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로컬 식량 경제

이춘아 2020. 11. 29. 06:25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로컬의 미래](최요한 옮김), 남해의봄날, 2018

‘농업을 중심으로 한 로컬 식량 경제의 재건 방안’


Q: 땅에 기반한 경제 재건을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경제 문제의 해법을 농업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농업을 중심으로 한 로컬 식량 경제의 재건 방안에 대해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 주십시오. 

A: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산업화 때문에 생태계와 우리 사회에 발생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 경제의 기본 원칙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우선 농업이 가장 중요한 부문인데 경제 정책이 농업을 좌우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생산하는 것 중에 모든 사람이 날마다 필요로 하는 것은 식량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이들이 농사를 하찮고 지엽적인 문제로 취급합니다. 

미국의 경우, 농업 인구가 뿌리 뽑힌 건 남반구에서 일어나는 극적이고 뚜렷한 현상인데 그 지역의 인종 마찰, 근본주의, 급진주의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남반구의 농촌 지역은 글로벌 경제 세력에 의해 텅 비어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고, 소규모 가족농은 사면초가입니다. 재료와 장비를 파는 농기업은 비용을 더 내라고 요구하고, 생산물을 사는 구매자는 가격을 더 낮추라고 요구합니다. 그들은 보조금을 많이 받는 수출 위주의 농기업과 경쟁할 수 없고, 농민의 지속적인 폐업으로 지역 사회와 로컬 경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도 부족하고, 농촌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농촌을 떠납니다. 라다크에서처럼 도시 생활이 매력적이고 활동적이라는 미디어와 광고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도 심장부라고 부르는 지역은 극우 권위주의 운동의 온상지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로컬 지향의 아젠다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로컬 푸드 혹은 자연 자원 등이 부유한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엘리트주의라는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기농 식품이나 친환경 건자재, 대체 의학 등 건강한 대안들의 가격이 높은 것 역시 기업 생산의 외부 비용과 정부 보조금이 만든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글로벌 기업들은 이런 메시지를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그들은 글로벌 식량 체계의 비용이 얼마나 들든, 늘어나는 인구가 굶지 않으려면 화학 집약적이고 에너지 집약적 단일 품종 재배와 유전자 조작, 그리고 세계 무역 외에는 길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다각도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대규모 단일  품종 재배보다 작은 농장들이 토지, 물, 에너지 단위당 생산성이 더 높다는 사실입니다. 단일 품종 재배를 지향하는 산업형 농업은 단위노동 생산성에만 효율적이고, 수백만 노동자를 착취해서 소수가 이익을 보는 데 더없이 효과적일 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식량 대부분이 경제 면적 5에이커 미만의 소농들이 생산하다는 사실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규모 농사를 단일 품종 재배로 대체한다는 것은 수억 명의 생계가 파고되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도시 빈민가의 진짜 가난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중 상당수가 실망하고 분노하여 극단론자가 되는 것이고요. 

글로벌 식량 체계의 문제점으로 중복 무역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앞에서 기술했듯이 영국은 한 해에 우유, 빵, 돼지고기를 각각 10만 톤 넘게 수출하면서 거의 똑같은 양을 수입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쇠고기는 거의 100만톤을, 감자와 설탕과 카피는 수십만 톤을 수입하고 수출합니다. 

말 그대로 똑같은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하기도 합니다. 산업농과 무역을 기반으로 한 식량 체계는 인류에게 지속가능하게 식량을 공급할 수 없습니다. 지금 생산하는 식량으로도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데 기업이 식량을 단단히 통제하기 때문에 수억 명이 영양 부족에 허덕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공급망이 길고 표면에 흠이 생겨 기업이 버리는 음식의 양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음식은 영양 부족에 허덕이는 지구촌 사람들에게 필요한 양의 4배나 됩니다. 

농촌을 살리고 로컬 식량운동을 지원하려면 로컬 인프라 확충에 보조금을 써야 합니다. 로컬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 라인도 필요하고, 다품종 재배를 하는 소규모 농장에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그러한 정책 변화가 생기면 일자리가 풍부한 지역 기반의 생태적 로컬 경제 체제가 놀랄 만큼 빠르게 성장할 것이고, 전 세계의 저소득 계층이 로컬 경제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화석 연료 보조금을 줄이고, 공해를 일으키는 산업에 세금을 더 많이 부과하면 자원 집약적인 경제 체제에 숨은 각종 비용이 내부화될 것이고, 시장 가격은 실제 자원과 공해 비용에 맞게 재조정될 겁니다. 그러면 로컬 상품들의 가격이 더 낮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구매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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