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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물단지 처럼 노려보던 더덕을 까며 생각했다. 까기 직전의 모습, 까고 난 후의 모습이 무척 다르다. 천덕꾸러기에서 씻겨놓으니 뽀얀 속살의 아이같다. 그거 보는 재미로 끝까지 까게 됐다.
명절에 동서들을 만나 일하면서 생각했다. 동서들은 시댁에 들어서자 마자 할 일들을 척척해냈다. 30년 이상 결혼생활 했지만 왜 난 맨날 초보주부같을까. 동서들이 만든 음식 먹으며 물어본다. 이건 어떻게 했지? 형님 그냥 여기 오실때 드세요. 아마도 그동안 같은말을 여러번 물었나보다. 집에가서 나도 해봐야지 하고는 다음 명절이 돌아오면 한번도 하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도라지 사는데 더덕 싸게 줄테니 해서 덥석 사온 5천원어치 더덕을 까면서 더덕을 처음 까보았음을 알았다.
도사님의 제자로 들어가면 장작 패고 불때는 일 3년을 해야한다. 요리사 입문도 마찬가지 콩나물 다듬고 무 썰고 3년.
더덕 까기처럼 지루한 작업의 반복이 기본이다. 이를 통해 물리를 깨우친 후에야 기술이 들어가는 것. 주부 30년이라지만 나는 이런 기본기 없이 살았으니 늘 만년초보 같았으리라. 공력없이 뚝딱 만들어지는 건 애초부터 없음을 죽을 날이 가까와오면서 새삼 느낀다.
죽기 전에 알게 된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대전시립미술관에서 본 박서보의 묘법, 이라는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반복해서 그린 선들이 묘법 시리즈.
검색해보니 박서보 작가에 대해 이런 표현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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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하고 연필로 긋기를 반복하여 작업이 수신의 도구가 된 1970년대 초기 연필묘법 시기, 한지와 색채를 재발견한 중기 지그재그 묘법, 손의 흔적이 제거되고 깊고 풍부한 색감이 강조된 후기 색채묘법 시기'
반복적인 작업에 대해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던 때라 이 그림을 눈여겨보게 되었던것이리라.
매사 모든 일에는 기본이 있고 기본은 반복해서 터득해야만 하는 시간이 담겨있다. 오늘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