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삶의 한 끄트머리

이춘아 2019. 8. 5. 18:39


[대전일보] 한밭춘추 (2011년 9월2일자)

 

삶의 한 끄트머리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내가 뭐가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묻는 중학생 아이에게 “나도 내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네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내가 어찌 알겠나” 라고 매정하지만 한심하게 답했었다. 아이가 크고 나니 뭐가 됐으면 좋을지 문득 생각이 나서 “네 성격 등을 고려해보니 갈등조정자가 됐으면 좋겠다” 라고 말해주었다.

 

작년에 나를 인터뷰한 기사에서 그 기자는 ‘문화 컨설턴트’라는 직명을 나에게 선물했다. 쑥스럽긴 하지만 그 직명이 좋다.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4학년 때 학부 졸업논문제라는 제도가 생겨 나름 열심히 썼다. 제목도 정확하게 생각나지는 않지만, ‘만남의 집단(encounter group)에서 facilitator의 역할’이란 제목이었다. 아직도 facilitator를 정확하게 번역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촉매자 또는 조정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 쌓인 경험으로 언제부터인지 그런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형태이지만 ‘갈등 조정자’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그런 일을 했으면 바라고 있지만 나의 바램일 뿐 그 아이의 몫은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이다. 내가 뭐가 됐으면 좋을지 모르겠다, 라는 말은 틀리지 않았으나 결국 그것은 20대에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 20대 역시 20여 년 동안 궁리하여 만들어졌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간들을 들여다보면 의식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끄트머리를 붙들고 살아왔던 것 같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짧지만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직업으로 만들면 무궁무진할 것 같은데, 여전히 사회가 요구하는 직명에 의존하여 자신을 맞추려 하다보니 어려워진다. 다양성, 창조성, 감수성, 통찰력 등을 요구하는 문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에 걸 맞는 직종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으니 실업률만 높아지고 있다.

 

이 시대가 대체로 합의하고 있는 능력은 단어로 말해지나, 그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직종도 단어화할 수 있어야할 것 같다. 대학의 전공과목들이 다양해지고 있으나 직종화할 수 있고, 뭔가 잡힐 수 있는 이름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할 듯하다.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자. 네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아마도 대부분 잘 모르겠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며 정말 하고 싶어진 것들을 찾아볼 시간을 준다면 답은 나올 것이다. 물어보자 하면서 여전히 현재의 직업과 직종들을 염두에 두면서 기존의 먹고 사는 방식으로 재촉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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