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소통의 유혹, 카페’

이춘아 2020. 11. 22. 00:09

장수한, [깊고 진한 커피 이야기], 자음과모음, 2012.

‘소통의 유혹, 카페’


카페는 커피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공간이지요. 게다가 카페는 그 시대의 음악이나 미술을 담는 그릇이고요. 그러나 카페는 다른 무엇보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욕망, 그 소통의 유혹이 만든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커피는 공적 부문이 아니라 사적 부문에 침투해 사적인 음료로 기능했습니다. 사적인 대화는 기존의 가치관이나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잖아요? 또 지배집단을 옹호할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카페는 커피를 소비하는 공간이면서 나아가 사적인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상이나 철학, 정치 담론을 생산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유럽에서 카페는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을 만들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습니다. 

이번 장에서는 주제를 확대하여 유럽의 카페들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였고, 그것을 통해 어떤 새로운 문화를 발전시켜왔는지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시인인 예이츠의 시로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생애 쉰 번째 해를 맞이했고 또 그 해를 보냈다
나는 외톨이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로 가득 찬 런던의 한 카페에
대리석 탁자 위에
책이 펼쳐져 있고 빈 커피 잔이 놓여 있었다
무심코 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이십여 분 후
커다란 기쁨이 밀려왔고
내가 축복받은 듯하고 축복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이츠의 ‘출렁이는 마음’이란 시의 일부입니다. 시인의 흔들리는 마음은 혼자서 마시는 커피 한잔으로 진정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예이츠와 마찬가지로 가끔씩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십니다. 일상생활을 멈추고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것. 이것을 이탈리아 사람들은 달콤한 무위라고 말합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심으로써 우리는 일상생활로부터 잠시 일탈할 수 있습니다.  그 일탈을 통해서 여유를 느끼게 되죠. 그리고 또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는 모습을 즐기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카페에 가서 예이츠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과 소통하려는 욕구! 바로 소통의 유혹이 수세기 동안 카페를 지탱하게 한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카페라는 곳이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1645년경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에 유럽 최초의 카페가 생겼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그 카페를 매음과 도박의 온상으로 지목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러 카페들이 들어섰고, 이용객 수는 점차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자 카페에 대한 나쁜 인상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누구나 카페에 드나들게 되었습니다. 1674년에 런던에서 발간된 팸플릿 중에 <커피하우스의 규율과 질서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고상한 귀족이나 사업하는 부르주아 층이나 누구든 환영합니다. 그러나 누구든 높은 신분의 사람이 들어 왔다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자리를 권해서는 안 됩니다. 

말하자면 카페는 특정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평등한 관계에서 사람들이 만나는 곳이었죠. 그동안 유럽에는 이렇게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는 공간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예배를 드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성스러워야 했고, 관청은 왠지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카페에 가면 이렇게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 아주 자유로웠죠. 카페가 사적인 대화의 공간으로서 유럽문화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