표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들고 좋게 느껴질 때까지 열심히 연습을 계속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어느 순간부터인지 저절로 자연스럽게 직관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게 되었다.

삶에 있어서나 음악에 있어서나 할 얘기가 많을 때에는 그 많은 얘기를 소리 내어 말할 시간이 충분해야 한다. 악보에 새겨진 그 모든 아름다움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솟아나오도록 해야 한다. 바로 그런 목적으로, 그 아름다움이 들리도록 하기 위하여 작곡가는 작품을 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엔 한계가 있다. 그것은 듣는 이들 편에서 중심이 흐트러져 버릴 위험, 나무들 사이를 헤매느라 숲을 파악하지 못하는 위험인데, 이는 단순히 듣는 이들 생각의 흐름에 비하여 템포가 너무 느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당하고 알맞은 템포란 누구든 편안히 자연스럽게 숨 쉬는 박자이어야 할 뿐 아니라, 머릿속 생각으로 하여금 전체와 세부를 동시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박자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는 절대로 더 이상 피아노와 씨름을 하지 않게 된 것 또한 내가 이즈음에 배우고 익혔던바, 내 명상의 결실이었다. 내가 어떤 처지로 살든, 어떤 기분에 잠겨 있는 피아노는 이제 나의 영원한 벗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서부터 나는 피아노가 가르쳐주는 무한히 풍부한 세계를 더욱 잘 일구어나갈 수 있었으며 내가 추구하고 있던 ‘터치’와 음색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었다.

288~
나는 [노자도덕경]을 읽으며 명상하기를 멈추지 않앗다. 그 깊고 그윽한 진리가 조금씩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비어 있음’의 본질에 대하여 노자만큼 훌륭히 표현해 준 이가 세상에 다시 있을까 싶었다. 특히 제11장을 끊임없이 읽고 또 읽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바퀴통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가운데가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방 안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있음’이 이로운 것은,
‘비어 있음’으로 해서 ‘쓰임’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작품 하나하나에 노자의 가르침이 암시해주는 방식을 적용해 보았다. 언제나 뚜렷이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멈추지 않고 계속해 나갔다. 그때부터 나의 하루일과는 두 번씩 거듭하여 맛보는 즐거운 시간,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순간순간의 율동이었다. 첫번째는 아침마다 갖는 명상의 시간이었고, 두 번째는 나의 ‘피아노 명상’이라고 불러야 적당한 표현이지 싶다. 일을 한다는 것, 아무 목적없이 꾸준히 일한다는 것, 이는 다름이 아니라 중국 철학의 위대한 미덕이 아닌가. 이는 또한 내가 피아노와 더불어 하고자 했던 바로 그 일, 즉 연습하는 일이었다.

당시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정말 아주 힘들게 살았던 고생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실은 나에게 엄청난 혜택을 안겨 주었던 행운의 계절이었다. 서른 살에 이르러 한편으로 경력을 쌓아 나가면서도 홀로 고요히 피아노와 더불어 즐거이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피아니스트가 과연 몇이나 될까? 아무 별다른 목적 없이 홀로 즐거워하는 가운데 어느 날 공개석상에서 연주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작품과 더불어 오직 그 작품의 진리를 찾으려 탐구해 나가던 여유로운 시절이었다. 인생을 사는 동안 일하는 만큼 받을 노동의 대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일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되었다. 피아노와 함게 명상하던 시절 내내 진짜 방청객 앞에서 독주회를 열게 되리라고는, 정말로 레코드 녹음을 하리라고 나는 결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인생에는 이처럼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가장 순수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위가 가장 풍부한 결실을 맺게 되는 일이 없지 않은 것 같다.

299~
빅토르 위고의 편지는 진정한 용기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갖가지 범행을 막아내기 위한 방책으로서 문화와 교육의 역할에 대해서도 암시해주고 있다. 그토록 훌륭한 문필가를 여럿이나 배출한 나라 프랑스는 나를 아주 힘차게 매혹적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드디어 나는 마음을 정했다. 나는 빠리에 있는 친구 샤오친에게 편지했다. 그동안 중국에서 사귀던 프랑스남자와 결혼한 샤오친은 이제 출판에 관계된 일은 그만 두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었다. 남편은 직장 때문에 다시 중국으로 떠났고, 자기는 두 번째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며 나를 위하여 자기 집 문은 활짝 열려있다고 했다.
나는 그리하여 1984년 12월 어느 날 빠리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01~
친구는 여기저기로 수소문하였다. 나는 ‘빠리 음악원’에 입학하기엔 이미 나이가 지나버렸지만 ‘음악사범학교’에는 연령제한이 없으므로 입학이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Marian Rybicki 마리안 리비츠키 선생님이 영어가 통하는 분이라고 하니, 우선 그분을 찾아뵙고 얘기를 나누도록 하라고 강력히 권장 받게 되었다.
당장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저는 중국 출신 피아니스트인데, 미국에서 공부했고 프랑스엔 바로 요 며칠 전에 왔어요. 선생님을 찾아뵙고 한 곡 쳐 보이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어요?”
“물론이죠!”
아주 따뜻하고 열띤 목소리여서 나는 머뭇거림 없이 통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틀 후 선생님 댁으로 가기에 앞서 그분의 레슨비가 얼마인지 알봤더니 한 시간에 400프랑이라고 했다. 당시의 내 형편으로는 상당히 큰 지출이었으므로 나는 한 시간 이상 걸리지 않도록, 한 시간 안에 선생님께 인정받도록 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다.

“좋아요. 자, 그럼, 피아노 솜씨가 어떤지 무척 듣고 싶은데, 무슨 곡을 치려하는지?”
“슈만의 ‘다비드 동아리의 춤곡’이에요.”
나는 손목시계를 풀어서 피아노 위에 놓았다. 템포를 대단히 중히 여기던 쵸도스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의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비드 동아리의 춤곡’은 연주에 대략 37분이 소요되는 작품이었다. 템포를 조금 빠르게 조정한다 하더라고 남은 30분 안에 끝까지 다 연주하기는 불가능했다. 마지막이 되기 전에 손을 놓아야 했다. 시계를 봐 가면서 멈추어야 할 때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이야기는 오늘날에 와서도 선생님께서 자주 웃으며 들려주시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나는 바야흐로 마지막에서 두 번째 곡,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곡을 치고 있었다. 그 순간 어김없이 제한된 30분이 다 끝나버렸다. 아아, 나는 더 이상은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갑자기 연주를 멈추었다.
“무슨 일이오?” 하고 선생님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물으셨다.
“저한테 400프랑밖에 없거든요. 한 시간 이상은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요.”
“맙소사, 정신 나간 사람 같으니라고! 슈만을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만큼 기막힌 연주로 들려주더니만, 한창 좋은 순간에 딱 멈추어 버리다니! 레슨비는 당연히 안 받을테요.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지에 대해 얘기합시다.”

그로부터 이틀이 채 지나기 전에 선생님에게서 약속대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단 이틀 사이에 장학금을 받도록 알선해 주셨고, 쉬프랑가에 위치한 건물의 8층 다락방에 세들어 살도록 얘기해주셨을 뿐 아니라, 일곱 명의 제자들로 하여금 한 사람이 1주일에 하루씩 돌아가며 나에게 각자의 피아노를 빌려주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었다. 정말이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310~
그로부터 몇 달 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리비츠키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온 내용은 나의 폴란드 순회공연이 성사되어 여섯 차례의 공연 날짜가 잡혔다는 것이었다. 드디어 내가 처음으로 순회공연 길에 오르게 된 순간이었다.
나의 첫 연주 장소는 젤라조봐 볼라에 있는 쇼팽의 생가였다. 나는 리비츠키 선생님의 지도 아래 준비했던 ‘마주르카’를 들려주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들이 대거 몰려와서는 아주 호감이 가는 연주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폴란드가 참 좋았다. 폴란드 청중은 음악에 대하여 남다른 감수성을 보여 주었다. 그들은 중국 백성처럼 아직 독재 정권에서 풀려나지 못한 처지였는데도 그랬다. 나는 폴란드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느끼며 그들의 마음속 불만도 함께 나누었다.

324~
삶이란 그런 것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또한 그러하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통하여 나는 비로소 ‘다성(polyphony)’ 음악이, 그 가운데서도 특히 바흐의 작품이 다른 어떤 음악작품보다 감동을 주는 연유를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소리를 동시에 들려주는 다성 음악만이 우리의 다양한 감정을, 이런 저런 모습으로 서로들 부딪치고 대립하는 감정을 ‘동시에’ 여럿이 울리는 소리를 통하여 그렇다고 한 소리가 다른 소리보다 우세하지도 않으면서 골고루 균형있게 표현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체를 열어주면서 또 닫아주는 ‘아리아’의 신비가 있다. 서양음악의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여러 작품 중에서 이렇게 시작과 끝이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나아가 골드베르크 변주곡 만큼 그 본질에 있어서 도교적인 작품이 다시 또 있을까 싶다. 삶의 숨결, 생명의 기운에 의하여 흐르고 나아가는 움직임, 우주적이고도 끝없는 이 움직임에 대하여 ‘되돌아간다는 것은 도의 흐름’이라고 한 노자의 말씀을 어찌 여기에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끝이 시작과 다시 만나긴 하나 다른 모습이 되어 있다.

353~
공연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나는 기분이 너무도 우울해졌다. 견디다 못하여 죠르쥬에게 전화로 공연을 도저히 못하겠다고 알렸다. 그는 당장 그날 저녁 나를 만나러 집에 찾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가 하는 일이 도무지 마음에 차지가 않아요.”
“그래서 공연을 취소하고 싶다면 좋아, 취소하도록 하지. 대타를 구하진 않겠어. 하지만 취소하기 전에 한 가지 꼭 알아 두어야 할 사실이 있어. 샤오메이도 나도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니지. 하지만 샤오메이의 연주는 공연장을 그 어떤 영적인 느낌, 영적 분위기로 가득 채워주는 통에 청중들은 연주가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냥 그대로 앉아 있다는 사실, 이것이야.”
이렇게 얘기해주는 분에게 무슨 대꾸를 할 수 있으랴. 그는 나를 설득할 줄 알았다. 연주가와 청중을 이어주는 연결의 끈을 꿰뚫어 마음에 와 닿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공연을 취소하지 않았다.

382~
참다운 지혜는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를 깨닫기 위해서는 때로 뼈아픈 노력과 단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나는 언제나 외부세력에 의하여 조종되었으며 남들이 나를 두고 하는 말이나 의견, 남들이 나에게 행사해온 갖가지 압력에 짓눌린 자의식만 가졌었다. 지금도 잊어버리기가 힘들어 여전히 생각 속에 떠오르곤 하는 자기비판과 고발집회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참다운 나 자신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참된 슬기로움의 소유자에게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실 아무 것도 아니다. 진정한 힘은 그의 내부에 있다.

이를 가장 훌륭히 표현해주는 음악작품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작품 111번’이라고 생각된다.

393~
나는 중국의 전통사상이 내게 알맞은 믿음인 것 같다. 나는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기보다는 홀로 고요한 가운데 나 자신을 마주 보고 싶기도 하고, 나에게 종교는 타인과 나누어 갖기엔 너무 개인적인 세계가 아닐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 한편, 나의 삶이 위대한 그리스도교인이었던 바흐의 작품과 긴밀하게  맺어져 있다는 것, 내게 주어진 시간을 밤낮없이 바흐의 음악에 쏟아 부으며 살았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바흐는 속세를 떠난 은자의 삶을 살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많은 이들로부터 이런 저런 청원을 받으며, 사람들이 음악을 통하여 참된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게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처럼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려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다. ‘눈 있는 자’라면 진리를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진리의 한 몫, 자기 나름의 몫을 지니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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