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말하건대, 이 글 속에 나타난 것들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 추억과 그 잔상들이다. 진실이 무어냐고 묻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같은 현상이 가족 내 위치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각색되고 인식되는지를 잘 아실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나에겐 좋은 외할머니이지만 외할머니의 친손녀들에게는 자기 어머니를 힘들게 한 할머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나의 외사촌들이 나에게 할머니 흉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인즉 그렇게 서로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도 나에겐 안타깝고 사랑해드려야 되는 분이었지만, 며느리인 올케들에겐 어떤 사람으로 인지되고, 또 각인되었는지는 …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엄마는 그녀들에게는 좀 까다로운 분이셨을 것 같다. 깨끗하고 모든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반듯하게 놓는 분이셨고, 계산도 정확한 분이셨고, 또 항상 편찮으셨으니… 그래서 나의 친인척들이 이 글을 읽을 때에는, 이 글들이 손녀이면서 딸, 그리고 엄마이면서 할머니인 ‘기숙’의 입장에서 본 생각과 느낌에 불과하다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개인별로 경험이 세월 속에서 익어가면서, 어떤 부분은 재해석되거나 각색되어 또 다른 기억으로 뿌리박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글을 다 쓰고 보니 아름다운 추억들만 되새김한 것 같다. 사실 나는 고통스러운 것은 피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은 그냥 덮어버린다. 정 피할 수 없다면 나는 그 ‘고통’을 내가 감수해야 되는 ‘책임’으로 바꾸어버린다. 나는 비교적 순탄한 성장기를 거쳤고, 무난한 성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아름답게 그 추억들을 그리고 싶었다. 나의 손녀도 어른이 되어서 자기 윗세대의 어른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한다.
가족 속에는 그 가족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그 줄거리를 어느 지점에서 펼치게 되면, 각기 다른 자기의 처지에서 인과관계가 생성되고 해석되기 때문에, 우리는 세대를 통해 내려온 가족 갈등 따위는 묻어버리는 지혜를 필요로 한다. 친선의 규칙이라 할까? 친선 게임에서는 이기는 자도 진 자도 없다. 친선의 게임에는 예의가 있고 우정이 있다. 가족은 원래 대단히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공동집단이지만, 갈등이 나타나게 되면 이 집단은 각각의 이익을 계산하는 이익집단으로 변모한다. 혈연과 사랑을 매개로 하는 가족 역시 이기적 인간들의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울고불고 하지만, 세월이 지나 그 사실들을 되새김질해보면, 승자도 패자도 없이 상처만 있을 뿐임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덮고가는 여유가 필요한데, 어느 날 그 상처들이 아름답게 추억으로 투사될 때, 그게 바로 여유이고, 그때가 바로 ‘내가 늙었다는 지점’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안 만나도, 가족이었다면 그 마음이 헤아려지고, 그의 행복을 빈다.
여성들은 양육과 살림이란 생활 기능 중심으로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기 쉽고, 그래서 일상이 공유되면서 정이 생기고, 마음이 주어지고, 드디어 추억이 공유된다. 일상의 모계 가족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성들은 ‘직장과 일’ 중심으로 청 장년기를 보내기 때무에, 이 모든 가족 간의 상호작용에서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소외되기 쉽고, 대체로 친밀한 관계선 상에 위치 되지 못하는 취약한 특성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친가와 처가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도 자신 있게 서지 못하는 가족시스템의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그런 모호한 상태에서 좋은 부부라는 공범이 있다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렇지도 못하다면 외롭기 짝이 없는 인생 후반이 예측된다.
바란건대, 남성들도 좌우 혹은 아래위로 그들끼리의 우정을 유지하는 데 좀 노력을 하면 좋겠다. 아버지, 아들, 손자로 이어지는 그 관계선이 돈독해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밥도 같이 먹고, 목욕도 같이 하고, 벌초도, 쇼핑도, 운동도 함께하는, 즉 공간과 시간의 수평적 공유성이 높아야 한다. 수직적 공유성 - 제사나 가족의례에서 나타나는 그 수직적 관계선 -은 존경과 높은 헌신이 전제되지 않으면, 역으로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은퇴 후, 남성들이 돌아올 자리는 가족이기 때문에, 그래도 동질성이 높은 동성 간의 우정 쌓기가 준비되어야 한다고 본다. 아버지와 아들이 대화가 되고 높은 우정지수를 가지고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이 관계가 동맹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 다른 지점에 어머니나 다른 여형제가 배제되어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가족은 이렇게 복잡하고, 추억의 박물관이기는커녕 쳐다보기도 만나기도 두려운 존재로 남는다. 그렇게 되면 일상의 행복은 증발되고, 나의 인생은 황폐해진다. 내가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느낌에 허무해진다. 유일하게 내게 마지막까지 남겨져 있는 것은 가족,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가족과의 추억’이라도 찾아서 보듬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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