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낭독 딸기의 선물

이춘아 2020. 4. 25. 05:38

 

 

2020.4.25(토)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옮김, 2019, 에이도스

 

.....지은이 로빈 월 키머러: 식물생태학자, 작가이자 뉴욕주립대학교 환경생물학과의 저명 강의교수이며 시티즌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성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족 출신으로 자신을 키운 것을 ‘딸기’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미국 역사에서 지워진 인디언 부족의 전통과 토착적 지식을 되살려내 과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인간과 대지의 조각나고 부서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한다.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식물학을 공부했으며,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책 [이끼를 모으다]로 빼어난 자연문학에 주는 존 버로스 메달을 수상했다. 뉴욕 시러큐스에 살고 있으며, 원주민.환경연구소를 창립하여 소장을 맡고 있다. 

 

 

“딸기의 선물”

 

어떤 면에서 나는 딸기가 키웠다. 아니, 딸기밭이라고 해야 하려나. 내게 세상에 대한 감각을, 세상 속에 나의 자리를 선사한 것은 여름내 아침마다 이슬 맺힌 잎 아래에 열린 야생 딸기였다. 우리 집 뒤쪽에는 돌벽으로 구획된 옛 건초밭이 있었는데, 경작하지 않은지 오래됐지만 아직 숲으로 바뀌지는 않았었다. 통학 버스가 털털거리며 언덕 위로 올라오면 나는 빨간색 격자무늬 책가방을 내던지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엄마가 심부름거리를 생각해내기 전에 개울을 폴짝폴짝 건너 미역취 사이를 헤매고 다녔다. 우리 머릿속 지도에는 애들에게 필요한 지형이 모두 들어 있었다. 옻나무 아래의 요새, 돌무더기, 강, 가지가 하도 일정하게 뻗어 있어서 사다리처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커다란 소나무, 그리고 딸기밭까지. 

 

딸기가 익으면 모양보다 냄새로 먼저 알 수 있다. 딸기 향은 축축한 땅 위에서 햇볕 냄새와 섞인다. 6월 끝자락, 마지막 등교일이었다. 자유를 얻는 날이자 오데미니기지스, 즉 딸기의 달이었다. 나는 좋아하는 장소에 엎드려 딸기가 잎 밑에서 점점 커지고 달콤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그만 야생 딸기는 고작 빗방울만 하며 잎 모자 아래로 씨앗이 쏙쏙 박혀 있다. 나는 그 시점에서 가장 빨간 것만 딸 수 있었다. 분홍색은 내일을 위해 남겨두었다. 

 

딸기의 달을 쉰 번 겪은 지금도 야생 딸기밭을 보면 경이로움을 느낀다. 온통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감싼 뜻밖의 선물이 베푸는 너그러움과 다정함에 겸손과 감사를 느끼는 것이다. 

 

“정말이야? 나를 위해서? 내게 그런 자격이 있을까.”

 

50년이 지났는데도 딸기의 너그러움에 어떻게 보답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한다. 가끔은 바보 같은 질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답은 간단하니까. 먹어.

 

하지만 다른 누군가도 같은 궁금증을 품었음을 안다. 우리의 창조 이야기에서는 딸기의 기원이 중요하다. 하늘여인이 하늘세상에서 태내에 품고 내려온 아름다운 딸은 선한 초록 대지에서 모든 존재들과 사랑하고 사랑받으면서 자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쌍둥이 플린트와 새플링을 낳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늘여인은 사랑하는 딸을 찢어지는 가슴으로 땅에 묻었다. 마지막 선물들, 우리가 가장 아끼는 식물들이 딸의 몸에서 자라났다. 딸기는 그녀의 심장에서 올라왔다. 포타와토미어에서는 딸기를 오데 민, 즉 심장 베리라고 한다. 우리는 딸기를 베리의 지도자요 최초의 열매 맺는 식물로 여긴다. 

 

‘선물이 발치에 한가득 뿌려져 있는 세상’이라는 나의 세계관을 처음 빚어낸 것은 딸기였다. 선물은 나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짜로 온다. 내가 손짓하지 않았는데도 내게로 온다. 선물은 보상이 아니다. 우리는 선물을 제 힘으로 얻을 수 없으며 자신의 것이라고 부를 수 없다. 선물을 받을 자격조차 없다. 그런데도 선물은 내게 찾아 온다. 우리가 할 일은 눈을 뜨고 그 자리에 있는 것뿐이다. 선물은 겸손과 신비의 영역에, 우연한 선행으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선물이 어디서 오는지 알지 못한다. 

 

어릴 적 들판은 우리에게 딸기, 나무딸기, 검은딸기, 가을의 피칸, 그리고 우리 엄마가 받은 들꽃 꽃다발을 아낌없이 베풀었으며 일요일 오후 우리 가족의 산책길이 되어주었다. 들판은 우리의 놀이터, 은신처, 야생 보호구역, 생태학 교실, 돌벽에 세운 깡통 맞히는 법을 배운 장소였다. 모든 것이 공짜였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대지가 주는 선물, 또는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선물은 특별한 관계를 확립한다. 이것은 주고받고 보답하는 일종의 의무다. 우리는 딸기에게 보답하려고 노력했다. 딸기철이 지나면 딸기는 빨갛고 가느다란 덩굴을 뻗어 번식한다. 뿌리 내릴 좋은 장소를 찾아 딸기 덩굴이 땅 위를 기어다니는 광경에 매혹된 나는 덩굴이 닿는 곳의 잡풀을 뽑아 작은 맨땅을 만들어주었다. 덩굴에서는 어김없이 작고 귀여운 뿌리가 돋아났으며 계절의 끝 무렵에는 더 많은 줄기가 생겨났다. 이듬해 딸기의 달에 꽃을 피울 채비가 끝났다. 이것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다. 딸기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딸기는 우리에게 선물을, 우리 사이에 열린 지속적 관계를 베풀었으므로. 

 

주변 농부들은 딸기를 많이 재배했으며 아이들을 고용하여 딸기 뽑는 일을 시킬 때도 많았다. 나는 형제 자매들과 자전거를 타고 멀리 크랜들 농장까지 가서 딸기 따는 일로 용돈을 벌었다. 한 되당 20센트를 받았다. 하지만 크랜들 아주머니는 우리를 깐깐하게 감시했다.앞치마를 두른 채 딸기밭 가에 서서 딸기 따는 법을 지시하고 하나도 으깨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규칙은 또 있었다.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딸기는 내 것이야. 너희 것이 아니라고. 네 녀석들이 내 딸기를 먹는 꼴은 못 본다.” 나는 그 차이를 알았다. 우리 집 뒤의 들판에 있는 딸기는 딸기 자신의 소유였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길가의 가판대를 놓고 딸기를 한 되당 1달러20센트에 팔았다. 

 

우리는 경제학 공부를 단단히 했다. 딸기를 자전거 바구니에 싣고 집에 가져가려면 임금의 대부분을 써야 했다. 물론 우리 야생 딸기보다 열 배는 컸지만 맛은 그만 못했다. 그 농장 딸기를 아빠 쇼트케이크에 넣은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선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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