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칼럼

와~ 예술이다

이춘아 2019. 8. 5. 18:34


[대전일보] 한밭춘추 기고 7 (2011년 10월14일자)

 

와~ 예술이다

이춘아 한밭문화마당 대표

 

 

바람 따스하니 새 소리 느리고/ 이슬 많으니 꽃빛이 짙도다/ 아침이 되면 봄 잠 무거워/ 거울 앞 눈썹 그리는 일 게을러지지.

 

‘봄의 일’이라는 제목의 시다. 이를 임동창 선생이 작곡을 했다하여 몇 번이나 읽어 보았으나 덤덤하기만 했다. 재작년 배제대학교 음악회에서 임동창 선생이 피아노 치며 직접 정가로 불러주었을 때, 나른한 봄의 느낌 속에 봄 잠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지던지. 시가 그렇게 살아날 수 있구나, 감탄하며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봄의 느낌을 시인은 시로 쓰고, 그 시에 영감을 받은 작곡가는 시인이 느꼈던 봄의 느낌을 다시 살려냈더니 예술이 탄생했다.

 

‘봄의 일’은 29세로 요절한 18세기 여성시인 오청취당의 시이다. [꿈]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문희순 번역, 서산문화원 발간)된 시집에 수록된 한시는 모두 182 수. 문화체육관광부 <지역여성문화 발굴 사업>의 일환으로 오청취당의 삶을 그린 ‘스물아홉 신선이 되다’ 라는 제목으로 2009년에 마당극이 만들어졌고(김인경 극작, 서주희 출연), 올해는 ‘오청취당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바로 엊그제인 10월10일 음악회가 올려졌다(임동창 작곡, 송도영 소리).

 

가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생각하곤 한다. 하루하루를 연명하듯 살아가는 시간도 있지만 삶의 한 끄트머리가 이어져 언젠가는 그 시간들이 점으로 만난다. 오청취당도 그러하였다. 처절하게 외로웠고 가난했던 한 여성이 토해낸 시가 후손에 의해 시집으로 묶여졌고, 그 시가 오늘날 우리가 읽기 편하게 한글로 번역되고, 절절하고도 고단했던 그 여인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극으로 만들어 올리고, 시에 영감을 받은 작곡가가 음악을 입혔다. 서산 옥녀봉 단군전 소나무 아래 피아노가 놓여 졌고, 휘영청 달도 떠있는 밤에 시노래가 소리꾼에 의해 정가로 불리어졌다.

 

공연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임동창 선생은 무대 조명을 끄게 하고 관객들에게 달을 보게 하였다. 그런 다음 아주 약한 조명으로 무대를 비추게 하고 피아노 반주로 정가를 들려주었다. 창의시대, 문화적 감수성을 이야기한다. 이야기 길게 할 것 없이 바로 이런 무대, 시공을 초월하여 예술가들이 시와 음악, 춤으로 어떻게 만나고 노는가를 보여주는 것, 바로 그것이 최고의 문화예술교육이 아닌가 싶다.

 

3백년전 오청취당은 뛰어난 지적 감수성으로 ‘무심한 사물도 이와 같거늘 우리네 인생 아니 놀 수 있겠는가’ 라 시를 지었고, 풍류랑 임동창은 화답하여 곡을 만들어 제자인 송도영에게 노래하게 했다. 우리 관객들은 미세한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렁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와~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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