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싱가포르 여행기, 2009

이춘아 2019. 8. 5. 17:27

중도일보 2009.11.11 [수요광장]

 
만들어진 문화, 만들어가는 문화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대전=중도일보] 싱가포르에서 이 글을 씁니다. 싱가포르 항공 스튜어디스들의 복장을 보는 순간, 싱가포르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예전에 보았던 `타임'지의 싱가포르항공에서 출발되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싱가포르 하면 스튜어디스들의 온화한 미소가 먼저 떠오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항공기 안에 들어서자 남녀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인의 모습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한 개인 또는 국가의 이미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여행은 자신의 빈약한 정보를 바꾸어주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이틀간 싱가포르를 구경하면서 이게 뭐야, 바로 지금 우리나라가 꿈꾸는 이상향이 싱가포르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이행은 늘 우리의 시대적 과제였고 목표였습니다. 그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왔던 세대에게 이상향은 늘 손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우리의 이상향이 싱가포르 정도라니 바로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몸살을 앓으며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이란 소득 2만달러를 좀 더 끌어올리려는 안간힘, 전 국민의 영어교육 투자 그리하여 교육이민에 의한 가족해체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주노동자, 이주여성들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며 국가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설정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아열대 대비책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국가정책들이 문자화되곤 하였습니다만, 그것이 구체화되면 어떠한 모습을 갖출 것인지는 개인의 상상력에 달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 단 며칠간의 여행으로 우리나라가 현재 정책적으로 추구하는 모습이 싱가포르 그 이상 이하도 아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고온다습한 아열대 기후, 동양사람들인데 전 국민이 영어를 사용하고 있고, 깨끗한 이미지의 국제관광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각국 인종들의 전시장같은 다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사회였습니다. 

싱가포르 첫 구경은 국립도서관이었습니다. 도심 한복판에 지하3층 지상8층의 현대식 빌딩인 도서관은 그 자체가 관광코스라 해도 좋을 정도로 최신형 도서관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아시아문명박물관입니다. 문자로만 익혀왔던 동남아시아를 처음으로 가까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속의 인도, 캄보디아,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에 대한 이미지, 이후 서구 열강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동시에 겪었던 나라들, 그 사이에 싱가포르는 내부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우리나라가 닮고자하는 여러 가지 모델적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 박물관을 둘러보았습니다만 알 수 없는 단어의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페라나칸 박물관(Peranakan Museum)입니다. 혼혈인종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이 박물관은 중국계 혼혈인종의 모습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관혼상제와 의식주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 박물관을 본 다음날 싱가포르에서 버스로 3시간 걸리는 말레이시아의 말레카라는 곳을 갔습니다. 2008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역인데 이슬람 지역내에 중국인이 뿌리내리면서 자리 잡았던 종교적 흔적과 건축양식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다리 하나를 놓고 출입국 수속을 밟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물밀듯이 오가는 인파와 버스는 형식적이지만 국가적인 통과의례를 거치는 곳이었습니다만 이들이 오고가며 만들어가는 복합적인 문화는 앞으로 어떤 형태를 만들어가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남겨질지 모를 일입니다. 길거리를 나부끼는 2009 APEC 개최지가 싱가포르임을 보여주는 플래카드가 새삼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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