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노해, [눈물꽃 소년-내 어린 날의 이야기], 느린걸음, 2024.
(9~12쪽)
내 키가 할머니 허리쯤이나 닿던 때였다. 할머니가 처음으로 어려운 심부름을 시켰다.
“아가, 저그 정미소 지나 산굽이 길을 가다 보면 말이다. 큰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논 가운데 아름드리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디, 맨 위 다랑논이 우리 논이제, 가서 나락이 고개 숙였는지 좀 복 오너라. 간 김에 말이다, 거그 언덕에 이 할미가 심은 애기 동백이랑 유자나무가 을매나 컸는지도 보고."
“할무니이… 나가 가본 적이 없어서 길을 모른디라.”
“몰라도 사람이 안 있냐아. 물어물어 댕겨오너라.”
나는 타박타박 길을 나섰다. 걸어가다가 콩을 거두던 새댁을 만나고 나무하던 아재를 만나고 객가에서 전어를 잡아 갈대에 꿰들고 오던 용재 형을 만나고 고구마를 캐 이고 오던 윤이 누날 만나고….
만나는 이마다 “오매, 평이 혼자서 으딜 간다냐” “요것 좀 보고 가그라” “여그서 이짝으로 쩌기서 저짝으로 가면은” “거시기는 이라고 머시기는 이라고…” 다들 한마디씩 함시롱 가는 길을 일러주었다.
가다가 목이 말라서 밭둑에 발그레한 대추알도 따 먹고 돌배랑 팥배알도 따 먹고 산국화도 따 물고, 산언덕에 배깔고 누워 기러기 떼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괜히 슬퍼지다가 투욱, 머리에 알밤 주는 밤나무를 씨이, 발로 차다가 후두두두 외려 몰매를 맞고서 웃옷을 벗어 밤을 그득 싸 들고 뉘엿뉘엿 집으로 돌아왔다.
“할무니 할무니 그랑께 말이요. 윤이 누나를 만낭께 말이요, 아랫동네 아재가 지게에 태워줘서 말이요…”
“아가 그려 그려. 근디 나락은 고개를…”
“그랑께 할무니. 소나무 아래서 꿩 푸드득 나는디 가봉께로 알을 깠어라. 오다가 뱃마을 성님을 만낭께요, 내일 물들어올 때 전어 떼가 솔찬히 들 꺼라는디요.”
“아가 그랑께 유자나무는…”
“글씨 할무니 나가 알밤을 줏어 왔어라. 한나 까 드셔 보시요잉.”
“아니 그랑께 애기 동백은…”
“아따 할무니 걱정마시시요. 나락도 연두색으로 익어가고요, 수수도 고개 숙임시롱 할무니 안부 물으십디다. 글고요, 먼 애기 동백이다요. 나보다 더 키가 큰 새익씨 동백이드만요. 유자도 활금빛이 살랑살랑 함시롱 향기가 을매나 좋은지라. 할무니 얼렁 모시고 오라드만요.”
할무니 치맛자락만 붙들고 다니고 수줍고 말수가 적던 내가 한꺼번에 말문이 터져버리자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인지 호오, 빙그레 바라보던 할머니는 그제사 밤을 까 입에 넣어주셨다.
“하이고 장하다. 그래, 으찌 우리 논을 찾았다냐잉.”
“물어물어 찾아갔당께요. 할무니가 사람이 지도람시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하고 물응께요, 다 잘 갈쳐주고 이뻐해 주든디요.”
“잘했다, 잘혔어. 그려 그려, 잘 몰라도 괜찮다. 사람이 길인께.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 잘 물어물어 가면은 다아 잘 되니께.”
(19~25쪽)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할머니는 잘 갈무리한 녹두 한 되랑 참깨 한 되를 이고, 어린 내 손에는 짚 구러미에 담은 달걀을 들려 장으로 나섰다. 풀을 먹여 숯불 다리미로 빳빳이 다려 입은 할머니의 흰옷에서는 걸을 때마다 사르락사르락 눈길 밟는 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꼬옥 잡고 “아가 무겁냐아” 하시며 철따라 산벚꽃이 날리고 해당화가 핀 동네 길을 거렁 하얀 목화꽃과 연노랑 벼라 일렁이는 논둑 길을 걸어 뻐꾸기 울음 소리에 맞춰 장터로 들어섰다.
활기찬 소리가 울리고 웃음소리 흥청 소리 싸움 소리도 들리고, “짐이요, 짐이요” 집채만 한 등짐을 진 장정들이 우두두두 달리고, 좌판 위에서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골라오, 골라” 손님을 부르는 왁자한 장터에서 어린 내 심장은 높고 빠르게 뛰놀았다.
할머니가 달골 가게에 앉아 달걀이랑 녹두랑 참깨를 넘기며넛 담소를 나누면, 나는 그새를 못 참고 두리번두리번 장 구경을 다녔다.
시장은 사라지는 장소, 나는 장터에서 자주 사라졌다. 풀무질 소리 망치 소리 힘찬 대정간으로, 반짝이는 어물전과 소금 창고로, 악극단의 큰 천막 무대로, 누나들이 서성이는 혼수품 가게로 골목 골목을 누비며 다녔다.
“얼씨구우, 조어타아” 구성진 추임새의 판소리 마당이나 빙 둘러앉아 사주 관상 봐주는 노인 곁이나, 노점 책방에 서서 대처 소식을 전하며 시국 논쟁하는 청년들 틈이나, 애기 염소랑 토끼를 파는 싸리 우리 옆이나, 나무 의자가 둥글게 놓여있ㄴ는 외눈박이 팥죽 장수 곁에서 오독하니 앉아 있는 나를 할머니가 찾아내곤 했다.
“아이구 아가, 여기 있었냐아” 할머니가 찹쌀 새알이 든 붉은 팥죽을 사주면 나는 후우후우 맛나게 먹고선 또 살글살금 어딘가로 구경을 나셨다.
그 시절 못된 사람이래야 장날 술주정이나 부리고, 일은 대충대충 건달거리고, 남 험담이나 흉흉한 헛소문을 돌리고, 있는 집인데도 꼬곱쟁이로 영 인색하고, 내동 화투판을 벌이거나 빚 안 갚는 사람 정도였으니, 내 또래 아그들은 어른 손을 놓고 어린 장돌뱅이처럼 쏘다니며 처음 만나서도 금세 친해져 어울려 다니곤 했다.
할머니는 곡식과 달걀을 판 돈을 들고 푸줏간에서 돼지 고기 한 근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단념하고는 새 호미 한 바루와 소님들 줄 삼학소주 한 병을 사고서, 내가 자꾸만 고개를 돌려 입맛을 다시는 엿판 쪽으로 가셨다.
“수수엿 잘 고았네. 때깔이 참 곱소. 엿장수 맘이라니께 큰맘 써서 크게 떼어주시요잉.”
할머니가 눙을 치자 엿장수 아저씨는 가위를 들어 차장창창 박자를 맞추며 받아쳤다.
“하이고 할무니, 나가 큰맘 쓰다간 호랭이 같은 우리 안사람한테 쫓겨나부요잉. 에라, 아그가 영 또랑또랑한께롱 이 엿 맛나게 묵고 좋은 일만 진득허니 달라붙어라잉.”
타악탁탁, 넓직한 엿판에 끌을 대고 크게 떼어 내 손에 쥐어주었다.
“큰만 쓰셨네잉. 아가 인사드려라. 강녕하씨요잉.”
콩가루 듬뿍 묻힌 붉은 엿을 빨아먹으며 신이 나서 가는데 할머니가 어둑한 얼굴로 서성이는 젊은 아주머니 곁에 멈춰 서셨다.
“차암 고운 양단이네. 옥빛이랑 치자빛이 잘 먹었네이.‘
”야아, 어르신. 시집올 때 가져온 양단인디… 가세가 기울어서 큰딸 학비 땜시….“
”고생이 많구만.일제 치하에다 6.25 동란도 겪고 보릿고개도 넘고, 그래도 다들 안 살아왔는가. 나도 시집올 때 그 귀한 양단 몇 마름이랑 옥비녀랑 그가락지를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두고 이 고생 지나면 차려입어야제, 이 시절 넘기면 입고 나서야제, 한 번씩 꺼내 보고 만져만 보다가는 하나하나 팔아서 아그들 안 키웠는가. 그래도 사람이 산 입에 거미줄 안 치는 법이고 그래도 아그들은 쑥쑥 커 나오는 것이제. 자넬 보니 큰 따님이 참하고 총명하겄고.“
”아그가 제법 똑똑한지 학교에서 벌교나 순천으로 유학을 보내라 그래서라.“
”그려 그려. 을매나 좋은가. 자네 복이네 복이여. 총명한 아그가 정하게 커 나오는 집안은 창창한 앞날을 가진 것 아닌가. 뭔들 아깝겄는가. 좋은 날이 올 것이네. 힘내소.“
”예, 말씀 감사허요. 건강하시어라.“
할머니는 등을 다독여주고는 또 내 손을 잡고 장터를 자박자박 걸어감시롱 이 사람 저 사람 살갑게 인사를 건네고 동냥치들에게까지 동전을 챙겨주면서 안부를 물었다.
그런 우리 할머니가 눈도 마주치지 않고 꼿꼿이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머슴도 아니고 백정도 아니고 반편이도 아니었다. 그 살밍 내 머리를 만지며 아는 체 인사를 건네면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는 앞으로 걸어가버렸다.
”개한(참되지 아니한) 사람이다. 저이가 일제 때도 이승만 때도 완장 차고 설친 자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시 또 지금 시국에도…. 아가 너는 개한 자들 멀리하고 참한 이들 만나서 참말만 하고 참사람으로 살아야 쓴다이.“
할머니는 그랬다. 봄바람같이 난들나들 사람들을 대하다가도 개한 자를 만나면 굽은 허리를 세워 서릿발처럼 지나였다.
”저이는 주변머리가 없어야. 앞도 뒤도 모르고, 없는 사람 무시하고 힘 있으면 아부하고 그리 주변머리가 없응께 뭣이 중헌지 일머리도 못 잡지야. 하는 일마다 무능하고 부실하고 무책임혀.“
”저이는 얼간이다. 시류 따라 요리조리 쏠려감시롱, 줏대도 배알도 지조도 없어야. 얼 나간 이는 나쁜 영이 들어서 그이를 숭악한 길로 가게 해불제.“
”저이는 멋없는 이여. 가진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제. 공경도 모르고 하늘도 모르는 멋대가리 없는 사람이랑께. 가진 걸 제대로 쓸 줄도 모르니께 살아도 사는 맛을 모른거제."
”할무니, 멋이가 머시다요?“
”그랑께… 멋이란 그 머시기제이. 사람은 말이다, 다 제멋을 타고나는 거여. 눈에는 안 보이는디 맘에는 보이는 그 머시기 말이다. 하늘을 보고 꽃을 보고 별을 보면은 그 머시기가 맘에 안 오냐아.
아까 그 부잣집 양반들 거동 좀 봐라. 화려학 차려는 입고 겉멋은 부렸는디, 경망스럽고 거만하고 천박하지 앉드냐. 긍께 그 머시기가 안 없냐아.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어도 안에서 빛이 없고 얼이 어리지가 않으니 멋이 없지야.
쩌그 가는 이마다 반가이 인사하는 서가네 어르신을 봐라. 마을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인정 있게 베풀고, 자라나는 아그들이 이 나라 기둥아라며 장학금을 쾌척하고, 마을 길에다가 꽃이랑 나무를 심어서 멋드러진 꽃길을 만들고, 뒤에서 독립운동가들 돕다가 고초를 겪으면서도 지조를 지켜온 분 아니냐. 그 고귀한 마음이 자태에서 그냥 풍기지 않느냐.
그라고 쩌기 저 나뭇짐 이고 오는 숙이 좀 봐라. 시방 가난하고 남루해도 말이다. 봐라, 눈빛이 맑고 표정이 환하고 차암 기운이 좋게. 힘들게 살믄서도 착하고 강하게 큰 아그다. 주는 것 없어도 괜시리 맘이 끌리고 나서지 앉아도 은미한 빛이 안 나오냐.
평아, 니도 참하고 귄있는 사람으로 한세상 멋지게 살아부러라잉.“
그 뒤로 장터를 지날 때마다 할머니 말씀이 울려왔다.
개한 사람인가 참한 사람인가.
주변머리 있는 사람인가.
얼이 든 사람인가.
멋, 그 무엇이 있는 사람인가.
(31~34쪽)
장에 다녀오신 할머니가 모시 손수건에 싸 꼬옥 품고 온 빨간 알사탕 한 알을 입에 넣어주셨다.
”와아 달다 할무니. 겁나게 다요. 세상에서 젤 달고 맛있다아.“
볼이 불룩한 알사탕을 빨며 나는 홀홀감에 소리쳤다.
처음 먹어 본 알사탕의 단맛은 며칠이 지나도록 내 입 속과 몸 안을 굴러다녔다. 할머니가 잘 익은 대추알을 줘도, 붉은 홍시랑 몰캉한 다래알을 입에 넣어줘도 ”아 거시기 알사탕 참 달고 맛있었는디라“ 온통 알 사탕 생각뿐이었다.
신식 알사탕의 강렬한 단맛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고 혓바닥을 물들인 빨간 색소만큼이나 진득하니 나를 끌어다였다.
흰 눈이 내로 문풍지 바람이 차운 밤, 처마 아래 매달은 대바구니에서 인절미를 꺼내 화롯불에 구워 호호 불어 조청에 찍어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가 그랬다.
”아가 맛있냐. 수수조청 맛이 어떠냐.“
”달고 맛나요. 근디요. 알사탕이 더 달고 맛나요. 최고랑께요.“
문득 할머니가 침묵하는 걸 느끼며 뭔가 잘못됐음을 알아챈 순간, 알사탕 맛을 본 이래의 내 말과 일련의 일들이 스쳐갔다.
그랬다. 할머니는 곶감이든 떡이든 엿이든 어디선가 선물받은 그 달고 맛난 것들을 자기 입에 넣지 않고 품고 와 내 입에 넣어주셨는데, ”근디 알사탕이 더 달고 맛난디라. 그 빨간 알사탕이…“홀린 듯이 말해왔던 나는 그만, 구수한 인절미와 달근한 수수조청을 씹으며 울먹였다.
다른 때 같으면 “아가 울지 마라” 품에 안아주실 텐데, 울먹이는 나를 기냥 두고 구부정히 마주 앉아 아무 말도 없는 할머니가 낯설고 멀어지고, 할머니와 나 사이의 어떤 끈이 끊어져 버린 듯 아득했다.
이윽고 할머니가 “아가, 이리 오니라“ 울먹이는 내 등을 쓰다듬으며 물그릇을 들어 마시게 했다.
”평아, 알사탕이 달고 맛나지야? 그란디 말이다. 산과 들과 바다와 꽃과 나무가 길러준 것들도 다 제맛이 있지야. 알사탕이 아무리 달고 맛나다 해도 말이다, 그것은 독한 것이지.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맛을 무감하게 가려버리제. 다른 맛들과 나름의 단맛을 가리고 밀어내 부는 건 좋은 것이 아니제.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떨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져 분단다. 그리하믄 사는 맛과 얼이 흐려져 사람 베리게 되는 것이제.”
“야아, 할무니, 알겠어라.”
“우리 평이는 겨울이면 동백꽃을 쪼옥 쪼옥 빰시롱 ‘달고 향나고 시원하게 맛나다‘ 했는디, 올해 동백꽃 맛은 어쩌드냐아. 나는 말이다, 아가. 네 입에 넣어줄 벼꽃도 깨꽃도 감자꽃도 아욱꽃도 녹두꽃도 오이꽃도 가지꽃도 다 이쁘고 장하고 고맙기만 하니라. 이 할무니한텐 세상에서 우리 평이가 젤 이쁘고 귀한 꽃이다만 다른 아그들도 다 나름으로 어여쁜 꽃으로 보인단다. 아가, 최고로 단 것에 홀리고 눈멀고 그 하나에만 쏠려가지 말그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 품에 꼬옥 안겼다.
다음 해 문풍지 우는 화롯불 곁에 할무니, 우리 할무니는 아니 계셨다.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리워 마다응로 걸어 나갔다. 하냔 눈 위에 작은 내 발자국이 총총히 따라왔다.
동백나무 아래 붉고 선연한 동백꽃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으스스 떨며넛 언 손으로 동백꽃을 한 줌 가득 주워 쪼옥 쪼옥 빨아먹으며 눈길을 걸었다.
“아가, 맛이 어떠하냐?”
“순하고 맑고 시려요. 달고 향그럽고 맛나요. 할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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