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김정아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25.
(79~84쪽)
조시마 장로는 예순다섯 살 정도고 지주 계급 출신이며, 아주 젊은 시절 한때는 군인이었고, 캅카스에서 위관장교로도 근무했다. 그의 영혼의 어떤 특별한 자질이 알료샤를 감동시켰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알료샤는 장로의 암자에서 살았다. 장로가 그를 몹시 사랑해서 그를 자신의 암자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알료샤가 당시 수도원에서 살긴 했지만, 아직 아무것에도 묶인 몸은 아니어서 내키는 대로 며칠씩 나다닐 수 있었고, 그래서 그가 긴 약식 법의를 입고 다닌 것은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 어느 누구와도 달리 보이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그랬다는 점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이 자신의 마음에 들기도 했다. 어쩌면 알료샤의 젊은 상상력에 영향을 미친 것은 자신의 장로를 끊임없이 에워싸고 있는 이 힘과 영광이었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조시마 장로에 대해 얘기하길, 그에게 자신의 영혼을 고백하고 조언과 치유의 말을 갈구하러 찾아오는 온갖 사람들을 오랜 세월 암자에 받아들여 그들의 하소연과 슬픔, 고백을 너무도 많이 그의 영혼에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처음 찾아온 모르는 사람의 얼굴만 봐도 한눈에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심지어 어떤 종류의 고통이 그의 양심을 괴롭히고 있는지조차 알아맞힐 수 있는 아주 예리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방문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의 비밀을 정확히 알고 있어서 깜짝 놀라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경악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알료샤가 거의 언제나 알아차린 점은, 많은 사람들, 거의 모든 사람이 처음으로 장로와 독대하러 들어갈 때는 공포와 불안을 느끼지만, 나올 때는 언제나 맑고 밝고 기쁨에 가득차 있다는 것과 음울하기 그지없던 얼굴도 행복한 얼굴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장로가 전혀 엄격하지 않고 오히려 늘 명랑한 태도로 사람을 대한다는 점 역시 알료샤를 무척 감동시켰다.
수도사들은 장로에 대해 말하며, 장로가 진심으로 애착을 갖는 것은 죄가 더 많은 사람이고, 가장 죄 많은 자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한다고들 했다. 수도사들 중에는 장로가 거의 다 죽어 갈 무렵에조차도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런 사람들은 몇 없었고, 그들마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수도원 내에서 아주 저명하고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예를 들자면, 위대한 묵언 수행자에 대단한 금욕주의자인 아주 오래된 고참 수도사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쨌건 절대 다수는 의심의 여지 없이 조시마 장로의 편이었고, 그들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거의 광신적으로 그에게 집착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주 큰소리로 말한 건 아니지만, 그는 성자이며,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대놓고 말하곤 했으며, 그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견하며 가까운 장래에 고인으로 인해 수도원에 즉각적인 기적이 일어날 것이며, 아주 가까운 장래에 수도원에 위대한 영광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알료샤는 장로의 기적적인 힘에 대해 교회 밖으로 날아가 버린 관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병든 아이들이나 병든 친척 어른들을 데려와서 장로에게 안수기도를 청했던 많은 사람들이 곧, 어떤 이들은 바로 다음 날 다시 돌아와 눈물을 흘리며 장로 앞에 엎드려 그들이 데려왔던 병자를 치료해 준 데 감사하는 것을 그는 수도 없이 보았다. 정말로 완치가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병이 자연스레 좋아진 것인지, 이런 의문은 알료샤에게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 스스의 정신적인 힘을 전적으로 믿었고, 그의 영광은 마치 자신의 승리와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장로를 만나보고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온 러시아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몰려온 평민 신자들이 암자 대문 옆에서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무리에게로 장로가 나올 때면 알료샤의 심장은 특히나 전율했고, 그의 온몸이 광채로 빛나는 듯했다. 그들은 장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발에 입을 맞추고, 그가 서 있는 땅에 입을 맞추고, 통곡했고, 아낙들은 자기 아이들을 그를 향해 내밀기도 하고, 병든 클리쿠샤들을 데려오기도 했다. 장로는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그들을 위해 짦은 기도를 해 주고, 축복한 뒤 돌려보냈다.
최근 들어 장로는 병으로 인한 발작 때문에 때로는 암자에서 나올 힘도 없을 정도로 너무 쇠약해질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신자들은 그가 나올 때까지 수도원에 며칠씩 기다렸다. 어째서 그들이 장로를 그렇게 사랑하는지, 어째서 그들이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앞에 엎드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지, 알료샤에게 그런 것들은 아예 의문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오, 그는 노동과 고통, 무엇보다 항구적인 불의와 항구적인 죄, 자신의 죄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로 지칠 대로 지쳐 버린 러시아 평민의 겸허한 영혼에게는 성물이나 성자를 찾아내서 그들 앞에 엎드려 경배하는 것보다 더 강렬한 욕구와 위안은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죄와 거짓과 유혹이 있을지라도, 어쨌거나 이 땅 저 어딘가에 성스럽고 높은 분이 계신다. 그분은 우리 대신 진리를 갖고 계시고 우리 대신 진리를 알고 계신다.
즉, 진리가 이 땅에서 죽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약속대로 언젠가 우리에게 건너와, 온 세상에 깃들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민중이 바로 이렇게 느끼고 심지어 이렇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알료샤는 알고 이해하고 있었으며, 민중의 눈에 장로야말로 바로 성자고, 하느님 진리의 수호자라는 것, 이 점에 대해서 그 자신도 울고 있는 무지렁이 농부들이나 자기 아이들을 장로에게 내미는 병든 아낙들과 마찬가지로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장로가 영면한 후, 수도원에 엄청난 영광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확신은, 어쩌면 수도원에 있는 그 누구보다 알료샤의 영혼 속에 더욱 강렬하게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최근에 어떤 심오하고 열렬한 내적 환희가 그의 가슴속에 점점 더 세차고 또 세차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장로가 어쨌건 그의 앞에 하나의 삶으로 서 있다는 사실은 그의 평정심을 조금도 흐트러드리지 못했다. “상관없어, 저분은 성스럽고, 저분의 가슴속에는 모든 삶을 갱생시킬 수 있는 비밀이, 마침내 이 땅에 진리를 세울 힘이 내재해 있고, 그러니 모두가 성스럽게 될 것이고, 서로서로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 부자도 가난한 자도, 높은 자도 낮은 자도 없어져 모두가 하느님의 아이들처럼 될 것이며, 그리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바로 이런 꿈이 알료샤의 가슴에 어른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