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낭독 "콩을 보며 깨닫다"

이춘아 2020. 4. 26. 05:57

 

 

 

2020.4.26(일)

 

로빈 월 키머러, [향모를 땋으며], 노승영 옮김, 2019, 에이도스

 

ㆍ ㆍ (지은이) 로빈 월 키머러: 식물생태학자, 작가이자 뉴욕주립대학교 환경생물학과의 저명 강의교수이며 시티즌 포타와토미 네이션의 성원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족 출신으로 자신을 키운 것을 ‘딸기’라고 말한다. 지은이는 미국 역사에서 지워진 인디언 부족의 전통과 토착적 지식을 되살려내 과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인간과 대지의 조각나고 부서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은 어떤 것인지를 모색한다.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식물학을 공부했으며,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첫 책 [이끼를 모으다]로 빼어난 자연문학에 주는 존 버로스 메달을 수상했다. 뉴욕 시러큐스에 살고 있으며, 원주민환경연구소를 창립하여 소장을 맡고 있다.

 

 

“콩을 보며 깨닫다”

 

텃밭을 둘러보니 이 아름다운 나무딸기, 호박, 바질, 감자, 아스파라거스, 상추, 케일과 비트, 브로콜리, 후추, 방울다다기, 당근, 딜(서양자초), 양파, 리크, 시금치를 우리에게 주면서 땅이 느꼈을 기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린 딸에게 “엄마 얼마나 사랑해?”라고 물었을 때 팔을 활짝 벌리고 “이이이이이만큼”이라고 대답한 일이 떠올랐다. 이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농사일을 가르친 진짜 이유다. 내가 떠난 뒤에도 아이들을 사랑해줄 엄마가 영원히 함께 있도록 

 

콩을 보며 깨닫는다. 땅과 우리의 관계, 어떻게 우리가 이 많은 것을 받는지, 보답으로 무엇을 돌려줄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한다. 호혜성과 책임의 방정식, 생태계와 지속가능한 관계를 맺는 이유와 목적을 곰곰이 따져본다. 오로지 두뇌 속에서. 하지만 문득 설명과 합리화가 모두 사라졌다. 엄마의 사랑으로 가득한 바구니의 순수한 감각만 남았다. 궁극적 호혜성,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내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계량화를 아무리 중시하는 사회심리학자라도 아래와 같은 사랑의 행위 목록에 트집을 잡지는 못할 것이다. 

 

*  건강과 행복의 증진

*  위해로부터의 보호

*. 개체로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북돋우기

*. 함께하고 싶은 욕망

*. 자원의 너그러운 공유

*. 공동의 목표를 위한 공동 노력

*. 공유된 가치의 찬양

*. 상호 의존

*. 상대방을 위한 희생

*. 아름다움의 창조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행위가 관찰되면 우리는 “그녀는 그 사람을 사랑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과 공들여 가꾸는 땅 사이에서 이런 행위가 관찰될 때에도 “그녀는 그 텃밭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목록을 보면서 텃밭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식물과 사람 사이의 교환은 둘의 진화사를 빚었다. 논밭, 과수원, 포도원에서는 우리가 길들인 종이 자란다. 그 결실이 입맛에 맞기에 우리는 식물을 대신하여 땅을 갈고 가지치기를 하고 관개를 하고 비료를 주고 김을 맨다. 어쩌면 식물이 우리를 길들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야생 식물은 반듯하게 서도록 달라졌고 야생 인간은 들판 옆에 정착하여 식물을 돌보도록 달라졌다. 이것은 일종의 상호 길들이기다. 

 

자신이 대지를 사랑함을 알면 사람이 달라진다. 대지를 지키고 보호하고 찬미하게 된다. 하지만 대지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면 그 느낌은 관계를 일방통행로에서 거룩한 인연으로 탈바꿈시킨다. 

 

우리 딸 린든이 가꾸는 텃밭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린든은 메마른 산흙에서 온갖 좋은 것들을 길러낸다. 토마티요(아메리카에서 서식하는 가짓과 작물)와 고추처럼 내가 엄두도 못내는 작물들이다. 린든은 두엄을 만들고 꽃을 피워내지만, 가장 좋은 것은 식물이 아니다. 그것은 김매기를 할 때 수다 떨러 오라고 내게 전화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물을 주고 김을 매고 수확한다. 지금은 5천킬로미터 떨어져 사는데도, 나는 마치 린든이 아이였을 때처럼 기꺼이 찾아간다. 린든은 엄청나게 바쁘다. 나는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농사일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 

 

린든은 식량을 얻기 위해서라고, 땀을 흘려 이토록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보람 때문이라고, 손으로 흙을 만지면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내가 묻는다. “텃밭을 사랑하니?” 답은 이미 알고 있지만, 하지만 그런 다음 망설이며 이렇게 묻는다. “텃밭도 널 사랑한다는 느낌이 드니?” 린든은 잠시 머뭇거린다. 이런 문제는 재까닥재까닥 대답하는 법이 없다. 린든이 입을 연다. “확신해요. 제 텃밭은 엄마처럼 저를 보살펴줘요.” 

죽어도 여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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