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 2 (2011년 9월9일자)
매혹된 시간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그렇게 많은 단어들의 조합들 속에 살고 있지만 내 삶의 한 끄트머리를 이어주는 단어들은 열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문화적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 단어를 들었을 당시 그 단어하나로 내 삶을 종지부 지을 것처럼 매달렸다. 책, 음악, 미술, 연극, 건축, 문화재 등의 강의와 함께 책을 읽고, 공연장 전시장 유적지 등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보고 들었던 것들의 총합이 다가 오는 듯 했다.
잡힐 듯한 실체는 있었으나 뭔가 가로막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습관처럼 굳어져있는 모든 것들을 학습하려는 태도였다. 음악은 도레미파솔라 가르치는대로 배웠으되 그것들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소리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 아름다운 소리를 만든 작곡가들의 이름과 작품이름을 외웠으나, 그가 왜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했다. 조잡한 컬러인쇄물 속의 그림을 보며 인상파작가들과 작품 이름을 외워 시험을 봤다.
교과서에서 본 그림을 중년이 되어 현물로 보았을 때 그 아름다운 색감은 지금도 전율이 오를 정도이다. 영어를 제대로 들어보지도 못하고, 알파벳부터 사전의 발음기호로 배워 영어시험을 보았던 우리는 천재들이었다. 수없이 넘겼던 습자지형태의 사전의 감촉과 손때만이 영어실력이었다. 제대로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 학습된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부조화처럼 그렇게 예술적 장르를 접해왔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하였다. 거짓말이었다. 시험 보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일벌레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개발도상국을 넘어섰다. 개발도상국을 넘어선 우리에게 부닥친 국가적인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 한이 맺힌 부모세대들이 아이들에게 온갖 미디어 매체물을 사들였고, 영어권 교사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영어권 나라로 아이들을 보냈다. 물론 영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제는 창의시대, 온갖 체험에 아이들이 휘둘리고 있다.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을 보내긴 하는데, 왜 가야하는지는 없다. 위대한 예술가들이 만들었던 작품 속에서 자신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할텐데 떠밀리며 짜증나는 핸드마이크 소리의 학습된 해설을 듣고 있다.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시간, 그 매혹된 시간 속에서 나만의 감성이 만들어지는 시간이 더 소중한 때이다. 그 감성만이 창의성으로 이어주는 실마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