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낭독 "예술이다, 예술"

이춘아 2020. 4. 18. 05:39

 

2020년 4월 18일(토)

 

 

김용택,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2014, 위즈덤하우스

 

“예술이다, 예술”

 

아내가 밥상을 차리기 위해 반찬을 그릇에 담아 놓으면 나는 그 반찬들을 가져다가 상에 차려 놓는다. 어쩔 때는 밥을 푸는데 밥솥을 열 때 김이 확 솟아오르는 밥통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하얀 김이 확 솟아나는 것도 좋지만 김이 걷힌 후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즐겁다. 김이 솟아나면 밥 밖으로 나와 있던 물기가 스며드는 피시시하는 소리도 듣기 좋고 하얀 밥 티들이 이리저리 누워 있는 모습은 실로 눈부시다. 물을 좋아해서 물에서 자란 쌀이 불과 물을 만나 밥이 되는 그 신비함이라니. 지금 밥통은 어쩐 일인지 밥에 구멍이 송송송 뚫리지 않는다. 하지만 시골에서 가마솥에 밥을 하면 밥솥을 여는 순간 밥에 송송송 까만 구멍이 뚫려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일은 늘 즐거웠다.

 

아무튼 주걱으로 밥을 뒤적여 흰 쌀밥을 밥그릇에 퍼 담을 때 밥그릇에 담긴 밥을 보면 그 또한 아름답고 신비롭다. 흰 그릇에 담긴 흰 쌀밥을 밥상에 올리고 가만히 보면 이렇게 밥이 되기까지의 여정이 생각난다. 하얀 쌀밥 속에 푸른 완두콩이라도 드문드문 섞여 있으면 “우와!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밥뿐이 아니다. 하얀 접시에 가지런히 썰어 살며시 얹어 놓은 김치는 또 어떤가. 콩나물국, 상추 속에 가만히 놓여 있는 풋고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된장국, 가닥 채 넣고 끓인 김치찌개, 나란히 놓인 젓가락과 수저, 밥상위에 차려진 모든 반찬과 밥을 한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렇게 사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그림이나 사진이 없을 것 같고, 마음을 풍요롭고도 아름답게 해주는 이만한 산문과 시 한 편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저녁밥을 위해 아내를 따라 시장에 갈 때가 있다. 나는 재래시장 가는 것을 좋아한다. 재래시장 가게 주인들은 대개 나이 드신 분들이다. 아내는 늘 시장의 물건 값이 싸다고 한다.  아내는 물건을 사고팔 때 그 판을 즐겁고 재미있고 신나게 살려내는 신명을 가지고 있다. 상점 할머니들은 늘 더 주려고 하고 아내는 늘 적게 받으려고 한다. 그 실랑이의 몸짓, 손짓, 얼굴 표정, 마음 씀씀이를 읽는 게 나는 좋다. 이런저런 반찬거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걷는 발걸음은 늘 즐겁다. 때로는 시장 모퉁이에 있는 오뎅 집에서 오뎅을 사먹다가 그곳에서 만든 꿀빵을 사 먹는 바람에 저녁을 그냥 대신할 때도 있다. 그 일도 아내와 나의 하루를 홀가분하게 해주는 일이어서 하루가 가뿐할 때가 있다. 재래시장은 내게 늘 큰 그림이다. 나는 늘 그 그림 속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사온 반찬거리로 반찬을 만들고 밥을 하는 아내는 늘 신바람이다. 부엌을 오가는 몸짓이 늘 가뿐해보인다. 어쩔 때는 흥얼거리는 콧소리가 들린다. 밥하는 게 즐거운가 보다. 아니 분명 즐거워한다. 밥하는 일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다. 아니, 밥 짓는 일을 스스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하얀 쌀이 밥이 되고, 푸른 배추가 국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할머니들에게 신나게 재미있게 사온 콩나물 한 주먹이 콩나물 무침이 되어 접시 위에 차려진 그 모양이 예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밥하는 일과 시 쓰는 일이 뭐가 다른가. 밥하는 일이 그림 그리는 일과 무슨 차이가 나는가.

 

예술은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생명력이다. 밥 한 알 놓여 있는 모양에서 전 우주의 이치와 질서, 그리고 그 엄연한 존재들의 팽팽한 기운과 긴장, 존재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읽는다.

 

하루 삼시 세끼 밥상은 장엄하다. 밥은 사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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