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속리산을 찾아

이춘아 2020. 10. 14. 20:17








2020.10.12(월)

고사리 모임에서 [누비처네] 중 ‘속리산기’를 읽었다. 대전으로 이사 내려 온 이후부터는 속리산은 비교적 가까운 명산이라 자주 가는 곳이 되었다. 산채나물밥 먹으러 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지만, 처음으로 가족여행으로 갔던 1992년 경, 더구나 서울에서 속리산은 큰 마음 먹지 않고는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아마 강원도 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거리였다. 그 당시 우리는 자가용차도 없던 시절이었고, 우리집 아이가 네댓살 무렵이었다. 당연히 버스 타고 갔을 것인데 어떤 연유에서인지 법주사에서 한참 올라간 산장 같은 곳에서 일박을 하였다. 밤중에 쑥불을 켜서 모기를 좇아주었고, 모기장도 쳐주지 않았나 싶었다. 깊은 산중의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팍팍한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하던 중이라 짧은 여름 휴가로 속리산행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다녀온 후 직장 노동조합 소식지에 ‘속세를 떠나’ 라는 비슷한 제목의 휴가기를 썼던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보고서 형식의 글 이외에는 잘 쓰지 않았던 때인데, 나로서는 상당히 인상적인 여름 휴가 장소였던 것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속리산을 여러번 다녀왔지만 그 때의 속세를 떠난 산으로서 강렬한 느낌은 없었다. 숙박 산장이 속리산 중턱 위에 있었음에도 문장대까지는 가지도 못했다. 그 당시 나의 몸상태는 지금 보다 좋지 않았던듯 하다. 우리집 아이는 다람쥐처럼 산을 타고 오르내리는데, 나는 헉헉대서 문장대는 이 다음에나 가 볼 수 있는 곳으로 미루었는데 아직도 요원하다. 

속리산 산장은 한 여름이었음에도 밤에는 추웠다. 그 맑고도 청량한 느낌. 아침에 일어나서 차려준 밥상. 소박하지만 따뜻한 밥상이었다. 그 느낌이 오랫동안 고여있어서였는지, 대전으로 이사오고난 후에도 계속 시골에서의 삶을 찾게 되었고, 금산에 집을 마련하게 되었던 계기도 되었을 거라 생각된다. 

금산집은 양옥식의 나무집이라 편한 점도 있지만 늘 아쉬운 것 중 하나는 냄새이다. 속리산 산장은 오래된 농가주택에 군불을 때서인지 화덕냄새가 배어있는 곳이었다. 불 탠 화덕 냄새가 그립다.

금산집도 다락창으로 내다보면 깊은 산중처럼 나무들이 울창하고 좋다. 산속 같은 느낌은 비숫하다.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국립의 산은 다르다고. 도립이나 군립의 산과 달리 국립의 산은 깊이가 다르다고. 속리산, 지리산, 계룡산은 산의 깊이가 다르다. 사람에게 적용해도 되려나, 깊이가 다른 사람. 책을 통해 가늠되는 사람은 법정 스님이다. 활자화된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니다.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면 깊이가 느껴진다.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신 것처럼, 스님도 깊이를 찾아가셨던 것일까. 

10.13(화)
아침에 눈을 뜨자, 검색을 해보았다. ‘속리산 산장’이라고 치니 바로 뜬다. 그 산장이 ‘비로산장’이었고 당시 주인장이었던 부부는 2010년 2013년에 돌아가시고 자손이 이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남편에게 이야기 했다.  우리가 그곳을 어떻게 갈 수 있었을까. 남편은 내가 어디서 보고 가자고 했다고 한다. 나는 막연히 남편이 가자고 한줄 알았다. 그런 기억은 남편이 정확한 편이니 맞을 것 같다. 

검색된 내용을 보면 한 충북대 교수는 대학때부터 해서 40여년간 찾아가는 산장이라면서 세계 여러곳을 다녀봤지만 비로산장처럼 그 자체가 위안이고 힐링인 곳은 없었다고 한다. 내가 다녀왔던 1992년에는 ‘힐링’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나 역시 그 하룻밤에 어떤 위안을 받았기에 그토록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둘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그곳에서 두꺼비를 보았던 게 기억나고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던 것이 기억난다고 한다. 

10.14(수)

아침 먹고 속리산을 향해 출발.  국립공원으로서 산의 깊이도 가늠할겸 비로산장까지 다녀오는 것이 목표이다.
일년만에 가는 속리산행. 평일에다 코로나로 붐비지는 않지만, 길가에 대추가게들이 늘어서있어서인지 모처럼 관광지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혹시 점심을 먹을수 있는지 비로산장에 전화했더니 숙박만 한다고. 
가는 길이 그리 가파르지 않고 산책 길로 좋았다. 도착해서 보니 30여년전에 비해 산장의 크기도 확대된 것 같지만, 인적이 없다. 사람소리가 없다. 문앞에 등산화가 있지만 숙박객일수도 있어 소리 내지않고 돌아 나왔다. 입구에 믹스커피 먹을수 있게 커피포트도 함께 있어, 감사히 커피 한잔하고 쉬었다 내려왔다. 

가을맞이 산행을 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왔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원, 뿌리깊은나무  (0) 2020.10.14
법주사  (0) 2020.10.14
두루마리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0) 2020.07.25
마이산  (0) 2020.06.28
조선통신사행렬 재연  (0) 2020.06.11