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19
책 이야기 2 – 김창남, 나의 문화편력기 (2015, 도서출판 정한책방) 이춘아
뒹굴거리며 오랜만에 만화(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빠져들었었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 [나의 문화편력기]를 읽으면서도 그 느낌이 있었다. 그게 뭘까 했었는데, 그것은 가벼움이었다. 만화책은 예전부터 가벼웠다. 재생지에 가까운 가벼운 소재가 만화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나의 문화편력기]도 그랬다. 책표지 뒷면에‘이 도서는 국제친환경 인증을 받은 천연 펄프지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되어있다. 모든 책이 이런 종이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책 크기도 가로 세로 길이가 같아 펼치고 붙들고 읽기 좋다. 손맛도 좋은데 내용도 가볍게 재미있다.
대중문화 연구자인 김창남교수는 성공회대 교수로 객관적인 연구물을 내다가 이번에 대중문화에 천착해왔던 자신을 만들어온 개인적 문화적 세례를 차곡차곡 기억을 더듬어가며 기록하였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기억과 의미의 역사’이다. 김창남교수는 1960년생이고 나는 1956년생이니 그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과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겹쳐있어 책을 읽는 내내 나도 그 당시 그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언젠가 나, 이춘아의 문화적 기억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계속 썼어야하는데 몇편 쓰다가 말았다. 우리 각자 누구에게나‘나의 문화적 기억, 또는 문화편력기’가 있다. 다만 누군가는 책으로 낼 수 있다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그 차이는 물론 엄청 다르다.
책을 읽으며 감탄스러운 점은 기억이 책으로 엮어지기 위해 채워 넣어야할 정보와 그에 대한 해석이다. 읽는 사람들은 동감을 하지만 결정적인 단어로 분석 정리해주는 몫은 역시 연구자라 다르구나 싶다. 그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읽고 보고 들은 의미의 원천들은 세상을 느끼는 내 감성의 원형질을 만들었다. 성인이 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또 다르게 만난 의미의 원천들에 의해 많은 변화를 겪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에 형성된 원형적 감성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순간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원형적 감성이 튀어 나와 일상을 지배하곤 한다. 내 감성의 원형질을 만들어낸 의미의 원천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지금 기억을 더듬어 살펴보려 하는 게 그것이다.”
나의 원형적 감성, 저자는 춘천에 살았었고, 나는 부산에 살았었지만 접했던 대중문화는 유사했다. 시대적 분위기와 동시대에 쏟아졌던 문화적 환경이 당대의 한국인을 만들고 미국인을 일본인을 만든다.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는 노래를 들으며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푸른 초원과 하얀 뾰족한 집을 떠올렸다. 노래가 나왔던 당시 우리 주변은 판잣집이 많았다. 그 판잣집 내부벽지는 신문지였고, 그 신문지의 글자를 보며 한글과 한자를 익히며 의미를 알아간 세대이기도 하다. 영화로 그런 장면을 보면 참 불쌍하게 살았구나 싶지만, 그 환경 속에서도 나름의 문화적 코드를 읽고 있었다. 19금이라는 단어로 편을 가르지만 현실은 다 뚫려 있는 것처럼 그 당시도 그랬던 것 같다. 어디선가 [선데이서울] 같은 잡지들을 어린 나도 읽었다.변소에 앉아 휴지로 잘라놓은 각종 종이류에서 시대상황을 읽었다.
김창남의 나의 문화편력기에는 소제목으로 감성의 교과서-책과 만화, TV 훔쳐보기, 영화 그 꿈의 나라, 일찍 눈뜬 유행가의 세계, 감성을 적셔준 노래들 등 동화책 만화, 잡지, TV, 영화, 유행가 등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었던 문화매체 중심으로 기억과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막연하게 단편적으로 기억속에 있었던 것들을 드러내게 해주니 속이 시원했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만화책 이름과 저자들이 마구 튀어나오니 보물이 튀어나오는 듯 했다. 그게 그거였구나. 다락이나 창고를 정리하다 튀어나오는 추억의 옛 물건 같은 것이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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