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책 이야기

낭독 "기다림은 나의 삶"

이춘아 2020. 5. 30. 05:39

2020. 5.30(토)

김영갑 사진.글, [그 섬에 내가 있었네], human & books, 2004


“기다림은 나의 삶”

길을 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갈림길이 나타나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주위에 물어본다. 하지만 친절하게 가르쳐줘도 망설여져 선뜻 길을 떠날 수가 없다. 오랜 고민 끝에 마침내 길을 선택한다. 친절하게 가르쳐준 이들은 엉뚱한 길을 선택하는 나를 보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한다. 편한 길 놔두고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나무란다. 사람들은 편안하고 풍족한 삶이 보장되는 길을 가지 못해 안달복달인데 스스로 불편하고 궁핍한 생활을 선택하니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야유를 보낸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지 못한다. 젊음 또한 얼마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했다. 모두들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젊은 날의 객기이겠거니 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되리라고 결심했다. 당시에는 프리랜서라는 말도 생소한 시절이었다. 여기저기 귀동냥을 해서 계획을 세우고 나름대로 준비도 마쳤다. 제주를 여러 번 오르내리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1985년에 서울을 떠났다. 주소지도 아예 제주로 옮겼다. 모두들 반대했고 일 년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다. 어느 한 군데 소속되어 일해도 힘든 판국에 스폰서 없이 몇 개월을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며 수군댔다. 

생활은 늘 궁핍하고 불편했지만 십년을 무사히 넘겼다. 십 년 세월을 지켜본 형제와 지인들은 그만하며 됐으니 이제 고집을 꺾고 편하게 살라고 했다.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크게 고생할 거라고 충고했다. 취직을 하든가 돈벌이 되는 사진을 찍든가, 아니면 경제력있는 여자 만나 편히 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길을 고집했다. 사진 작업에만 온힘을 쏟았다. 간간이 들어오는 사진 원고 청탁도 무시하고 나만의 작업에만 몰입했다. 그렇게 신명나게 살아가던 중에 뜻밖에도 루게릭 병 판정을 받았다. 사람들의 염려대로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다가왔다. 

불치병 선고를 받고 한동안은 충격에 휩싸여 지냈다. 하지만 이성의 힘을 찾은 뒤 나는 제일 먼저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임대했다. 나는 그곳에 사진 전문 갤러리를 만들고 싶었다. 사과상자에 빼곡하게 담겨 자리를 못 잡고 있는 내 사진들을 그냥 버려둘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창고에 갇힌 신세를 못 면하고 있는데 내가 죽은 다음에는 애물단지나 되기 십상일 것이다. 어차피 이제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으니 떠나기 전에 실컷 걸어두고 보고 즐기고 싶었다. 

갤러리를 만들겠다는 나의 계획을 듣고 주위에서는 당연히 반대했다. 건강한 사람이 하기에도 벅찬 일을 강행하겠다니 죽으려고 환장했다며 어이없어 했다. 두 팔이 마비되어 카메라조차 들지 못하는 몸으로 공사를 감행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돈이 충분한 것도 아니었다. 도로보다 낮은 운동장은 비가 오면 연못으로 변했다. 진흙땅에 물이 빠지지 않아 며칠씩 물이 고여 있었다. 폐교된 지 사 년, 삶의 손길이 닿지않은 화단이나 뒤뜰은 밀림이나 다름없었고 구석구석 쓰레기가 넘쳐났다. 건물은 낡아 천장으로 빗물이 스며들었다. 건물 벽도 곳곳에 벽돌과 철근이 드러나 있었다. 군데군데 구멍난 마룻 바닥과 떨어져 나간 창문.... 현장을 둘러본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라고 설득했다. 

갤러리 공사에 매달리는 동안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70킬로그램이 넘던 몸무게가 47킬로그램으로 줄었다. 나는 더 이상 몸무게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예 거울조차 보지 않았다. 항암 치료를 받는 사람처럼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나가 몇 가닥 남지도 않았다. 그래서 모자를 써야만 했다. 공사를 강행하는 동안에도 치료에 최선을 다했지만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치료를 위해 사 년 넘게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서울로 떠돌았다. 소문난 명의도 소용없고 백약이 허사였다. 상태는 갈수록 나빠져 혼자 걷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2003년 봄, 나는 결단을 내렸다. 어떤 치료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치료를 하기로 했다. 낮에는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밤이면 걷기 운동을 했다. 7월에서 9월은 최악이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걷는 시간과 식사 시간 이외에는 끝도 없는 잠에 빠졌다. 바람이 심하거나 비가 세차게 내려도 걷기 운동은 빼먹지 않았다. 조금은 더 벼텨야 한다는 의지로 이를 악물고 걸었다. 

몇 개월쯤 지나자 벌목한 것처럼 듬성듬성 남아 있던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제법 한움큼은 되었다. 특별히 치료하지 않았어도 머리카락이 제 모습을 찾아가듯, 내 몸도 언젠가는 그렇게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 

하루를 편안하게 지내다 보면 녹아 없어진 팔 다리 근육이 소생해 카메라를 들고 들로 산으로 자유롭게 떠돌 수 있을 건이다. 아니, 이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고 멈춰만 주어도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휠체어 신세만 면할 수 있어도 괜찮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나를 보고 지인들은 안타까워한다. 찾으면 치료 방법이 없지도 않을 텐데 기어코 고집을 부린다고 가여워한다. 내가 선택한 길이 죽음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기에 그 길을 웃으면서 갈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두 갈래 세 갈래 갈림 길이 나온다. 이제는 망설임 없이 나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두려움에 혹은 절망감에 망설였지만, 이제부터 주저 없이 내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갈 것이다. 이제 자신 없이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일도 없으리라. 

점점 야위어가는 나를 보고 더러 새로운 치료법을 소개해주는 지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 방식의 치료를 고집하자 더 이상 권유하지 않는다. 병이 깊어갔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지인들의 발길도 전화도 뜸해졌다. 

밤이 되면 갤러리는 적막하다. 적막함을 즐기며 홀로 정원을 걷는다. 몸이 피곤해지면 편안한 상태로 침대에 눕는다. 건강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밤늦도록 사진 작업에 매달렸을테지만 이젠 한가로운 일상에 익숙해졌다. 루게릭 병이 내게 준 선물이다. 

팔 힘이 없어 운전을하기도 힘드니 혼자 몸으로는 외출도 어렵다. 온종일 갤러리에 갇혀 지내며 한적함을 즐기고 내일을 기다린다. 이제 기다림은 나의 삶이다.

'문화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끝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다"  (0) 2020.06.06
낭독 "몰입의 황홀함"  (0) 2020.05.31
낭독 가을 - 17  (0) 2020.05.26
낭독 "만돌이, 부등가리 하나 주게"  (0) 2020.05.24
낭독 "조선낫과 왜낫"  (0) 2020.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